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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딸 14년간 못봤는데, 사위가 소득있다고…”
기초수급자 급여 삭감 분통

등록 2011-07-22 20:25수정 2011-07-23 00:46

보건복지부의 ‘부양의무자 확인조사’로 기초생활 급여가 삭감된 김학식씨가 2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2동 자신의 집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김씨는 “집을 나서면 돈이 들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자제하고 주로 집에서 지낸다”고 말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보건복지부의 ‘부양의무자 확인조사’로 기초생활 급여가 삭감된 김학식씨가 2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2동 자신의 집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김씨는 “집을 나서면 돈이 들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자제하고 주로 집에서 지낸다”고 말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복지부 부양의무자 재산 조사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김학식(63)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다. 지난 10년 동안 매달 나라에서 43만원을 받아 생계를 꾸려왔다. 그 돈으로 임대주택 월세(28만원)와 전기·수도요금을 내고 나면, 쌀과 김치만으로 끼니를 때워도 하루 두 끼 챙겨 먹기가 버겁다. 그런 그에게 최근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생겼다. 지난 6월20일 생계급여 통장을 찍어 보니 평소보다 8만원 삭감된 35만원만 들어와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동사무소를 찾아갔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따님이 결혼해서 사위의 소득이 기준을 넘으시네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수급자에게 일정 기준을 넘는 소득과 재산을 가진 부양의무자(1촌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가 있을 경우 수급액을 깎거나 수급 대상에서 탈락시키도록 하고 있는데, 사위의 소득이 새로 잡혔으니 급여를 줄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딸이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8년, 사업을 하던 그는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사태로 40억원의 부도를 맞고 가족과 헤어졌다. 사채업자들의 빚 독촉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왔다. 그 뒤 몇년간의 노숙생활을 거쳐 공사장 일용직으로 일하다 팔을 심하게 다쳐 장애 판정을 받았다. 겨우 쪽방을 얻어 살다가 2년6개월 전부터는 임대주택에서 산다.

김씨는 “13년 동안 딸 얼굴을 한 번도 못 봤고, 당연히 사위는 얼굴도 모른다”며 “가족관계 단절을 입증하지 못하거나 딸 부부가 나를 부양하기 힘들다는 소명자료를 안 내면 나는 꼼짝없이 급여가 깎인 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이명박 대통령과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앞으로 유서도 써놨다고 한다.

급여중단 통보받고 “나라에서 굶겨죽이려고 하나”

“35만원으로 어떻게 살겠습니까? 월세가 한 달이라도 밀리면 임대주택에서 쫓겨나는데, 그 끔찍한 노숙생활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어요. 죽고 나면 방에서 내 편지(유서)가 발견될 것 아니겠어요? 죽어서라도 이 현실을 알리고 싶어요.”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월 개통된 사회복지통합관리망(사통망)을 활용해 지난 5월부터 기초생활 수급자의 부양의무자에 대한 소득·재산 조사를 대대적으로 벌이면서 김씨처럼 급여가 줄거나 아예 수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2일과 13일에는 수급자 탈락 통보를 받은 노인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시민단체에는 억울함과 막막함을 호소하는 빈곤층의 문의전화가 줄을 잇고 있다.

대구에 사는 이지현(가명·56)씨도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수급 대상에서 탈락한 경우다. 그동안 한 달에 40여만원씩 받아왔는데 7월에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씨는 “나라가 왜 30년도 더 지난 내 과거를 후벼파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큰아들이 6살, 작은아들이 4살 때 아이들을 버려둔 채 집을 나왔다.


“아들이 있다는 얘기를 구청에서 듣고는 밤새도록 생각했어요. 공무원들이 이의신청 하라고 말하는데, 난 아무것도 안 할 겁니다. 그동안 아이들은 잊고 살았습니다. 나는 죽을 준비 다 돼 있습니다. 나라에서 굶겨 죽이자고 하는 일 아닙니까?”

정부의 이런 ‘수급자 솎아내기’는 그동안 틈날 때마다 ‘친서민’과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강조해왔던 것과도 모순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5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방영된 ‘화장실 3남매’ 같은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내라고 직접 지시했고,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전국에서 일제조사를 벌여 2만3000여명을 ‘발굴’하기도 했다. 복지부는 또 부양의무자 소득 기준을 현재 최저생계비의 130% 이상에서 185% 이상으로 올려 ‘사각지대 빈곤층’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렇게 겉으로는 ‘복지 확대’를 내세우면서도, 뒤에서는 사통망을 활용해 수급자를 걸러내는 데 행정력을 집중했다. 수급자와 부양의무자의 각종 소득과 재산, 복지혜택 이력 등을 통합관리하는 사통망을 활용하면 수십년 전 헤어진 가족까지 이 잡듯 찾아낼 수 있다. 정부는 ‘부정 수급자’를 가려내려면 사통망이 꼭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사통망을 바탕으로 더욱 엄격해진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해 급여 중단을 통보받은 사람들은 7월 현재 10만3000여명에 이른다. 급여 삭감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권덕철 복지정책관은 “지방까지 행정력이 미치지 않아 (대대적인 정비가) 지금껏 미뤄져 왔던 것”이라며 수급자 재조정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진수희 복지부 장관은 21일 복지 공무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피해자 구제 방안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부양의무자 확인 조사는 공정성 확립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당부 또한 잊지 않았다.

정부의 이런 이중적인 행보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전형적인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식 행정”이라고 비판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공동행동’의 박경철 대표는 “정부가 겉으로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해 복지를 확대하는 서민정책을 펴는 것처럼 해놓고, 속으로는 수십년 전 헤어진 가족까지 찾아내 서민들의 가슴을 후벼파고 엄격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들이대 대상자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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