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료(건보료) 부과체계를 개선해 임금 이외 추가 소득이 있는 근로소득자와 피부양자의 건보료 부담이 늘면, 그분들은 불만이 클 수 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복지부) 장관이 지난 28일 밝힌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백지화’ 선언의 이유다.
애초 정부가 마련한 개편안은 45만명 안팎의 고소득층한테 건보료를 더 거둬 600여만명의 저소득층 보험료를 낮추는 내용이다. 피부양자 제도를 활용해 ‘무임승차’해온 부유층, 월급 이외의 이자·임대소득이 많은 일부 고소득층한테 건보료를 제대로 걷자는 취지다.
30일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밝힌 건보료 무임승차자(건강보험 피부양자)는 지난해 6월 말 현재 2054만명으로 전체 가입자의 40%가량이다. 10년 새 450만명이 늘었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기획단)은 이들 중 종합과세 소득이 2000만원을 넘는 피부양자를 지역가입자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보험료를 내지 않았던 19만3000명가량에게 보험료(3034억원)를 걷을 수 있게 된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기획단이 마련한 개편안대로 추진할 경우 보험료가 느는 사람은 2000만원 초과 종합소득이 있는 근로자 26만명과 역시 2000만원 초과 종합소득이 있는 피부양자 19만명을 합쳐 45만명 안팎으로, 전체 직장가입자와 피부양자 3500만명의 1.3%”라며 “이들이 무서워 건강보험료 개편을 포기할 수는 없다. 논란이 있다며 개편안의 방향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논의를 심화시켜가면 될 일”이라고 짚었다.
그런데도 문 장관은 고소득층의 반발이 우려된다며 부과체계 개편을 백지화했다. 문 장관이 지목한 “임금 이외 추가 소득이 있는 근로소득자와 피부양자”는 어떤 식으로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의 허점을 활용해 왔을까?
➊ 창업해 직장가입자로 ‘신분세탁’
MB, 자기건물안 청소업체 대표 맡아
2007년 재산 175억인데 건보료 2만원
➋ 10억 예금부자의 ‘무임승차’금융소득 연 3900여만원이지만
4000만원 안넘어 ‘피부양자’ 돼
➌ 수십억 재산가의 ‘위장 취업’아들 주유소에 취직, 월급 60만원
30만원 넘던 건보료, 1만원대로
가장 일반적인 수법이 피부양자 제도를 활용한 무임승차다. 최아무개씨(60대)는 지난해 5월까지 건보료로 한달에 38만2620원을 냈다. 살고 있는 아파트는 과세표준액만 5억5000만원(시가 7억원 상당)짜리다.
은행예금 등 약 10억원에 가까운 금융자산도 있다. 은행에 묻어둔 예금에서 매달 300여만원의 이자가 나오고 따로 월 100만원의 연금도 꼬박꼬박 받는다. 그런데도 최씨는 지난해 6월 이후 건보료를 한푼도 내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현행 피부양자 인정요건은 ‘금융소득 4000만원 이하, 연금소득 4000만원 이하(1년 기준), 재산세 과세표준액 9억원 이하’다. 최씨는 같은 해 5월 자신의 2013년 금융소득이 3961만원으로 전년(4191만원)보다 약간 줄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를 근거로 “2013년 금융소득이 4000만원에 미치지 못하니 직장에 다니는 아들의 피부양자로 등록해달라”고 요구했다. 건보공단은 그를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보다 더한 사례도 있다. 경기도에 사는 이아무개(75)씨는 2005년 6월 아들이 운영하는 주유소에 취직했다. 당시 받은 월급은 60만원, 이를 기준으로 매겨진 건보료는 약 1만7000원이다. 여성인데다 칠순이 넘는 이씨가 주유소에 취직한 사실을 이상하게 여긴 건보공단이 실태를 파악해보니 이씨는 약 20억원(과세표준액 기준)짜리 부동산과 한해 3800만원에 이르는 임대소득 등을 갖고 있었다. 지역가입자 신분이었다면 매달 약 38만원의 건보료를 내야 했던 이씨는, 직장가입자한테는 임금소득만으로 건보료가 매겨진다는 사실을 알고 주유소에 ‘위장 취업’한 것이다.
많은 재무설계사가 부유층을 상대로 권하는 ‘합법적’ 건보료 줄이기 수법도 있다. 일종의 ‘위장 창업’이다. 대표적 사례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2000년대 초반 서울 강남에 영포빌딩 등 건물 3채 등을 보유했던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건물 안에 ‘대명기업’이라는 임대관리업체를 차려 대표를 맡았다. 지역가입자였다면 수백억원대 부동산과 임대소득 탓에 한달에 200만원대 건보료를 냈어야 할 이 전 대통령은, 업체 대표를 맡으며 직장가입자로 전환돼 건보료는 단숨에 2만원 안팎으로 줄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노년유니온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30일 오전 서울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정부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중단을 규탄하며 재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30일 “위장취업은 탈세이지만 아예 업체를 차려 건보료를 줄이는 것은 합법적인 절세에 해당한다”며 “직장가입자한테는 임금소득에만 보험료를 매기니 이런 사례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최성진 김양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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