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성향 전원위서 부결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가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심리중인 헌법재판소에 공식 의견을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인권·시민단체들은 보수 성향 인사들이 인권위 전원위원회의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서 빚어진 일이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인권위는 8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 13층 회의실에서 전원위를 열어 ‘야간집회를 일률적,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의견을 헌재에 내는 안건을 논의했으나, 회의 참석 인권위원 9명 가운데 찬성 위원이 4명에 그쳐 부결시켰다. 전원위는 위원장 1명과 상임위원 3명, 비상임위원 7명 등 11명으로 구성되며, 재적위원 과반수가 찬성해야 안건이 의결된다.
이날 회의에서 정재근 인권위원(법명 법안)의 후임으로 취임한 한태식 인권위원(법명 보광)은 “헌재가 심리중인 사안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헌재의 독립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인권위는 한 위원이 임명되면서 진보와 보수 성향의 위원 수가 6 대 5에서 5 대 6으로 역전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날 결정에 대해 명숙 ‘국가인권위원회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활동가는 “인권위원 구성이 바뀌면서 인권위의 성격마저 보수화했다는 반증”이라고 말했다. 앞서 인권위는 법원 판결문과 검찰 수사 결과 발표 등을 토대로 야간시위를 폭력성과 연관 짓기 어렵다는 자체 분석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앞으로 인권위가 정권에 부담이 되는 결정은 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지적도 나왔다. 유남영 인권위 상임위원은 “이미 야간집회 조항에 대한 헌재의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나와 집시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인권위가 의견을 표명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앞으로 어떤 의견 표명이 가능할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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