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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권·복지

성소수자 ‘이웃집 철수’가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등록 2019-09-08 18:25수정 2019-09-09 10:12

[짬] 성소수자 유튜버 김철수씨

지난달 5일 유튜브 ‘채널 김철수’에는 자신을 게이라고 소개하는 한 30대 남성의 영상이 올라왔다. “난 이성보다 동성에게 매력을 느껴…(중략) 신발 속 작은 돌멩이가 들어왔는데 친구와 발걸음을 맞추려 무시하고 걸을 때가 있잖아. 아무도 모르는 그 고통을 참다 보니 나조차 무뎌졌어. 신발 속 거슬리는 돌멩이를 빼버리고 너와 발맞춰 다시 걷고 싶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커밍아웃’하려고 썼던 편지를 담담히 읽어 내려가는 이 영상에는 180여개의 지지 댓글이 달렸다.

이 영상을 편집해 유튜브 ‘채널 김철수’에 올린 사람은 김철수(30)씨다. 그에게도 운동화 속 돌멩이에 아파하던 시간이 있었다. 무려 7년이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성 정체성을 자각했으나 스물두살이 돼서야 돌멩이를 꺼내기 위해 걸음을 멈췄다. “상병 휴가 복귀날이었어요. 면회 온 누나에게 말하고 바로 부대로 뛰어들어가려고 신호등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15분을 횡단보도 앞에서 서있다가 겨우 말했어요. 정작 누나는 ‘죽을 병 걸린 거 아니면 됐다’고 꼭 안아주더라고요. ”

가까스로 돌멩이 하나를 빼냈으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지금 그게(성 정체성) 중요한 게 아니다, 취업부터 하라’며 그의 고백을 애써 가볍게 여겼고, 직장에서는 ‘왜 여자 친구 안 사귀냐’는 질문이 반복됐다. 그는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나 자신과 멀어지는 거 같았다”고 했다. 결국 김씨는 그동안 모은 돈 1000만원을 들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왔다. 이름도 ‘김슬기’에서 ‘김철수’로 바꾸었다.

“사람들은 성 소수자를 외계인처럼 취급하는데, ‘철수’라는 이름은 교과서에도 나오고 마치 고유명사처럼 보편적인 이름이잖아요. 이 이름을 쓰면 사람들이 저를 외계인이 아니라 이웃처럼 친근하게 여겨줄 거라 생각했어요.”

철수가 된 그는 유튜브에서 ‘채널 김철수’를 열었다. ‘내가 나로 살 수 있는 길’이 유튜브에 있다고 봤다. “사람들과 함께 지내려면 나를 속여야만 하지만, 유튜브에서는 나 자신을 드러내고도 대중 앞에 설 수 있잖아요. 잘만 하면 나와 비슷한 상처로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에
3년 전 유튜브 ‘김철수 채널’ 열어
이름도 친근한 느낌 ‘철수’로 바꿔
연인 손장호씨 참여로 구독자 급증
커밍아웃 페이지에 성소수자 뉴스도

“10대 성소수자 위한 교육 절실”

2016년 7월6일, 스물일곱 번째 생일에 첫 영상을 올렸다. 구독자가 크게 증가한 건 손장호(28)씨가 방송에 합류하면서부터다. 둘은 3년 전 추석에 철수씨가 주최한 ‘대명절 외톨이회’라는 모임에서 만나 연인이 됐다.

성소수자 인터뷰 위주였던 채널에 ‘내 남자 친구 면도 해주기’, ‘내 남자 친구 밥 해 주기’ 같은 영상이 올라가면서 채널에도 ‘막 시작하는 연인’의 생기가 더해졌다. 방송 초반 남성 60%, 여성 40%였던 구독자 성비도 남성 35%, 여성 65%로 바뀌었다. 이성애자 구독자가 그만큼 늘어난 셈이다. 영상을 영어로 번역해주는 재능기부 팬도 생기면서 국외 접속 비율도 40%로 늘었다. 두 사람의 포토카드를 제작해 판매하는 팬까지 생겼다. 현재 채널 구독자는 15만8800여명, 누적 조회 수는 1220만9000여회에 이른다.

응원에 힘입어 ‘채널 김철수’도 진화했다. 올해 6월엔 ‘커밍아웃 페이지’를 열었다. 현재까지 4명의 성소수자가 이 채널에서 ‘커밍아웃’했다. 김씨는 “성소수자 혐오를 없애려면 이성애자의 지지가 물론 필요하지만 당사자의 커밍아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스로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야 (성소수자가) 있구나, 존재하는구나를 사람들이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소수자 뉴스’도 꾸준히 제작하고 있다. 퀴어문화축제 현장을 전하거나,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게이를 소개한다. 최근에는 커밍아웃 이후에도 무리 없이 조직에서 생활하는 사람을 인터뷰하는 코너도 생겼다.

마치 라디오처럼 매주 수요일 밤 10시에는 스트리밍 방송으로 ‘사연 읽기’도 진행한다. 절반은 10대 청소년의 상담이다. ‘고백하고 싶은데 상대가 기독교인이다’, ‘커밍아웃했는데도 친구가 내 앞에서 성소수자 혐오발언을 한다’ 같은 사연이 올라온다.

“처음 (성 정체성을) 자각했던 10대 때 제가 물어볼 수 있는 곳은 포털 사이트뿐이었어요. ‘게이’를 검색하면 ‘잠깐의 혼란이다, 쾌락만을 좇는 사람이다’ 같은 내용만 나오니까 자꾸 저 스스로를 부정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10대 성소수자에게 더더욱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이런 걸 좀 가르치면 좋겠어요. ”(손장호씨)

‘채널 김철수’의 상단에는 ‘사랑이란 뭘까요?’라는 영상이 올라 있다. 길거리에서 무작위로 섭외한 이성애자 50여명, 미리 섭외한 성소수자 10여명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묻고 그 대답만 이어붙였다. 김씨는 “게이는 사랑 없이 쾌락만 좇는 사람이란 편견을 깨려고 만들었다. 성 정체성은 달라도 사랑에 대한 생각은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채널 김철수’는 일상 브이로그와 커밍아웃 페이지, 성소수자 뉴스, 사연 읽기 방송까지 담아내는 등 성소수자를 위한 ‘종합 콘텐츠 채널’로 성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꼭 성소수자뿐 아니라 소외받은 경험이 있는 모든 철수와 영희의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퀴어가 느끼는 외로움과 소외감은 사실 누구나 한 번쯤 느끼는 감정이니까요. 자신을 속이는 삶을 거부한 모두가 저희 채널을 보고 지지받았으면 좋겠어요.”

최윤아 기자 ah@hani.co.kr

유튜브 <채널 김철수>를 운영하는 김철수(왼쪽)씨와 손장호씨.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유튜브 <채널 김철수>를 운영하는 김철수(왼쪽)씨와 손장호씨.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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