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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400위권 남성 수영선수, 여성 되고 1위에 오르다

등록 2023-05-13 11:17수정 2023-09-01 09:34

[한겨레S] 김도훈의 낯선 사람
리아 토머스

2019년 5월 호르몬 대체요법
윌리엄→리아로 성정체성 변경
경쟁선수·정치인까지 비판 합류
미·FINA 올림픽 출전 규정 달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리아 토머스가 지난해 2월 매사추세츠에서 열린 아이비리그 여자 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계영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리아 토머스가 지난해 2월 매사추세츠에서 열린 아이비리그 여자 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계영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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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영을 좋아한다. 수영을 시작한 건 대학교 2학년 시절이었다. 내 의지는 아니었다. 어머니의 의지였다. 어머니는 운동과는 담을 쌓고 지내던 내가 군 훈련소 생활을 버티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라 확신했던 것 같다. 입대 일자가 정해지자마자 동네 수영장으로 내 등을 떠밀었다. 괴로웠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고 발길질을 해야 하는 건 도무지 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래도 해야만 했다. 새벽 수영반에는 동네 어머님들밖에 없었다. 나름 젊은 남자가 새로 등장했으니 인기는 꽤 있었다. 그 인기는 내가 놀라울 정도로 운동신경이 없다는 게 밝혀지고, 몸이 이정재 같던 내 또래 남자가 새로 등장하자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나는 물을 무서워하는 성격이었다. 바닥이 보이는 계곡물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곤 했다. 수영을 배우다 보니 물이 점점 좋아졌다. 20여년간 짓누르던 중력의 무게가 사라지는 경험은 꽤 신기했다. 우주비행사들이 수중 훈련을 받는다더니, 영원히 갈 일 없는 우주로 나아가면 바로 이런 기분일 것이라 생각했다. 수영을 시작하자 선수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됐다. 나의 영웅은 마크 스피츠였다. 2000년대 마이클 펠프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마크 스피츠는 한 대회 최다 메달 기록을 갖고 있던 전설적인 수영 선수였다. 나는 온갖 스포츠 잡지에 등장한 마크 스피츠 기사들을 스크랩했다. 1970년대적으로 멋진 콧수염을 가진 그는 실력과 동시에 자존감이 지나치게 강해서 같은 시기의 수영 선수들이 정말 미워하던 남자였다. 나는 그 외골수 같은 성격도 좋았다. 압도적 천재는 적이 많게 마련이다.

나는 지금은 수영을 하지 않는다. 건강을 위해 수영장에라도 좀 다니면 좋으련만. 새벽 6시에 일어나 수영장에 갈 만큼 근면한 성격이 아닌 탓이다. 그래도 물에 빠지면 체력이 소진되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의 수영 실력은 여전히 갖고 있다. 수영에 대한 관심도 줄지 않았다. 수영 팬들에게 2000년대와 2010년대는 재미있는 시절이었다. 이언 소프와 마이클 펠프스의 시대였다. 박태환이 등장했다. 황선우가 뒤를 따랐다. 2024년 파리올림픽에 참가할 때 그는 21살이 된다. 수영 선수로서는 전성기의 나이다. 백인들이 지배하는 수영장에서 그가 어떤 일을 해낼지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규정 지켜 호르몬 치료 했지만…

사실 이 글은 수영에 대한 나의 사랑을 이야기하려고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아마도 지금 전세계에서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수영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미국 수영 선수 리아 토머스다. 펜실베이니아대학 선수인 리아 토머스는 2022년 미 대학스포츠협회가 주관한 여성 수영대회 200m와 500m 자유형에서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도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에마 와이언트와, 에리카 설리번이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어느 날 갑자기 여성 수영대회에 나타난 새로운 이름이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제치고 메달을 휩쓰는 건 경이로운 일이다. 당연히 찬사가 쏟아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리아 토머스가 메달을 따자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쏟아졌다. 수영장 바깥에서는 그의 출전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소셜미디어에서도 그의 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분노가 이어졌다. 리아 토머스가 반칙이라도 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는 규정에 따라 수영을 했고, 규정에 따라 메달을 땄다.

분노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리아 토머스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는 원래 윌리엄 토머스라는 남성이었다. 그는 2019년 스스로를 여성으로 정체화했다. 그리고 성전환을 위해 2019년 5월부터 호르몬 대체요법을 받기 시작했다. 2020년에는 이름을 리아 토머스로 바꾸고 여성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성전환 수술은 받지 않았다. 경기 출전에 꼭 외과적 수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성전환자, 그러니까 남성에서 여성으로 정체화한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가 여성 경기에 참여할 자격을 얻으려면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억제 요법을 1년간 받아야 한다는 게 미 대학스포츠협회 규정이었다. 리아 토머스는 그 조건을 충분히 충족했으므로 여성 경기에 나갈 자격을 획득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리아 토머스가 지난해 3월 애틀랜타에서 열린 미국대학스포츠협회 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의 리아 토머스가 지난해 3월 애틀랜타에서 열린 미국대학스포츠협회 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물리적 우위와 윤리적 딜레마

윌리엄이 리아가 되어 여성 경기에 출전하자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남성으로서 남성 경기에 출전하던 그의 성적은 400위권 정도였다. 여성으로서 여성 경기에 출전하기 시작하자 올림픽 메달리스트도 그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됐다. ‘공정’의 문제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펜실베이니아대 여자 수영팀 선수 일부는 2022년 2월 리아 토머스의 대회 출전 자격을 박탈해달라고 미 대학스포츠협회에 탄원했다. 그들은 “토머스의 경기 성적은 남성부 462위에서 여성부 1위로 올라갔다”며 “우리는 여성으로 성전환한 토머스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하지만 스포츠와 관련해 생물학적 성은 누군가의 성 정체성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토머스는 강력하게 스스로 방어해야만 했다. 그는 4살 때부터 수영을 시작했다. 수영이 사라지면 그의 세계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트랜스젠더 아이들이 그러하듯 리아 토머스 역시 사춘기 이후 정체성 문제로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렸다. 그는 “성전환을 한 뒤 정신적으로 훨씬 안정감을 찾았다”며 “나는 대회에서 이기기 위해 성전환을 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여성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자,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 지금쯤 윤리적 딜레마에 빠져 있을 것이라고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지난 몇년은 다양성의 시대였다. 우리는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의 경계 바깥에도 많은 다른 젠더가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왔다. 트랜스젠더 남성과 여성이 겪는 사회적 차별을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리아 토머스는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사회적 편견을 제거하기 위해 평생을 투쟁해온 인물이다. 동시에 우리는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의 육체적 능력에는 차이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그냥 지나칠 수도 없다. 많은 스포츠 저널의 연구에 따르면 남성으로 태어난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 호르몬을 복용해도 생물학적 여성보다 타고난 근육량과 골밀도에서 우위를 차지한다. 한국에서 가장 강한 여성들이 출전했지만 최종 단계에서는 결국 남성들이 영예의 대부분을 가져간 <피지컬: 100>은 그 어쩔 도리 없는 증거 중 하나일 것이다.

리아 토머스가 지난해 2월 매사추세츠에서 열린 아이비리그 여자 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에서 역영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리아 토머스가 지난해 2월 매사추세츠에서 열린 아이비리그 여자 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에서 역영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농구·사이클에서도 논란

지금 미국에서는 리아 토머스를 두고 일종의 문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공화당 유력 대선 후보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는 얼마 전 리아 토머스처럼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선수가 여성 경기에 출전하는 것이 ‘사기’라고 선포했다. 리아 토머스와 여성 경기에서 경쟁한 라일리 게인스는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열심히 노력한 여성들로부터 챔피언 타이틀을 훔친 오만한 사기꾼”이라고 비난했다. 라일리 게인스에게는 트랜스젠더 인권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의 비난이 쏟아졌다. 스포츠 미디어 <이에스피엔>(ESPN)이 리아 토머스를 지난 3월 ‘여성 역사의 달’ 대표 인물로 지정하자 소셜미디어에서는 여성들의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리아 토머스는 어디에나 있다. 지난 3월 남성에서 여성으로 정체화한 사이클 선수 오스틴 킬립스는 뉴멕시코주에서 열린 ‘투어 오브 더 길라’ 여성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상금 3만5천달러를 얻었다. 국제사이클연맹도 경기 전 1년간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일정 수준을 유지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성 경기 출전을 허용한다. 여성 선수들의 거센 비판이 이어졌다. 최근 미국 버몬트주 소속의 여자 농구팀은 상대 팀에 트랜스젠더 선수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아예 기권을 해버렸다. 아마도 이런 전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스포츠의 세계에서 새로운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어떤 전환점을 목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리아 토머스는 2024년 파리올림픽 출전을 위한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갈 예정이다. 미국수영협회 기준으로는 테스토스테론이 일정 수치를 기록하면 리아 토머스의 출전은 가능하다. 하지만 국제수영연맹(FINA)은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가 2차 성징 발현기인 12살 이전에 호르몬 치료를 받지 않는 한 여성 경기에 나서지 못하도록 얼마 전 규정을 수정했다. 규정과 규정이 부딪치고 있다. 생각과 생각이 충돌하고 있다. 공정과 공정이 격돌하고 있다. 개인의 행복추구권과 또 다른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대립하고 있다. 여기 비하면 스포츠가 첨단기술 경쟁으로 변질됐다는 비난 앞에서 전신수영복을 퇴출시킨 2009년 국제수영연맹의 결정은 정말이지 쉬운 고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젠더는 또 다른 전신수영복인가? 여러분은 이 질문 앞에서 뭐라고 답변할 것인가?

문화 칼럼니스트

영화 잡지 <씨네21> 기자와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했다. 사람·영화·도시·옷·물건·정치까지 관심 닿지 않는 곳이 드문 그가 세심한 눈길로 읽어낸 인물평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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