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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엄마 두고 주차하는 순간도 공포인데…치매는 장애가 아니라고요?

등록 2023-03-26 14:11수정 2023-03-26 20:36

‘지적장애 판단 기준’ 복지부 고시 헌법소원
“치매로 지능 저하, 장애와 본질적으로 같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치매인 어머니가 잘 걷지를 못하세요. 병원에 가거나 외출할 일이 생기면 차량에 휠체어를 실어 이동하는데 출발할 때부터 걱정돼요. 병원 건물 입구나 화장실 가까이에 있는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을 이용할 수 없거든요. 건물 입구에 일단 어머니를 내려드리고, 주차할 곳을 찾는데 그사이 어머니가 없어질까 늘 불안한 거죠. 어머니는 장애인으로 등록돼 있지 않아 장애인 콜택시 이용 어렵고요.”

환갑 무렵부터 인지 기능이 떨어지면서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ㅇ씨(89)의 아들 ㅂ씨(56)는 어머니와 함께 외출할 때마다 가슴을 졸인다 ㅂ씨 어머니는 다양한 원인으로 노년기에 발병한 치매(후천적으로 뇌 손상·파괴로 인지 기능이 떨어지며 나타나는 복합적 증상)를 일컫는 ‘노인성 치매’를 앓고 있다. 아들의 돌봄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인 등록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장애인 이동을 위한 콜택시나 전용 주차장을 이용할 수 없으며 고용 등 다른 장애인 복지정책 대상에서 제외된다. 지적장애 판정 기준이 담긴 보건복지부 고시(제2022-167호)에 “성인이 된 후 뇌손상·뇌질환으로 지능 저하가 온 경우에도 지적장애에 준한 판정을 할 수 있다. 단 노인성 치매는 제외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ㅂ씨를 비롯한 노인성 치매 환자 보호자들과 한국치매협회는 지적장애 판정 기준에서 노인성 치매를 제외한 복지부 고시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소원을 낸 주된 이유는 복지부 고시가 장애인복지법 제2조에서 정한 장애인(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 규정과 충돌해 위법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치매로 지능 저하를 겪는 사람은 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과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는 점에서 지적장애인과 본질적으로 같다”며 “(복지부 고시에서) 노인성 치매로 지적장애를 가지게 된 자를 다른 지적장애인과 달리 취급하는 건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위반한다”고 밝혔다.

치매를 앓는 노인 중에는 간혹 장애인으로 인정받는 경우도 있다. 치매를 유발한 원인이 ‘법에서 정한 장애’에 해당하는 경우다. 치매협회 회장인 우종인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정신건강의학)는 “같은 치매라도 파킨슨병이나 뇌혈관 질환을 동반한 환자는 장애인으로 등록할 수 있으나 노인성 치매만 안 된다는 건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65살 이상 고령이거나 노인성 질병 등 사유로 혼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경우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에 따른 장기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긴 하지만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제도나 활동지원 등은 받을 수 없다. 노인성 치매엔 노인·장애 특성이 모두 나타나므로, 노인·장애인 복지서비스가 모두 필요하나 한쪽 대상만 되다 보니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는 셈이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은 등록 가능한 장애유형을 지체·시각·청각·언어·지적·정신 등 15가지로 보고 있다. 이번 헌법소원은 기존 장애인 복지체계에 대한 문제의식도 담겨있다. 장애 판정 기준에 신체기능 손상 등 의학적 관점만 반영하는 데서 일상생활 제약 정도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인성 치매 이외에도 인체 면역결핍 바이러스(HIV) 감염, 중증 피부질환 등도 장애로 인정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장애로 인정되는 범주가 국제 기준보다 지나치게 협소하다고 지적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 기능·장애·건강 분류를 보면 장애 범주엔 △신체기능 장애△활동의 제한△사회 참여의 제약 등이 포함돼 한국에 견줘 폭넓다. 그 결과, 한국은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장애인 비중이 가장 작다. 2021년 기준 전체 인구 대비 한국의 장애인 비중은 5.39%인 반면 영국 27.3%, 독일 24.6%, 호주 17.7% 등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은 24.3%이다. 지난 9일 정부는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을 통해 장애 개념을 의학적 개념에서 사회활동 참여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에도 인정하는 방향으로 넓히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헌법소원에 대해 복지부는 “아직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청구서를 받아보지 못했다”며 “노인성 치매가 장애로 인정되지 않은 것은 장기요양서비스가 제공되는 까닭도 있을 것이므로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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