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인력 전문기업 에버영코리아 직원들의 건배 구호는 “청바지”다.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라는 뜻이다. 12일 경기도 성남시 고령친화종합체험관 2층 사무실에서 윤충원 팀장(가운데) 등 직원들이 ‘청바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에버영코리아 제공
네이버의 전문업무 위탁 실험
네이버·다음 등 포털 사이트의 지도에는 거리뷰 기능이 있다. 거리에서 실제로 찍은 사진을 그대로 제공한다. 행인 얼굴이나 자동차 번호판같이 개인정보가 담긴 부분까지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 이런 부분을 희미하게 모자이크 처리하는 것을 블러링 작업이라고 한다. 네이버는 지도의 블러링 작업을 2013년 말부터 시니어 인력 전문기업 에버영코리아에 위탁하고 있다.
12일 경기도 성남시 고령친화종합체험관 2층 사무실에 들어서자 어르신 20여명이 모니터 화면에서 거리뷰 사진을 들여다보며 마우스로 꼼꼼히 블러링하고 있었다. 윤충원(69) 오전반 팀장은 “매일 아침 9시부터 4시간씩 근무하는 오전반은 50대 후반부터 80대 초반까지 2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하루 4시간씩 모니터 보며 작업
지도 흐릿하게 처리 정보 유출 막아
생산성은 청년들과 큰 차이 없고
오처리율은 오히려 절반 그쳐 직원은 정년 100살 평생직장 자긍심
사회성·건강 등 삶의 질까지 향상 성과 확인하자 위탁업무 늘리고
채용인력도 500명까지 확대 계획 섬유업체와 건설업체 등에서 40년을 일한 윤 팀장은 2013년 7월 은퇴했다. 산을 워낙 좋아해 매일 등산을 다녔지만 금세 지루해졌고,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고 느꼈다.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하던 차에 지인이 ‘노인을 채용하는 회사가 있으니 함께 지원하자’고 권했다. 평생 정년이 없고, 오전이나 오후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은퇴 전 무역 업무를 주로 담당하느라 문서 작성 외에는 컴퓨터를 많이 다뤄보지 않았던 그는 급하게 컴퓨터 기초 공부를 하고 입사시험을 치렀다. 서류-실기-면접 3단계를 운 좋게 통과했다. 속도와 정확도 등 마우스 조작 능력을 측정하는 인터넷 슈팅 게임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덕이 컸다. 큰 기대 없이 입사한 회사였지만 2개월간의 직무 연수를 받으며 호감이 커져 갔다. “블러링 작업과 네이버밴드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관련 교육을 두 달 정도 받았는데, 내용이 참 꼼꼼했어요. 지금도 공부는 계속하고 있습니다. 네이버밴드로 공지사항이나 업무 관련 정보가 제공되는데, 커리큘럼에 따라 공부를 안 할 수 없는 분위기거든요. 회사에서 강조하는 게 ‘직장이 경로당화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최소한의 긴장감은 조성되어 있어 나태해질 수 없습니다.”(윤충원 팀장) 블러링 작업 결과는 네이버 자회사의 지도 품질관리(QC)팀에서 매주 점검해서 개인별 실적을 통보하고 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놀랍다. 1인당 평균 생산성은 청년들 1940건, 시니어 1880건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오처리율은 청년들 0.31%, 시니어 0.17%로 오히려 시니어가 절반에 불과했다. 윤 팀장은 “블러링 작업은 젊은이보다 노인한테 더 적합한 업무인 것 같습니다. 모니터 화면을 계속 쳐다보며 8시간 이상 집중한다는 건 무리거든요. 하루 4시간이 적당한 것 같고, 노인들이 산만하지 않아서 집중력 면에서 젊은이보다 더 낫지 않나 싶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에버영코리아 정은성 대표는 “군사시설이나 청와대 같은 특수시설도 블러링해야 하는데 경험이 일천한 젊은이들보다 어르신들의 판단이 훨씬 빠르다”며 “어르신이 업무에 숙련되기까지는 청년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숙련된 뒤에는 일처리가 더 꼼꼼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성과를 확인한 네이버는 지식쇼핑 상품 모니터링과 게시판의 유해 게시물 차단까지 에버영코리아에 맡기고 있다. 이 업무를 위해 에버영코리아는 지난해 8월 200명의 시니어를 추가로 뽑았다. 하루 4시간씩 주 5일 근무하는 블러링팀의 월 급여는 65만원이고, 유해 게시물 차단 업무를 맡고 있는 심야팀은 밤샘 7시간 근무에 야간수당까지 합쳐 160만원이다. 4대 보험은 기본으로 제공된다. 게다가 300여명의 직원 전원이 정년이 따로 없는 무기계약직 신분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100살까지 일할 수 있다. 정은성 대표는 “정년이 없다고 설명해도 믿지 않는 분들이 많아서 상징적인 의미에서 100살로 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충원 팀장은 “급여 외에도 시니어에 대한 회사의 배려가 참 꼼꼼하다”고 자랑했다.
“모니터 화면을 계속 들여다보기 때문에 눈이 피로할 수밖에 없는데, 회사에서 안과병원을 지정해 직원들이 시력과 안과질환을 정기적으로 점검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최근에 눈이 많이 오고 길이 얼자 낙상 사고 조심하라고 도시형 아이젠도 하나씩 나눠주더군요.”(윤 팀장)
보통 기업과는 다른 처우에 직원 가족들이 회사를 의심하는 일도 벌어졌다. 최근 한 직원은 사무실과 자기 책상 사진을 찍어 가족들한테 보냈다. “세상에 그런 회사가 어디 있냐”며 “다단계 회사가 아니냐”고 못 믿는 아들을 안심시키려는 조처였다.
“제일 좋은 건, 아침에 눈을 뜨면 갈 곳이 있고 할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규칙적으로 생활하니까 건강도 좋아지고, 좋은 분들 많이 만나니 좋아요. 오후 1시에 근무가 끝나면 고령친화종합체험관의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 뒤 2시부터 요가와 컴퓨터 강좌 등 체험관의 각종 프로그램을 배우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밴드로 동료들과 연락해 모임도 갖지요.”(윤 팀장)
시니어의 사회성 등 삶의 질이 향상되고 업무 성과도 기대 이상으로 나오자 네이버는 블러링 작업의 품질관리까지 위탁할 계획이다. 에버영코리아의 인사·교육 업무를 지원하는 네이버의 이한복 수석부장은 “시니어 인력의 가능성과 성과를 확인한 만큼 인력을 500명까지 확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성남/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지도 흐릿하게 처리 정보 유출 막아
생산성은 청년들과 큰 차이 없고
오처리율은 오히려 절반 그쳐 직원은 정년 100살 평생직장 자긍심
사회성·건강 등 삶의 질까지 향상 성과 확인하자 위탁업무 늘리고
채용인력도 500명까지 확대 계획 섬유업체와 건설업체 등에서 40년을 일한 윤 팀장은 2013년 7월 은퇴했다. 산을 워낙 좋아해 매일 등산을 다녔지만 금세 지루해졌고,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고 느꼈다.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하던 차에 지인이 ‘노인을 채용하는 회사가 있으니 함께 지원하자’고 권했다. 평생 정년이 없고, 오전이나 오후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은퇴 전 무역 업무를 주로 담당하느라 문서 작성 외에는 컴퓨터를 많이 다뤄보지 않았던 그는 급하게 컴퓨터 기초 공부를 하고 입사시험을 치렀다. 서류-실기-면접 3단계를 운 좋게 통과했다. 속도와 정확도 등 마우스 조작 능력을 측정하는 인터넷 슈팅 게임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덕이 컸다. 큰 기대 없이 입사한 회사였지만 2개월간의 직무 연수를 받으며 호감이 커져 갔다. “블러링 작업과 네이버밴드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관련 교육을 두 달 정도 받았는데, 내용이 참 꼼꼼했어요. 지금도 공부는 계속하고 있습니다. 네이버밴드로 공지사항이나 업무 관련 정보가 제공되는데, 커리큘럼에 따라 공부를 안 할 수 없는 분위기거든요. 회사에서 강조하는 게 ‘직장이 경로당화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최소한의 긴장감은 조성되어 있어 나태해질 수 없습니다.”(윤충원 팀장) 블러링 작업 결과는 네이버 자회사의 지도 품질관리(QC)팀에서 매주 점검해서 개인별 실적을 통보하고 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놀랍다. 1인당 평균 생산성은 청년들 1940건, 시니어 1880건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오처리율은 청년들 0.31%, 시니어 0.17%로 오히려 시니어가 절반에 불과했다. 윤 팀장은 “블러링 작업은 젊은이보다 노인한테 더 적합한 업무인 것 같습니다. 모니터 화면을 계속 쳐다보며 8시간 이상 집중한다는 건 무리거든요. 하루 4시간이 적당한 것 같고, 노인들이 산만하지 않아서 집중력 면에서 젊은이보다 더 낫지 않나 싶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윤충원 팀장(왼쪽)이 거리뷰 사진의 화면을 흐릿하게 하는 작업을 도와주고 있다. 에버영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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