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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마음병’ 보듬는 정신보건요원들, 20일째 파업 “진짜 사장 나와”

등록 2016-10-30 18:21수정 2016-10-30 21:04

대부분 계약직…재직기간 2.7년
노조, 서울시와 4개월간 교섭 뒤
‘고용안정협약서’안 마련했지만
자치구 센터장들 거부로 파업

“20년간 악조건 속 사명감으로 일
시민 위해 고용안정 필요한데
시-자치구-센터가 핑퐁게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서울정신보건지부 조합원들이 28일 새벽 서울시청 옆 인도에서 고용안정 등을 요구하며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노동과 세계> 제공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서울정신보건지부 조합원들이 28일 새벽 서울시청 옆 인도에서 고용안정 등을 요구하며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노동과 세계> 제공
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들이 겪는 일은 더욱 알려져 있지 않다.

이들은 정신장애인들을 찾아내고 상담하고 교육해서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알코올 중독자들이나 자살 고위험자들도 대상이다. 직접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도 포함된다. 어린이나 청소년의 정신 건강도 살핀다. 내방 상담도 하고 전화 모니터링도 한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우면산 산사태(2011년)로 심리적 고통을 겪은 피해자들도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앉아서 하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살하겠다”는 전화를 받으면 밤낮없이 현장으로 달려나간다.

일은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 5월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경찰은 112로 ‘문제 있는’ 전화가 올 때마다 이들에게 함께 출동할 것을 요청한다. 2014년 ‘송파 세모녀 사건’ 뒤로는, 형편이 비슷한 사례가 확인되면 이들에게도 통보하도록 의무화됐다. 아동 학대 사례도 마찬가지다. 일하다 보면 험한 꼴을 겪기도 한다. 노골적인 성희롱이나 음란 행위, 만취 상태의 흉기 위협이 대표적이다. 겪고 나면 트라우마가 남는다. 이들 가운데 80%는 여성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전국 광역 지자체와 기초 지자체 사무에 속한다. 서울의 경우, 이들은 시가 운영하는 정신건강증진센터와 자살예방센터, 25개 구가 운영하는 정신건강증진센터 등 모두 27곳에 소속돼 일한다. 그러나 지금은 일하지 않는다. 서울시와 22개 자치구에 속하는 300여명은 지난 5일부터 파업 중이다(구로·관악·동대문구 제외). 26일부터는 23명이 서울시청 앞에서 무기한 노숙 단식에 들어갔다. 이들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서울시정신보건지부에 소속된 ‘정신보건전문요원’이다. 정신보건 쪽 사회복지사·간호사·임상심리사가 1년 이상 수련을 거쳐야 자격증을 얻을 수 있는 전문 분야다.

정신보건전문요원 제도가 생긴 지도 20여년이 지났다. 지난 1995년, 정신장애인을 사회로부터 격리·수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취지의 정신보건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이들은 대부분 계약직 노동자다. 1년 단기 계약직이 73.6%다. 평균 재직 기간은 2.75년이다. 고도의 감정노동이지만 숙련을 기대하기에 턱없이 짧다.

이들 센터의 운영 방식은 대부분 민간 위탁이다. 수탁자는 대체로 지역의 병원이고, 해당 병원의 의사가 센터장을 맡는 식이다. 센터장은 형식상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의 사용자이지만, 비상근인 데다 실질적인 권한도 없다. 재계약을 하거나 수탁자가 바뀌어도 새 수탁자에게 고용승계 의무는 없다. 직영은 3곳뿐이다. 직영도 신분이 불안정한 건 마찬가지다. 최근 직영으로 전환한 한 자치구 센터에서는 7개월, 10개월씩 쪼개기 계약이 이뤄졌다. 육아휴직 2개월째인 여성이 복귀 명령을 거부해 해고되기도 했다.

핵심에는 돈 문제가 있다. 예산은 크게 사업비와 인건비로 구성되는데, 각자 독립돼 있지 않고 총액 안에서 나뉜다. 인건비가 늘면 사업비가 줄어드는 구조다. 단기계약이 만연한 것도, 2인 1조로 출동할 수 있을 만큼 인원을 확보하지 않는 것도 이런 사정과 닿아 있다. 자치구 센터의 예산은 서울시와 자치구가 절반씩 부담한다. 권한도 절반씩인 셈이다.

노조는 지난 5월부터 서울시와 교섭을 벌여 지난달 28일 고용승계 및 유지를 뼈대로 한 ‘고용안정 협약서’ 잠정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지방노동위원회까지 나서서 중재했음에도 자치구 센터장들이 거부했다. 노조는 곧장 파업에 들어가며 “진짜 사장 나오라”고 요구했다. 파업 기간에도 서울시-자치구-센터의 사용자들끼리 ‘핑퐁 게임’을 계속하고 있다. 서울시 보건의료정책과 관계자는 “지난 21일 구청장들과의 회의에서 실무대표자 협의체를 꾸리기로 한 뒤 협약서에 대한 동의를 끌어내기 위해 계속 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자치구들은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우 지부장은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은 20년 넘게 열악한 조건을 참고 사명감으로 일해왔지만, 상담자가 계속 바뀔 수밖에 없어 당사자들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는 자괴감이 깊다”며 “시민들의 정신건강을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후퇴시킬 위험이 있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고용안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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