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살 백정숙 할머니(왼쪽)가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사는 89살 김해운 할머니를 찾아 ‘말벗’을 해주며 다리를 주무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노노케어’ ‘우리동네 보육반장’ 호평
복지공무원 부족 상황서 대안 역할
“어떨땐 친구 같거나 언니 같기도…”
복지공무원 부족 상황서 대안 역할
“어떨땐 친구 같거나 언니 같기도…”
“할머니, 어젯밤엔 잘 잤어요? 아픈 곳은 없어?”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다세대주택 지하층. 백정숙(87) 할머니는 김해운(89) 할머니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간밤의 안부부터 물었다. 김 할머니의 손목과 발목을 여기저기 눌러보며 재차 “괜찮냐”고 했다. 김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집안 이곳저곳을 살폈다. 물을 뿌려가며 화장실 청소도 했다.
백 할머니는 5년 전부터 일주일에 한두번씩 김 할머니의 집을 찾는다. 백 할머니는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老-老 care) 일을 한다. 노-노케어에는 65살 이상 저소득 노인이 지원할 수 있는데 한달에 30시간 정도 노인돌봄 활동을 하고 20만원을 받는다.
김 할머니는 백 할머니가 오는 날을 “외출하는 날”이라고 했다. 2년 전 척추 수술을 받았고, 지난해 집에서 넘어져 손목과 발목을 다쳤다. 김 할머니는 “집에서도 혼자 넘어지는 판이니 백씨 없이는 집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백 할머니도 김 할머니처럼 혼자 산다. 함께 살던 아들은 5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떴다. 그때 노-노케어 일자리를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백 할머니는 “방배노인종합복지관의 소개로 김 할머니를 만나게 됐다. 할머니랑 같이 순댓국 먹으러 가는 재미가 있다. 지난 설에는 할머니가 밥을 챙겨 먹지 못할까봐 고기도 나눠 먹었다”고 했다. 5년째 서로를 보듬다 보니 두 할머니는 상대방을 닮아간다고 했다. “지금 김 할머니가 입고 있는 바지도 내가 골라줬어요. 이제는 친구 같아. 어떨 땐 언니 같기도 하고.”
백 할머니는 ‘동네복지 전문가’가 다 됐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김 할머니가 한달에 49만원 정도를 지원받는데 월세 25만원을 내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어요. 그러면 복지관에 내가 필요한 것들을 얘기해요. 주변에 다른 어려운 할머니들이 있으면 또 주민센터에 얘기도 하고 그래요.”
백 할머니처럼 서울 25개 자치구에서 노-노케어로 노인돌봄 활동을 하는 노인은 5332명, 김 할머니처럼 돌봄 지원을 받는 노인은 5737명이다. 노인 인구는 갈수록 느는데 노인복지의 사각지대를 채울 공무원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신체적,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는 공감 능력이 노-노케어의 또다른 장점이다.
이처럼 시민이 참여하는 동네복지는 육아에도 활용된다. 서울시는 2년 전부터 육아 노하우가 있는 여성을 ‘보육반장’으로 뽑아 동네 ‘초보’ 엄마들을 도와주는 ‘우리동네 보육반장’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구로구에서 보육반장으로 일하는 황현숙(46)씨는 11살 큰딸과 8살, 6살 아들을 두고 있다. 황씨는 “대학에서 아동학을 전공했다. 어린이집이나 놀이터, 문화센터 수업 정보를 초보 엄마들에게 나눠준다”고 했다.
이재완 공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는 노인과 노인, 엄마와 엄마들을 연결하는 동네복지는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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