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참사뒤 ‘구타·기수열외’ 확인…군에 종합대책 권고
지난 7월 ‘총기참사 사건’으로 4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한 해병대 2사단에서 관행적인 구타와 가혹행위는 물론 ‘기수열외’가 있었다는 사실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조사 결과 확인됐다.
인권위는 6일 “사건 발생 다음날부터 직권조사를 벌인 결과, 일반 사회에서 생각하기 어려운 가혹행위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었고 문제가 된 기수열외도 존재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기수열외란 부대원들의 눈 밖에 난 특정 사병을 선임병과 후임병이 함께 집단적으로 따돌리는 해병대 특유의 악습이다.
인권위 조사 결과를 보면, 해병대 안에서 선임이 후임에게 많은 양의 과자나 빵을 강제로 먹게 하는 ‘피엑스(PX)빵’, 가슴 위에 올라타 주먹으로 폭행하는 ‘엽문’, 담뱃불을 손바닥이나 손등에 대고 지지는 행위(속칭 ‘담배빵’), 군복 입은 사병의 성기를 향해 라이터를 켠 채 방향제 분사하기, 다리에 테이프를 붙였다 떼며 털 뽑기 등 엽기적인 가혹행위가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가해 선임병들이 “장난 또는 해병대의 전통으로 인식했다”고 진술해, 이런 가혹행위에 경각심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인권위는 ‘기수열외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는 당사자의 진술이나, 후배가 선임에게 반말하고 무시하는 행위가 있었던 점을 고려할 때 기수열외가 관행적으로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사건 발생 전 해당 부대 중대장 등 간부들이 총기참사를 일으킨 김아무개 상병을 모두 31차례 면담해 ‘행동이 불안하다’, ‘조그만 지적에도 인상이 굳어진다’는 등의 부정적 관찰 내용을 9차례에 걸쳐 기록했지만, 별다른 조처는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부대 안에서 음주가 공공연히 이뤄졌으며, 지휘관과 상황병들이 총기·탄약 관리고를 잠그지 않은 채 자리를 벗어나고 열쇠를 분리 보관하지 않은 사실 등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국방부 장관에게 해병대 사령관으로 하여금 가혹행위를 한 5명과 지휘책임자 6명을 징계하도록 하는 한편 △‘군인복무기본법’ 제정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상설 부대 진단조직·인권담당 부서 설치 △종합적 인권교육 계획 수립·실시 △사병간 사적 제재 금지 등 새 병영문화 정착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또 기획재정부 장관에게도 새 병영문화 정착을 위해 전문인력을 배치하고 관리운영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예산 반영 등의 조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지난 3월 해병대 1사단을 직권조사한 뒤에 이뤄진 인권위의 권고 취지와 달리 해병대는 외부 전문가의 참여 없이 자체 부대 진단을 실시했는데, 장병 사이에 벌어지는 가혹행위나 기수열외 등의 문제를 확인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며 “이번 권고는 법제·조직·예산 등 구조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해 실효성을 높이도록 했다”고 밝혔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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