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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국정원이 지운 월 205만원 이자, 인혁당 피해자의 ‘빚고문’

등록 2017-09-02 13:59수정 2017-09-02 14:17

[토요판] 뉴스분석 왜?
‘인혁당 피해자’ 구제책은 없나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씨. 지난 2월에 난 부동산 경매 개시 결정에 따라 경기도 양평의 이씨 자택은 곧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다. 이 집에는 현재 이씨 부부가 살고 있다. 이명선 기자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씨. 지난 2월에 난 부동산 경매 개시 결정에 따라 경기도 양평의 이씨 자택은 곧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다. 이 집에는 현재 이씨 부부가 살고 있다. 이명선 기자

‘물고문’ ‘전기고문’이 끝나니 이제 ‘이자고문’이다. 박정희 정권하에 벌어진 최대 간첩 조작 사건의 희생양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들이 현재 ‘빚의 징역’을 살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이 인혁당 사건 무기수·유기수 피해자 77명에게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을 걸어 승소하면서 연 20%에 달하는 연체 이자율이 무섭게 빚 덩치를 키워나가고 있다. 국정원은 심지어 피해자들의 집과 통장, 연금을 압류했다. 집이 경매에 넘어간 이도 있다. 과연 해결책은 없는 걸까.

손녀는 4년 만에 다시 청와대에 탄원서를 냈다. 할아버지 이창복(84)씨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4년의 간극은 컸다. 초등학생이던 손녀 이혜인양은 고등학생(16)이 됐고, 청와대는 새로운 주인을 맞았다. 이창복씨는 그새 더 노쇠했다. 이씨의 흰머리는 모자로 다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많아졌다. 다만 한 가지 사실은 변함없었다. 이씨에게 수억원의 빚을 지운 채권자가 바로 국가정보원이라는 점이다. 2013년 7월 국정원은 이씨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을 냈고, 법원은 국정원의 손을 들어줬다. 그때부터다. 이씨가 국정원을 ‘빚쟁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게.

“할아버지 억울함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직접 탄원서를 들고 청와대로 간 겁니다. 그만큼 절박해서요.”

이창복씨, 청와대에 탄원서 냈으나
법원행정처, ‘어쩔 수 없다’ 답변 보내
국정원이 아파트 경매 넘긴 전영순씨
통장·연금 압류에 월 205만원씩 이자

청와대 “노력하겠다” 약속했지만
행정부가 사법부 판결 뒤집는 건 무리
“국정원 채권자 권리 포기가 우선”
“원점에서 전원합의체 판결해야”

반환금은 삽시간에 불어났다. 매일 27만1900원씩 연체이자가 붙는 탓에 그 금액은 이달 말이면 무려 10억원을 돌파한다. 설상가상 국정원은 이씨의 재산을 압류했다. 하나뿐인 집이 내일 당장 경매에 부쳐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 이씨를 목 죄었다. 이씨는 단 한번도 국가로부터 ‘부당’하게 돈을 받은 적이 없지만, 국가는 이씨에게 ‘부당’하게 얻은 돈을 돌려 달라고 하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부당’ 행위를 저지른 것은 국정원의 전신 중앙정보부(중정)다. 중정은 사건을 조작해 이씨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인혁당 사건 당시 15년형을 선고받은 고 전재권씨의 장녀인 전영순씨. 경기도 용인의 전씨 아파트는 이미 경매에 부쳐졌다. 지난 6월14일에 진행된 1차 경매는 유찰됐지만 2차 경매가 곧 시작될 예정이다. 이명선 기자
인혁당 사건 당시 15년형을 선고받은 고 전재권씨의 장녀인 전영순씨. 경기도 용인의 전씨 아파트는 이미 경매에 부쳐졌다. 지난 6월14일에 진행된 1차 경매는 유찰됐지만 2차 경매가 곧 시작될 예정이다. 이명선 기자

이창복씨는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다. 1974년 5월 무고하게 간첩으로 낙인찍혀 중정에 끌려간 뒤 무려 8년간 감옥에 갇혀 지냈다. 사건 조작의 주체는 국가였다. 중정은 간첩을 ‘생산’(?)함으로써 공안정국을 이어갈 명분을 꾸역꾸역 만들어냈다. 이씨의 비극은 출옥 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우울증, 불면증,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는 통에 하루하루 지옥 속에서 사는 것과 다름없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불가능했다. ‘무찌르자 공산당’이 아이들 고무줄놀이의 노래였던 시절, 이씨는 살아도 죽은 척 납작 엎드려 지내야만 했다.

“말뿐인 사과는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

무고함이 증명된 건 34년 만이었다. 2008년 1월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비로소 간첩 딱지를 뗐다. 손해배상청구 또한 순탄하게 진행됐다.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손해배상채무 지연금을 사건 당시부터 현재까지 계산해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3심은 모든 걸 뒤집어버렸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이자 계산을 최근부터 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였다. 즉, 30여년치 고통의 이자가 공중분해된 것이다. 그다음은 국정원 차례. 뒤이어 국정원은 ‘내 돈을 내놓으라’며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을 내서 승소했다. 이씨는 결국 결국 가지급받은 배상금 10억9000여만원 중 절반을 토해내야 하는 채무자 신세가 됐다.

이창복씨와 이혜인양, 그리고 혜인양의 동생 이가인(11)양이 탄원서를 들고 청와대로 향했던 지난 8월8일. 이날은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날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청와대를 찾았던 이씨는 이 소식을 접하고 내심 기뻤다. ‘지금 당장은 내 억울함을 몰라줘도, 그 언젠가 나 또한 국가로부터 깊은 위로와 함께 대책을 약속받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도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이날 오전에는 문무일 검찰총장이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과거 시국사건 수사에 대해 사과하면서 인혁당 사건을 직접 거론했다. 문 총장은 “과거사 유족, 가족, 당사자 등에게 기회가 되는 대로 위로를 전달할 시간을 만들거나 찾아서 사과와 유감을 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문 총장은 또 “재심 청구 이후 1·2심에서 일관되게 (무죄가) 인정된 결과가 나오면 더 이상 다투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저에게 검찰의 말은 구세주처럼 들리더라고요. 이제 다 끝났구나 안도감이 들었어요.” 이창복씨는 한껏 기대에 부풀 수밖에 없었다. 일련의 과정이 고무적이었다. 인혁당 사건 조작에 동참한 검찰이 찾아와 머리 숙여 사과를 하고, 정부가 집 압류를 풀어줄 거란 기대가 점차 고조됐다. 고통의 종착지가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과거사 피해 가족들을 직접 만나 사과하겠다던 검찰은 한달이 다 되도록 묵묵부답이다. 당시 뉴스 생중계를 통해 문 총장의 말을 직접 들은 인혁당 피해자들은 배신감마저 느끼고 있다. 인혁당 사건 무기수였던 고 나경일씨의 장녀 나은주(63)씨는 “말뿐인 사과는 우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며 “어떻게 언제 사과할지 밝히는 것이 사과하는 사람의 진정한 태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탄원서 작성도 공염불로 끝났다. 혜인양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에도 불구하고, 탄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탄원서는 대통령 비서실로부터 법원행정처로 이관됐는데, 이를 전해받은 법원행정처가 ‘어쩔 수 없다’ 식의 답변서를 이씨에게 보낸 것이다. 이씨가 받은 문서에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정하고 있는바, 당해 법관 외에는 누구도 재판에 관여할 수 없고, 나아가 대법원의 재판은 최종적인 것이므로 법률이 정한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이에 대하며 불복을 신청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삼권분립 원칙을 규정하고 있고, 이에 따라 법관은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해야 한다. 하지만 이씨는 되묻고 싶다. ‘독립적으로 재판해야 할 대법원이 정권이 바뀌자 왜 똑같은 사건에 대해 태도를 바꾼 것인가’. 앞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07년 1월 인혁당 사형수 8명에 대해 무죄 선고를 확정하고, 그해 8월 사형수 피해 가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손을 잡아줬다. 이 과정은 무기수·유기수 피해 가족들에게 큰 용기를 줬다. 이들 또한 2008년부터 차례로 재심을 신청해 무죄를 선고받았고, 2009년 8월에는 관련자 77명이 손해배상금 65%를 가지급받았다. 인생에 다시 빛이 드는 듯했다. 신세진 곳에 빚을 갚고, 돈을 각출해 재단도 세웠다. 피해 생존자들은 민주화단체에 남몰래 기부도 했다.

1975년 4월8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 대법원 판결 직후 법정의 모습. 당시 대법원이 8명의 사형을 확정하자, 인혁당 피해 가족들은 비통함에 오열했다. 4·9통일평화재단 제공
1975년 4월8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 대법원 판결 직후 법정의 모습. 당시 대법원이 8명의 사형을 확정하자, 인혁당 피해 가족들은 비통함에 오열했다. 4·9통일평화재단 제공

인혁당 재건위 사건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거리행진과 이를 저지하는 경찰의 모습. 당시 사건 조작을 세상에 알린 것은 외신 기자들이었다. 박정희 정권 때 언론 자유는 없었다. 4·9통일평화재단 제공
인혁당 재건위 사건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는 거리행진과 이를 저지하는 경찰의 모습. 당시 사건 조작을 세상에 알린 것은 외신 기자들이었다. 박정희 정권 때 언론 자유는 없었다. 4·9통일평화재단 제공

암투병 동생, 3억 토해내고 세상 떠나

알려졌다시피 반전은 그 후 벌어졌다. 2011년 1월 대법원이 ‘이자가 너무 많이 계산됐다’며 이자 지급 기준일을 2심 변론종결일로 바꿔버린 것. 그 결과 손해배상금은 반토막이 났다. 77명에게 가지급한 491억여원 중 210억원을 되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대법원의 논리는 이랬다. 사건이 벌어진 1974년으로부터 ‘장시간의 세월’이 흘러 통화 가치 등에 ‘상당한 변동’이 생겼고, 이 때문에 예외적으로 지연 이자 기산점을 변론 종결일부터 잡아 계산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장기간의 세월’과 ‘상당한 변동’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야말로 ‘두 가지 판결’이다. 사형수 피해 가족들은 문제없이 지연이자를 받았지만, 무기수·유기수 피해 가족들은 지연이자가 삭제됐다. 두 판결의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집권 정권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판결이 뒤집혔다.

또다시 박근혜 정부로 정권이 바뀌자 국정원은 한술 더 떴다. 사건 가해자인 중정의 후신 국정원이 돌연 채권자의 얼굴을 한 것이다. 2013년 7월 피해자 77명에 대해 가족별로 동시에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을 걸었다. 국정원은 삭제된 30여년치 이자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돌려주지 않은 기간에 맞춰 연체이자까지 갚으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법원은 끝내 국정원의 손을 들어줬다. 20%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연체이자율도 그때부터 적용됐다. 심지어 판결문에 ‘인혁당’이라는 세 글자가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판결문만 놓고 봤을 때는 피해자 가족들이 애초부터 받지 못할 돈을 부당하게 취하고 마치 ‘먹튀’하려는 자들로 비쳤다.

전영순(62)씨는 이창복씨보다 벼랑 끝에 한발 더 앞서 있다. 인혁당 사건 당시 15년형을 선고받은 고 전재권씨의 장녀인 전영순씨는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쫓겨날 처지다. 채권자 국정원이 반환금을 받아낼 목적으로 전씨의 아파트를 경매에 부쳤기 때문이다. 1차 경매는 다행히 유찰됐지만, 2차부터는 최저매각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사실 국정원은 아파트만 뺏은 게 아니다. 전씨가 가진 통장 7개 모두와 연금까지 압류했다. 전씨의 생활고는 심각하다. 집 담보대출로 빌린 2억5천만원과 생활비 명목으로 빌린 돈 때문에 다달이 205만원씩 이자를 물고 있다.

절박한 마음에 전씨는 지난 8월29일,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에게 탄원서를 썼다. 국정원의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 이후 비참해진 가족의 삶을 글로 담았다. 폐암 말기 판정 후 빚 독촉에 못 이겨 결국 3억8천만원을 토해내고 세상을 떠난 첫째 남동생의 이야기, 개인회생을 신청하고 중년의 나이에 투 잡을 뛰며 어렵게 반환금을 갚아 나가고 있는 둘째·셋째 여동생의 이야기를 담았다. 전씨 또한 결혼하는 아들을 위해 10원짜리 하나 보태주지 못하는 처지가 한스럽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다시 저희를 반환금 미납자란 범법자로 만들고 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인혁당 피해자 중 전씨처럼 부동산이 압류된 사람은 모두 5명이다. 전씨의 경우 부동산이 아파트여서 비교적 감정하기 쉬운 편이라 절차가 빨리 진행됐지만, 나머지 4명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감정평가사가 다녀갔기 때문에 조만간 경매일이 잡힐 가능성이 높다. 통장이 가압류되거나 압류되면서 정상적인 은행 거래가 막힌 이들도 4명이다. 법원의 명령에 따라 재산목록을 제출한 사람도 있다. 인혁당 사건이 벌어진 지 40년이 훌쩍 지났지만 국가의 억압은 ‘경제적 고문’의 얼굴로 또렷하게 남아 있다.

청와대, 인혁당 피해자 위로 방문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청와대는 인혁당 피해자들을 찾았다. 지난 6월20일 청와대 사회혁신수석비서관실의 비서관과 행정관은 4·9통일평화재단을 방문해 인혁당 피해자들과 식사를 함께 했다. 일종의 위로 자리였다. 국정원 부당이득반환 소송 이후 ‘경제적 고문’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의 고충도 공유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바뀐 것은 없다. 사회혁신수석비서관실은 “행정부로서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사실 사법부가 내린 판결을 행정부가 뒤집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피해자 가족들은 ‘청와대에서 우리 이야기를 들어준 것’에 일단 만족해야 했다.

해결책은 없을까? 4·9통일평화재단의 안경호 국장은 가장 빠른 해결책으로 ‘국정원이 채권자로서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꼽는다. ‘가해자이자 원인제공자인 국가가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혁당 사건 재심을 이끌었던 김형태 변호사는 또 다른 해결책을 내놨다. “국회에서 엉터리 과거사 관련 판결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위해 특별법을 마련하는 동시에, 대법원은 새 대법원장이 임명되면 잘못된 과거사 관련 판결들에 대해 원점에서 전원합의체 판결을 해야 한다.” 인혁당 피해자들은 다시 국가에 묻고 있다. ‘인혁당 사건은 언제 끝이 나는가?’

이명선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

※ 셜록 프로젝트 storyfunding.daum.net/project/12367/epis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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