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차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3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민중생활보장위원회 기자회견이 열려 참가자들이 정부에 의료급여 항목 등을 포함한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등을 촉구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빈곤층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지원하는 내년 생계급여 기준선(기준 중위소득의 30%)이 31일 결정됐다. 내년에 1인가구는 월 54만8천원, 4인가구는 146만3천원보다 못 벌면 생계급여를 받게 된다. ‘기준 중위소득’ 산출 방식이 개편되면서 인상 폭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으나 결국 예년과 비슷한 수준의 2%대 인상률에 그쳤다. 시민단체 등은 “경기가 나쁠수록 복지 지출은 확대돼야 한다는 공식을 거꾸로 뒤집은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내년도 ‘기준 중위소득’을 심의·의결한 60차 중앙생활보장위원회(위원회)에서는 4시간 가까이 격론이 벌어졌다. ‘기준 중위소득’ 인상 폭을 둘러싼 의견이 크게 엇갈리는 바람에, 두번째 안건으로 다룰 예정이던 ‘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은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2022년까지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전면 폐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종합계획안은 8월10일 열릴 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 ‘기준 중위소득’ 찔끔 인상, 왜? 격론이 벌어진 이유는 ‘기준 중위소득’ 계산 방식이 달라진데 따른 인상폭에 대한 기대치가 위원들마다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번부터 표본조사 방식으로 작성된 가계동향조사가 아니라, 전국 2만가구를 면접조사한 뒤에 행정자료로 보완한 가계금융복지조사를 통계자료로 사용하기로 했다. 고소득자 등 가구 소득을 좀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다. 실제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중위소득’과 정부가 결정하는 ‘기준 중위소득’의 편차는 크다. 우리나라 4인가구를 소득이 많은 순서대로 줄세웠을 때 정확히 중간에 있는 사람의 소득(중위소득)이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508만원이라면, ‘기준 중위소득’은 452만원(2018년)이었다.
앞서 7월3일 열린 59차 위원회에서는 최근 3년치 가계금융복지조사 중위소득 증가율의 평균치(4.6%)를 1차 산출한 뒤에, 증가율을 보정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보정’을 얼마나 하느냐를 두고 입장이 갈렸다. 기획재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상황 악화 등을 이유로 증가율 축소를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준 중위소득’과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중위소득’ 사이의 격차를 얼마의 시간을 두고 해소할 것인지도 쟁점이었다. 기재부는 10년간 천천히 해소할 것을, 공익 위원 일부는 3년 안에 해소할 것을 주장했다. 결론은 2026년까지 6년 동안 해마다 최신 가계금융복지조사 중위소득과의 격차 추이를 반영해 단계적으로 해소하는 것으로 절충됐다.
그동안 1~2인가구가 4인가구보다 생계급여액이 상대적으로 적게 산출됐다는 점을 고려해, 가구균등화지수도 앞으로 6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조정해나가기로 했다. 가구균등화지수가 조정되면, 1인가구의 기준 중위소득이 오르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내년도 기준 중위소득 인상률은 4인가구의 경우 2.68%이지만 1인가구는 4.02%에 이른다.
시민단체 쪽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생계급여를 현실화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재정을 크게 늘리지 않는 선에서 통계를 맞추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기초생활보장법 바로세우기 공동행동’은 이날 성명을 내어 “코로나19로 인해 경기가 침체됐다며 4.6%에서 지난해 인상분 2.9%를 깎고, 다시 별다른 근거 없이 0.7%를 삭감하는 방식으로 기획재정부가 1% (기본) 인상률을 결정했다”고 비판했다. 가계금융복지조사 중위소득과의 격차 해소분, 가구균등화지수 조정 등에 따른 인상 효과를 제외하고 나면 인상률 2.68%(4인가구 기준) 가운데 순수한 인상률은 1%에 그친다는 것이다.
공익 위원으로 논의에 참여한 박영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기획재정부가 코로나 때문에 내년 경기가 악화되고 중위소득도 안 올라갈 것이라고 전제하며 낮은 인상률을 고집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위원으로 참여한 구인회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도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어려운 계층에 대한 최후의 지원 수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인상률이 미흡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제60차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3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민중생활보장위원회 기자회견'이 열려 참가자들이 정부에 의료급여 항목 등을 포함한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등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어떻게 되나 이러한 결정을 내린 데에는, 내년부터 시행될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 단계적 폐지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생계급여 또는 의료급여를 받을 소득 조건은 되지만 실제 급여를 받지는 않은 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비수급 빈곤층은 73만명에 이른다. ‘부양의무자’에 해당하는, 소득이나 재산이 있는 1촌 직계혈족(부모나 자식)이 있기 때문에 이들 중 상당수는 생계급여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정부는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생계급여에 한해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방안을 2차 종합계획에 담을 계획이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효과로 18만가구(26만명)가 생계급여를 새롭게 지원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에 이 계획안이 의결되면, 1조원 안팎의 추가 예산을 필요로 한다.
2차 종합계획 논의에서 핵심 쟁점은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여부다. 정부는 ‘폐지’가 아닌 ‘개선’ 정도의 수준을 2차 계획안에 담았다. 기초연금을 받는 노인이 포함된 가구가 ‘부양의무자’에 해당하면, 기준에서 제외시켜주겠다는 것이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그 정도는 1차 종합계획에도 포함됐던 내용으로, 의료급여 역시 생계급여와 마찬가지로 ‘폐지’ 계획이 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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