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60대 여성이 손주를 돌보고 있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서강대 교수팀 고령자 8587명 조사
삶 만족 커져…신체 건강 다소 악화
“맞벌이 보육문제 보완책 될 수도”
삶 만족 커져…신체 건강 다소 악화
“맞벌이 보육문제 보완책 될 수도”
이아무개(64)씨는 손자 둘을 키운다. 갓난아이 때부터 도맡아 키운 아이들은 어느덧 여섯 살과 네 살이 됐다. 딸 부부는 결혼과 함께 서울 외곽의 이씨네 단독주택 2층에 전세 형태로 입주해 한집에 살았다. 딸이 첫아이를 낳자마자 이씨는 꼼짝없이 손자를 돌봐주게 됐다. 맞벌이하는 딸에게 직장을 그만두라 할 수도 없고, 부모로서 마냥 외면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딸이 둘째를 가졌을 때는 “둘째도 내가 키워줄게”라고 먼저 자청했다. 이씨는 “몸은 힘들고 늘 매이는 처지가 됐지만 첫애를 돌보면서 딸 부부와 관계도 더 좋아지고, 무엇보다 양육의 행복감이 컸기 때문”이라며 “몸은 힘들지만 아이들의 재롱을 볼 때는 웃음이 절로 난다”고 말했다.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손자손녀를 키우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늘고 있다. 손자녀 양육이 조부모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 23일 안태현 서강대 교수(경제학)가 최근 발표한 ‘한국에서 손자녀 양육이 고령자 건강에 미치는 효과 연구’ 결과를 보면, 손자녀 양육은 조부모의 심리적 건강에는 긍정적 효과를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는 “손자녀 양육은 심리적 건강 중 특히 주관적으로 느끼는 건강 상태와 자녀와의 관계 만족도를 높여, 삶의 전반적 만족도를 개선시키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다만 자녀와 한집에 같이 살지 않으면서 손자녀를 키우거나,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나이가 아주 많은 고령자의 경우에는 이런 심리적 건강 개선 효과가 미미하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손자녀 양육이 조부모의 지식과 정보를 효율적으로 다루는 인지기능을 높여주는 효과도 보였다고 연구는 밝혔다.
그러나 연구는 “이런 심리적 건강 효과와 달리, 신체적 건강 측면에서는 효과가 미미하거나 장기적으로는 다소 악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손자녀를 양육하는 고령자는 그렇지 않은 고령자에 비해 외래진료 횟수가 2년간 약 20회 정도 많았다”고 밝혔다. 이번 분석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격년으로 벌인 고령화연구패널 조사자료를 바탕 삼아 8587명의 고령자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안 교수는 “맞벌이 부부의 양육 문제 해결을 위해선 국공립유치원과 직장어린이집 등 공식 돌봄체계가 더 중시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조부모의 손자녀 양육이란 비공식 돌봄이 보완적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연구 결과가 보여준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조부모가 손주를 양육할 경우 소정의 양육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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