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적 등 세 아들을 서울대에 보낸 것으로 유명한 여성학자 박혜란씨의 에세이집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그는 자녀들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한 적도 거의 없고 과외나 학원 등 사교육을 특별히 시키지도 않았다. 다만 그는 자녀들이 모르는 문제를 들고 오면 “네가 아는 것은 무엇인지 설명해보라”고 했다. 아이들이 자기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설명하다 보면 부모가 특별히 답을 주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막힌 부분을 풀게 되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배움의 반은 가르침을 통해 이뤄진다는 ‘효학반’의 개념을 자녀 교육에 실천한 셈이다.
최근 교육부가 지원하고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이 주관하는 2021년 원격대학 교육혁신 지원사업에서 한양사이버대학 양재모 교수가 제안한 ‘공유가치 창출을 위한 융합 교육플랫폼 모델 구축’ 사업이 선정됐다. 기존의 교육 시스템이 교육 수요자(학생)가 교육 공급자(교사)에게서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받는 데 그쳤다면, ‘공유가치 플랫폼 모델’은 교육 수요자 역시 자신이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교육 공급자가 되는 ‘환류성 교육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효학반’의 교육철학을 실천하는 시스템이다. 지난 9일 한양사이버대에서 양재모 법·공무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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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가치 창출을 위한 융합 교육플랫폼 모델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사이버대학 학생들은 대부분 직장인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 예컨대 부동산학과 학생들은 이미 공인중개사이거나 건축업을 하고 있거나 건축 관련 공무원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교수에게 배운 지식과 융합해서 수업의 최종 결과물을 동영상 콘텐츠로 제출하고, 이걸 다 같이 공유하는 플랫폼에 올리는 게 공유가치 플랫폼이다. 예를 들어,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학생은 자신의 실무 지식에 교수에게 배운 것을 접목해서 ‘부동산 고르는 법’ ‘등기 보는 법’ ‘입지 분석하는 법’ 등의 콘텐츠를 올릴 수 있다. 이 콘텐츠는 일차적으로 우리 학생들이 볼 수 있고, 주제별로 묶어서 들으면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이 플랫폼을 전국민에게 개방함으로써 우리의 지식을 사회에 나누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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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아이디어를 내게 되었나.
“우리 학교는 한양학원 김종량 이사장이 주장한 ‘교학상장’의 교육 이념을 가지고 있다. 즉 공부는 가르칠 때 가장 많이 배우며, 가르치게 되면 반드시 자기 것이 된다는 것이다. 공유가치 플랫폼은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이 이념을 어떻게 현실에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이자, 그걸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또 사이버대학은 ‘평생교육’이라는 역할이 있다. 국민들이 서로 나눌 수 있는 지식을 정리해주고 나누고 같이 고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게 중요한 역할이다. 다만 학생들이 어떻게 가르치고 무얼 가르치는지에 대해서는 경험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에 그 부분을 교수들이 메꾸어주고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게 바로 공유가치 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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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델이 벤치마킹하는 플랫폼이 있나.
“개방형 플랫폼인 유튜브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콘텐츠에 대한 검증 절차가 없어 잘못된 정보가 많다. 반면, 폐쇄형 플랫폼인 ‘케이무크’(K-MOOK)는 검증된 정보인 대신 가르치는 사람과 가르치는 방식이 정해져 있고, 거기에 진입할 수 있는 사람도 통제된다. 이 둘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융합한 것이 바로 공유가치 플랫폼이다. 학생의 콘텐츠에 대해서 수업과 교수와 학생 간의 논의를 통해서 철저히 검증하되,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개방하겠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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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가치 플랫폼이 학생들에게 어떤 이득을 줄까.
“앞서 말했다시피 사이버대 학생들은 세부적인 실무에 강하고, 교수들은 원리와 원칙을 가르친다. 자신의 세부 정보와 교수의 원리 수업을 통해서 ‘왜 이게 이렇게 된 것인지 알게 됐다!’는 걸 깨달은 학생들은 이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가르치고 싶어 하는 걸 많이 목격했다. 그래서 엠티를 갔을 때 학생들에게 특강할 기회를 종종 주었는데, 그러면 교수 수업보다 더 재미있었다. 플랫폼을 통해서 모든 학생을 교육 공급자로 만들게 되면, 교학상장의 이념도 실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나중에 유튜버가 될 수도 있고, 교수 또는 교육 사업가, 콘텐츠 사업가도 될 수 있다.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커리어까지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콘텐츠를 올린 학생들은 그 콘텐츠를 통해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고 사회에도 지식 나눔 공헌을 했기 때문에 그 성과에 따라 등록금을 감해주거나 장학금을 지급하는 시스템도 갖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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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플랫폼이 완전히 구현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게 되나.
“올해는 우선 연구와 교육과정을 개설하는 단계다.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해 프로토타입의 플랫폼이 나올 것이다. 2년 뒤에 최종적인 플랫폼이 완성되면 한양사이버대의 전 학생에게 적용하려고 한다. 그 뒤에는 대학원으로 확장하고 종국적으로는 한양학원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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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에게 이 플랫폼은 성가시고 귀찮은 작업이 될 거 같다.
“원래 교수는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지식은 찾으면 다 나온다. 그래서 10년 전에 박사 학위 받은 걸 가지고 20년간 가르치는 게 말이 안 되는 사회가 됐다. 나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나에게 배운 것이 2~3년 뒤면 쓸모가 없어진다고. 미래 사회 교수의 역할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꺼내놓는 사람이 아니라 지식의 코디네이터가 되어야 한다. 지식을 체계화하고 구조화해서 그걸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주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역량을 갖게 하는 게 교수의 역할이다. 미래 대학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미네르바 스쿨의 교수는 수업 시간에 5분 이상 얘기하면 안 된다. 이게 맞는 모습이다. 지식을 전달하는 건 18~19세기 교육 방법이다. 공유가치 플랫폼은 교수도 혁신하고 학생도 스스로 참여하는 공부의 혁신 모델이다. 일종의 집단지성 교육 시스템을 갖추는 거다. 세계적인 교육 트렌드는 이제 학생을 단순한 수동적 교육 수요자로만 보고 있지 않다. 이 플랫폼은 이러한 혁신의 초기 버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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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사이버대학에 미친 영향이 있나.
“학생이 엄청 늘었고 사이버 교육에 대한 불신이 사라졌다. 오프라인 대학에 가도 온라인으로 강의를 하니까 굳이 비싼 등록금을 내고 오프라인 대학에 갈 필요가 없어졌다. 게다가 오프라인 대학의 온라인 교육 수준이, 20년 가까이 온라인 교육을 해온 사이버대학의 콘텐츠와 질적 차이가 너무 크다 보니 사이버대학 학생들이 거의 20% 늘었다. 우리 대학이 공유가치 플랫폼을 구현하려고 하는 것은 기존의 전통적인 교육 모델이 4차·5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칠판 앞에 서서 강의하는 걸 동영상으로 찍는다고 그게 4차·5차 산업혁명 시대의 교육 콘텐츠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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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사이버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교육은 무엇인가.
“여전히 고민 중이긴 하다. 먼저 교수의 혁신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학생들의 적극적 참여도 필요하다. 일부 학생의 경우 여전히 교수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전통적인 교육 방식을 선호하고 참여를 부담스러워한다. 즉 교수의 혁신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적극적 참여를 독려하고 성과와 만족을 얻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방법론이지 지향점은 아니다. 미네르바 스쿨처럼 오로지 ‘기업에 적합한 인재’를 목적으로 할 수 있고, 미국의 가장 혁신적인 대학인 애리조나 주립대처럼 ‘학생의 성공’을 목적으로 할 수도 있다. 한양사이버대는 현재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혁신하고자 몸부림치고 있다. 한국의 유명한 교육학자와 경영자들을 모시고 미래위원회를 구성하고 있고, 내부 구성원을 통해 실무위원회를 구성해 우리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나 개인적으로는 한양사이버대의 경쟁 상대는 다른 사이버대학이나 오프라인 대학이 아니라 유튜브나 게임회사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시간을 소비하는 콘텐츠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나누는 콘텐츠를 통해 사랑을 실천하는 대학이 되었으면 한다.”
글·사진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