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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폭 가해자보다 더 상처가 되는 부모의 말들

등록 2021-06-21 18:29수정 2021-06-22 02:05

자녀가 학폭 피해 사실 꺼내면
무조건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아이가 원하는 해결책 따라야
무심코 한 말에 평생 상처 남아
자녀의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부모가 별 악의 없이 감정적으로 튀어나온 말들이 자녀에게 큰 상처로 남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자녀의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부모가 별 악의 없이 감정적으로 튀어나온 말들이 자녀에게 큰 상처로 남는다. 게티이미지뱅크

“내가 못 살아! 그동안 왜 말 안 했어!” “왜 바보같이 당하고 살아!” “네가 잘못한 건 없어? 네가 가만히 있는데 그러진 않았을 거 아냐?” “다른 애들은 별일 없이 잘만 학교 다니는데 너는 왜 이런 일이 생겨!” “별일도 아닌 거 같은데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자.”

자녀의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부모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말들이다. 학교폭력 피해 자녀들에게 가해자의 폭력보다 더 오랫동안 상처로 남는 건 이런 ‘부모의 말’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청소년 문제 해결을 고민하는 단체 ‘유스메이트’(www.youthmate.co.kr)의 대표이자 최근 학교폭력 대응 노하우를 담은 <장난이 폭력이 되는 순간>(담담)을 펴낸 김승혜씨는 “아이들을 상담했을 때 부모가 악의적으로 한 말도 아니고 부모도 혼란스럽고 난감해서 감정적으로 내뱉은 말들이 나중까지도 치유되기가 어려웠다는 걸 많이 얘기한다”며 “아이들은 학교폭력을 당한 것 자체가 수치스럽고 자존심이 상해서 힘겹게 겨우 말을 꺼냈는데, 부모의 반응이 아이들을 더욱 위축시키고 입을 닫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인 푸른나무재단 김석민 연구원도 “피해 자녀가 부모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존재라는 신뢰”라며 “부모한테 그 신뢰를 확인하지 못하면 혼자서 해결하려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더 큰 피해를 당하거나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김보미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상담팀장은 “아이의 힘든 감정을 공감·지지해주고 보호자가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 자녀에게 안정감을 제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lt;장난이 폭력이 되는 순간&gt;(담담)
<장난이 폭력이 되는 순간>(담담)

 부모 반응 4단계 따라야

그럼, 자녀의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부모가 알게 됐을 때 부모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김승혜 대표는 ‘1단계 기다려주기 → 2단계 무조건 들어주기 → 3단계 위로해주기 → 4단계 어떻게 해결할지 물어주기’로 정리한다. 우선 아이도 이 사실을 이야기하는 게 수치심이 드는데다, 부모가 알게 되면 화를 내거나 걱정할까봐 두렵기 때문에 편하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이때 “빨리 말해야 엄마가 도와주지!” “그렇게 말 안 할 거면 네 맘대로 해라!” 등의 말은 금물이다.

아이가 말을 시작하면 무조건 경청해줘야 한다. 지적을 하거나 비판하지 말고 “그랬구나, 그랬구나”라고만 반응하면서 들어주는 거다. 김승혜 대표는 “부모가 궁금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겠지만 일단은 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때 아이들은 감정적으로 크게 남은 사건들을 중심으로 말하기 때문에, 아이의 말을 다 들은 뒤 부모가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면서 명료화하고 재확인해주는 게 좋다”고 김석민 연구원은 설명했다. 김보미 상담팀장은 이 단계에서 “너를 돕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필요하단다”라고 말하면서 증거나 목격자가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했다.

세번째 단계는 충분히 함께 슬퍼하면서 아이를 위로해주는 단계다. “혼자서 많이 힘들었겠구나” “말하기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말해주면 아이는 부모에게 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부모에 대한 신뢰가 깊어진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아이에게 “부모가 너를 어떻게 도와줬으면 좋겠니?”라며 원하는 해결방식을 물어본다. 많은 부모들이 이 단계에서 “알았어! 이제부터 엄마 아빠가 해결할게. 너는 가만히 있어!”라는 실수를 범한다. “학교도 가해자도 가만두지 않겠다” 같은 표현도 자녀를 불안하게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느낌에 더 이상 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과거에 상처 줬다면 지금이라도 사과해야

그런데 아이와 부모가 원하는 해결방식이 다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의 해결방식을 우선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승혜 대표는 “사건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것도 아이이고 해결책을 결정하는 것 역시 아이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석민 연구원은 “아이가 원하는 대로 진행하지 않으면, 학교폭력이 종결되어도 아이는 영원히 해결되지 못한 느낌을 받고 상처가 남는다”고 말했다.

혹시 아이가 공식적으로 문제 삼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고 싶어 할지라도 부모는 “너의 의견을 존중하겠다. 하지만 앞으로도 관련된 일이 발생하면 그때도 꼭 부모에게 얘기해주길 바란다”고 말하고 자녀의 뜻을 따르는 게 좋다고 김 연구원은 덧붙였다. 그래야 아이는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걸 인식하고 언제든지 부모가 필요할 때 얘기할 수 있다. “부모에게 학교폭력 사건을 들고 왔을 때부터 처리까지 아이가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는지 계속 확인하면서 그걸 따라주는 게 중요한 초점”이라고 김석민 연구원은 말했다.

김보미 상담팀장은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계속 자녀와 공유해야 된다”며 “이런 결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어떤 감정이 들어? 사건이 처리되었지만 걱정되는 점이 있는지를 물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과거 학교폭력 해결 과정에서 ‘해서는 안 되는 말들’로 자녀에게 상처를 줬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승혜 대표는 “지금이라도 알았다면 그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자녀에게 도움이 된다”며 “그때는 엄마 아빠가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그렇게 말했는데, 가장 힘들었을 너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꼭 사과할 것”을 조언했다. “늦게라도 사과의 말을 들은 아이와 듣지 못한 아이는 굉장한 차이가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학교폭력 피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모가 어떤 반응과 태도를 보였느냐가 향후 부모-자녀 관계의 중요한 갈림길이 될 수 있다. “보통 피해자가 100% 만족하는 방향으로 학교폭력이 해결되지 않는데, 그럼에도 부모가 자녀를 존중하면 부모-자녀가 더 깊은 신뢰 관계로 나아가지만, 그러지 않으면 무난한 관계였던 부모-자녀 관계가 틀어지게 된다”고 김승혜 대표는 말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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