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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한국의 오바마’를 꿈꾸며…“2010년 지방의원 도전”

등록 2008-11-20 14:19

결혼이주여성인 이례사(맨 왼쪽)씨와 쟈스민(가운데)씨가 서울 공덕2동 한국여성정치연구소에서 김은주소장으로부터 선거제도 등에 관한 교육을 받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결혼이주여성인 이례사(맨 왼쪽)씨와 쟈스민(가운데)씨가 서울 공덕2동 한국여성정치연구소에서 김은주소장으로부터 선거제도 등에 관한 교육을 받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다문화가 미래다] 4. 영원한 이방인은 없다
‘이주여성 정치인 만들기 프로젝트’ 20여명 참가
“아이들은 차별없는 한국 국민으로 살게 하고파”
“가만히 있으면 우리가 뭘 원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목소리를 온 세상이 알 수 있어야 합니다.”

13년 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필리핀 출신 자스민(32)은 요즘 ‘한국의 오바마’를 꿈꾸고 있다. 필리핀에서 의과대학 2학년을 다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의사의 꿈을 접었던 그는 최근 정치라는 큰 바다에 작은 발걸음을 내디뎠다. 12살과 8살짜리 남매를 둔 자스민은 현재 <교육방송>에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초급’ 프로그램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방송> ‘러브인 아시아’에서 패널로 활동 중이다.

그는 지난 1월 한국여성정치연구소 김은주 소장과 만나면서 정치에 눈을 떴다. 김 소장이 그에게 ‘제1호 국제결혼 이주여성 정치인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이는 지난 10월부터 한국여성정치연구소가 여성부 후원으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다문화 가정 여성이 비례대표 의석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자스민은 그때 “한국에서 처음으로 투표를 해봤고, 선거 때마다 누가 뽑으라고 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생각 없이 투표를 했는데 무슨 정치냐”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똑같이 세금 내는 국민으로서 다문화 가정 여성들도 필요한 것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김 소장의 설득을 받아들였다. 자스민은 그 뒤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20여명의 이주여성들과 구의회, 서울시청, 국회의사당 등을 방문하면서 정책이 세워지고 집행되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또 이들과 함께 자신의 아이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다지게 됐다.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스리랑카 출신 이레샤(34). 그는 ‘한국에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편견”이라고 짧게 답했다. 이레샤는 “일부이긴 하지만, 이주여성을 보고 ‘팔려온 신부다. 못 배운 사람들이다. 못사는 나라에서 왔으니 돈이나 벌어 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런 치욕적인 말이 없어지고, 우리 아이들만큼은 당당한 한국 국민으로 살 수 있는 나라를 하루빨리 만들려고 적으나마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당한 사회의 주역으로 나서려는 이주민들의 욕구는 점차 강렬해지고 있지만, 편견은 여전하다. 필리핀 출신 여성 주디스 알레그레(37)는 지난 총선에서 창조한국당 비례대표로 출마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기자회견을 본 김해성 목사는 “일부 기자들이 그에게 ‘애국가 1절 불러봐라’, ‘대한민국 헌법 1조가 뭐냐’는 등의 주문을 했다”며 “그가 왜 정치에 나섰는지보다는 한국인으로서의 자격을 캐물어 흠집을 내려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한국여성정치연구소 김은주 소장은 “지금까지는 우리 시각에서만 이들이 ‘무엇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진정한 목소리를 듣는 데엔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이 자신은 물론 우리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바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결혼 이민자들이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는 것은 권리행사의 단초가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며 “이들을 유권자로 고려한다면 당연히 모든 선거에서 이들을 위한 공약이나 정책이 마련돼야 하지만, 사실상 대부분 정당들은 공약이 아예 없거나 두루뭉술한 정책만 내놓고 있어 이주민들의 정치·사회적 입지 강화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은 그동안 복지 또는 사회 통합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며 “결혼 이민자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90%에 육박하는 만큼 이들의 정치적 입지와 정치력을 강화할 때가 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다문화의 대표 주자 격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한국 출신으로선 처음으로 지난 9월 시장에 선출된 권기범(46·뉴사우스웨일스주 시드니 스트라스필드)씨는 “이주민들의 정치 참여를 돕는 것은 다문화·다인종 사회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갈등의 틈새를 메우고 봉합하는 중요한 치료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성남/김기성,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일본인 이주여성 오이즈미 후사코가 지난달 24일 울산 울주군 온산읍 덕신경로당에서 음식을 만들어 노인들을 대접하고 있다.
일본인 이주여성 오이즈미 후사코가 지난달 24일 울산 울주군 온산읍 덕신경로당에서 음식을 만들어 노인들을 대접하고 있다.

보호대상→봉사주체 ‘당당한 변신’

경로당·장애인 봉사 등 적극적
최근 ‘람사르총회’ 때도 맹활약

봉사활동으로 한국 사회 편입을 다지는 이주민들이 늘고 있다. 지원과 보호만을 받는 ‘주변인’에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 출신 오이즈미 후사코(50·울산 울주군 온산읍)는 격주 금요일마다 집 근처 덕신경로당을 찾는다. 다른 주부 4명과 함께 50여명에 가까운 노인들의 점심을 제공해온 지 어느새 8년. 그는 지금껏 이 봉사활동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1988년 결혼해 한국으로 온 오이즈미 역시 다른 이주여성들처럼 처음엔 집안만 맴돌았다. 동남아 등에서 이주한 여성들보다는 외모 때문에 겪는 맘고생은 덜했지만, 입과 귀가 막혀 애를 먹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독학을 통해 언어 능력을 키워나가면서 소통의 어려움을 이겨냈다. “스스로 사회에서 의미 있는 일을 찾아서 하지 않으면 영원히 이방인에 머무를 수밖에 없어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도 있지만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 것도 사뭇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제 마을 부녀회에서 장애인체육대회까지 도우미가 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앞장서는 ‘한국 아줌마’가 됐다”며 미소를 지었다.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4일까지 열린 ‘람사르 총회’에서도 이주여성들의 활동은 빛났다. 습지 보호를 위해 각국 정부 대표와 환경운동가들이 모여 의견을 나눈 대규모 국제행사에서 ‘외국어 전문 생태해설사’로 한몫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경남 창녕군은 람사르 총회 기간 중 ‘우포늪’을 찾을 외국 환경단체 회원이나 관광객을 위해 생태해설사를 모집했다. 접수 결과, 지원자 22명 가운데 10명이 필리핀, 베트남, 일본, 중국, 타이 등 외국에서 온 다문화 가정 주부들이었다.

충북 청원군에서 지난 9월 출범한 ‘레인보우 자원봉사단’은 중국, 필리핀, 타이, 일본, 베트남, 캄보디아, 몽골 등 일곱 나라 출신 결혼이주여성 50명이 모여 만든 단체다. 이들은 매달 두 차례씩 복지시설 등을 찾아 각 나라의 음식과 문화 등을 선보이고, 청소 등 봉사활동도 벌인다.

성덕복지재단 남현 대표(경원대 겸임교수)는 “정착이 어려웠던 이주여성들이 적극적인 봉사활동에 나선 것은 다문화 사회의 큰 수확이자 기쁨”이라며 “이는 이주민 자신들의 에너지를 확인하는 긍정적 활동인 것은 물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성남 울산/김기성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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