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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여야 모두 “아동수당 100%”… 보편복지 불씨 살아났다

등록 2018-11-04 22:08수정 2018-11-04 22:25

예산전쟁 속 아동수당 접점

지난해 삭감 앞장선 한국당
‘저출산 극복’ 전면지급 선회

당정청도 “법 개정 100% 확대”
지난 6월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의 주민센터에서 한 부부가 오는 9월부터 아동 1명당 월 10만원씩 지급되는 아동수당을 신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의 주민센터에서 한 부부가 오는 9월부터 아동 1명당 월 10만원씩 지급되는 아동수당을 신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수저에게까지 아동수당을 줄 수 없다. 예산 낭비다.”

자유한국당의 이런 주장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도 물러섰다. 지난해 12월4일의 일이다. 당시 여야 3당 원내대표는 ‘소득수준 90% 이하인 가구’의 만 0~5살 아동에게만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애초에 정부는 만 6살 미만의 모든 아동에게 아동수당을 지급하려고 했다. 대통령 선거 때도 모든 당이 아동수당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터였다. 하지만 ‘보편복지’를 향한 발걸음은 뒷걸음질했다.

“초등학교 6학년(만 12살)까지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모든 아동에게 아동수당을 주자. 3년 안에 월 10만원을 30만원으로 인상하겠다.” 지난 2일 자유한국당은 예산안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아동수당 전면 확대 지급을 선언했다. 1년 만에 손바닥 뒤집듯이 당의 입장을 바꾼 것이다. 더구나 1년 전보다 아동수당 지급 연령과 지급액까지 크게 확대하는 안을 들고나왔다.

자유한국당 예결특위 간사인 장제원 의원은 “저출산 문제를 방치하면 나라의 존폐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1년 전과 판단이 달라진 이유를 기자들이 묻자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옛날이야기를 그렇게 하면 아무것도 개선하지 못한다”며 “저출산 극복을 내년도 예산 집행의 우선순위로 두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4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 간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는 아동수당을 현재의 ‘소득수준 90% 이하’에서 ‘100%’로 확대하는 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자리에서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아동수당 지급 범위를 100%로 확대하자고 제안한 데 대해 높이 평가한다”며 “국가적 과제인 저출산 문제를 야당과 충분히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아동수당법을 개정해 내년 1월부터 모든 아동에게 지급되도록 할 것”이라며 “만약 개정안 통과가 미뤄지더라도 지급 시기를 내년 1월로 소급 적용하는 내용을 법안에 포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내년부터 아동수당이 ‘모든 아동’에게 확대 지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동수당은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국가가 부담해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소득보장제도의 일종이다. ‘아동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독일, 스웨덴 등에서는 모든 아동에게 보편적으로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여야가 1년 만에 한목소리를 내게 된 데에는 배경이 있다. 지난 9월 첫 아동수당 지급을 앞두고 여론이 들끓었다. 소득 상위 10%를 걸러내는 데 엄청난 비효율이 초래됐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자신의 소득과 자산을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서류를 내야 했다. 경기 오산시에 사는 한 아이의 부모는 무려 132건의 서류를 제출했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의 추산에 따르면, 아동수당 지급 대상이 되는 소득 90% 이하(현재 220만여명)를 걸러내는 데 드는 행정비용(최대 1600억원)이 소득 상위 10%(14만여명)에게 추가로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데 필요한 예산(1230억원)보다 많다. 이에 성남시는 자체 예산을 들여 만 6살 미만 모든 아동에게 아동수당을 지급하기도 했다.

인천시 동구 만석동 공부방 ‘기찻길 옆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다. 보편적인 아동수당 지급은 ’아동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인천시 동구 만석동 공부방 ‘기찻길 옆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다. 보편적인 아동수당 지급은 ’아동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국회에서 아동수당의 보편적 지급이 합의될 가능성이 커졌지만, 아동수당 지급 연령과 지급액을 어느 정도까지 확대할지는 여야가 의견을 모아야 한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만 0~5살 아동수당 지급(소득수준 90% 이하 기준) 예산으로 1조9271억원을 잡아뒀다. 자유한국당은 만 12살 이하 아동에게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면 당장 내년에 2조3천여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추산한다.

남찬섭 동아대 교수(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는 “자유한국당이 앞장서 만든 비정상을 이제야 정상으로 되돌리면서 일자리 예산과 남북경협 예산을 깎아 아동수당에 쓰자는 주장은 후안무치하다”며 “야당 주장대로 초등학교 6학년까지 아동수당을 3년 안에 월 30만원씩 주려면 관련 예산이 최소 연간 13조원 필요할 텐데 그 돈을 어디에서 마련할지 자유한국당이 정부·여당과 함께 증세 논의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여곡절 끝에, 내년 1월부터는 전국 모든 가정에 아동수당이 지급되는 제도가 실시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보편복지’로 가는 길이 뒤늦게 다시 열렸다.

황예랑 김규남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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