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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2대 악법’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급선무

등록 2012-10-29 20:51수정 2012-10-29 21:58

  29일 서울 종로구 계동 보건복지부 청사 정문 앞에서 1급 장애인 문명동(33)씨가 ‘낙인의 사슬 장애등급제·빈곤의 사슬 부양의무제 즉각 폐지하라’는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유진 기자  <A href="mailto:frog@hani.co.kr">frog@hani.co.kr</A>
29일 서울 종로구 계동 보건복지부 청사 정문 앞에서 1급 장애인 문명동(33)씨가 ‘낙인의 사슬 장애등급제·빈곤의 사슬 부양의무제 즉각 폐지하라’는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중증장애인 화재 참변…비극 되풀이 막으려면

등급제는 행정 편의주의 정책일 뿐
개인별로 정작 필요한 지원 못받아
부양가족 있다는 이유로 자비 부담
활동보조 시간도 적어 위험 내몰려

장애인 복지예산 GDP대비 0.6%뿐
OECD 평균인 2.1%에 크게 못미쳐

1급 장애인인 문명동(33·사진)씨는 ‘낙인의 사슬 장애등급제·빈곤의 사슬 부양의무제 즉각 폐지하라’는 팻말을 들고 매주 월요일 서울 종로구 계동 보건복지부 청사 정문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29일 복지부 앞에서 만난 그는 “장애 1급이지만 부모님과 부모님의 자택이 있다는 이유로 국민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싶어도 못 받는다”고 말했다.

근육병을 앓고 있던 허정석씨는 고작 한 시간을 허락받지 못해 3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두달 전, 활동보조인이 퇴근하고 어머니가 집으로 오는 사이 24시간 부착하고 있어야 할 인공호흡기가 빠져버린 것이다. 그는 하루 3.3시간의 활동보조서비스밖에 받지 못했다. 1급 장애인이었지만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기에 활동보조시간을 더 받지 못했던 것이다. 국회 보건보건복지위 소속 한나라당 김정록 의원은 “자신을 부양하기 위해 어머님이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역설적으로 어머니와 같이 산다는 이유로 추가 시간을 더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는 ‘장애인 2대 악법’으로 일컬어진다. 장애등급제는 1989년부터 각종 장애인 복지제도의 절대적인 기준이 돼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정책실장은 “장애등급제는 행정편의를 위한 정책일 뿐 장애등급제를 적용하는 나라는 거의 없고, 우리가 제도를 수입한 일본에서조차 지금은 장애등급을 이유로 한 서비스의 제한이 없다”며 “우리나라는 오히려 이를 강화해 장애인들의 삶을 옥죄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07년 4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중증장애수당 신규 신청자를 대상으로 총 9만3000건의 장애등급심사를 한 결과, 전체의 36.7%가 등급이 하락했다. 상향조정된 비율은 0.4%에 그쳤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의 실제 이용자도 10월 현재 3만8000여명에 그친다. 그나마 1급 장애인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용 한도인 월 103시간을 지원받고 있는 사람은 1만5418명뿐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자는 이용료가 면제되고, 차상위는 2만원의 정액제이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가구소득에 따라 본인부담금을 매기는 탓이다.

또 1급 장애인들에 대해서도 일상생활 수행능력조사를 해 점수에 따라 103시간, 83시간, 62시간, 42시간으로 구분한다. 최대 80시간인 추가급여를 받으려면 독거 가구, 출산, 학생, 취업 등의 조건이 있어야 한다. 가족과 함께 산다면 원칙적으로 추가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복지부가 내년 2등급까지 대상자를 확대한다고는 하지만, 이용자가 크게 늘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한국장애인자립센터총연합회 원종필 사무처장은 “올해 예산 3099억에서 내년 3214억으로 115억 늘었지만, 증액분은 지원단가 인상 등 자연증가분일 뿐, 시간이나 자부담 제약이 커 대상자가 크게 확대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실질적인 확대가 되기 위해선 등급제와 시간 상한선을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장애인계의 공통된 요구다. 또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들이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하게 하는 부양의무자제도가 없다면 기초생활수급 자격을 얻어 자부담 없이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장애인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는 장애인등급을 폐지할 계획이 없다. 복지부 송재찬 장애인정책국장은 “장애등급제의 경우 수십가지 장애복지 서비스 제공의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당장 폐지할 수 없고, 서비스의 양을 필요한 만큼 늘리는 문제는 보충적으로 이뤄져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지원 예산부터 대폭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2007년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장애인복지 예산 비중은 0.6%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E) 회원국가 평균 2.1%에도 못미치는 최하위권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선진국들은 장애인 지원 자격제한 없어
일본선 ‘활동보조인 30분내 도착’ 지침

국외에선

장애인활동가 김주영(33)씨가 집에서 난 불을 피하지 못해 숨진 일을 계기로 우리나라 장애인 지원제도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한겨레> 27일치 1면, 28일치 1·3면). 전문가들은 유럽의 복지국가 수준은 아니어도 가까운 일본의 장애인 지원제도 정도는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 장애인 지원제도의 가장 큰 원칙은 ‘누구나 제한 없이 자신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다. 한국처럼 장애등급으로 지원자격을 제한하거나 활동보조 상한제를 두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본의 장애인들은 ‘장애인자립지원법’을 통해 하루 최대 24시간까지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루종일 서비스를 못 받는 경우라도 활동보조인이 30분~1시간 간격으로 방문해 소변통을 비우거나 문제가 없는지 살피는 ‘순회서비스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활동보조인이 장애인의 집에서 ‘30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곳’에 거주하도록 관련 지침에 명시돼있다.

병원·경찰서·소방서 등 지역 관공서와 연계한 위기관리시스템도 잘 갖춰져있다. 정종화 삼육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일본은 장애인의 집에 손쉽게 누를 수 있는 대형 버튼을 설치해 병원·소방서 등으로 언제건 연락을 취할 수 있게 하고,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이 함께 화재·지진·성폭력 같은 위급 상황에 대처하는 위기관리 훈련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일본 정부는 장애에 ‘등급을 매겨’ 지원하지 않는다. 대신 전문가들이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지원자격을 결정한다. 공무원의 방문조사와 의사 등 전문가의 의견서로 1차 조사를 한 뒤, 2차로 지자체의 심사회에서 자격을 판단한다. 동거 가족 유무나 소득 수준으로 지원자격을 제한하지도 않는다. 부양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이 아니라 장애인의 ‘자립’을 돕자는 취지이므로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가도록 전문가들이 철저히 심사하는 것이다.

일본의 장애인들은 활동보조 서비스 비용을 거의 부담하지 않는다. 저소득층은 무상으로 서비스를 제공받고, 소득 수준이 높다해도 최고 10%를 부담할 뿐이다. 그나마도 명목상으로만 그렇다. 조원일 경기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일본의 장애인들은 다양한 지원 법률을 적용받아 장애인자립지원법에 규정된 10% 자부담을 감경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대신 철저한 자격조사를 통해 예산 낭비를 막는다”고 설명했다.

동거 가족이 있거나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기계적으로 지원부터 줄이고 보는 한국과 대조적이다. 박찬오 서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일본 등 외국은 별도의 판정제도를 잘 갖추고 있어 필요한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므로 한국처럼 등급 제한이나 상한제를 둘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일본이 장애인 지원제도를 잘 갖춘 배경에 대해 정종화 교수는 “오랜 기간 장애인 자립 운동이 펼쳐져 자립생활은 장애인의 당연한 권리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이경미 진명선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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