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전 ‘2021 대학 기본 역량진단 공정심사 촉구 기자회견’이 열린 인천시 미추홀구 인하대학교 본관 대강당 좌석에 학생들의 학과 점퍼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가 내년부터 3년 동안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대학을 가리는 ‘2021년 대학 기본역량진단’ 평가 결과를 발표한 지 12일이 지났지만 후폭풍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평가 미달로 탈락한 대학과 이 대학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교수단체와 대학노동조합 등도 이번 평가가 서열화와 낙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 17일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공개한 ‘2021년 대학기본역량진단’ 평가 잠정 결과를 보면, 성신여대, 인하대 등 수도권 유명 사립대와 국립대인 군산대 등 52곳이 평가 미달로 탈락했다. 일반재정지원 대상에는 일반대학 136곳, 전문대 97곳 등 모두 233곳이 선정됐으나, 이들 대학 역시 내년 3월까지 정원 감축 규모를 제출해야 하는 조건이 딸려 있다.
전국교수노동조합과 전국대학노동조합은 지난 27일 탈락한 52개 가운데 16개 대학의 이름으로 성명서를 내어 “박근혜 정부의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부터 문제를 제기해왔지만, 이번 진단은 여전히 억압적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며 “대학 평가의 결과는 부실대학과 비 부실대학으로 대학을 불평등하게 등급화·서열화시켜 대학 교육을 왜곡시킨다”고 밝혔다.
대다수 대학이 재정 위기에 빠져 있고 정부의 재정지원도 제한적인 상황에서 인센티브로 대학 체질 개선을 유인하는 것은 정책수단으로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비판도 나왔다. 김병국 전국대학노동조합 정책실장은 2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3년마다 이뤄지는 평가에 대학의 사활이 걸려있다 보니 준비하느라 대학들이 에너지를 다 쏟고 있다”며 “등록금은 동결이고 지방은 학생들이 줄어가는데 교직원 인건비는 물가에 따라 늘어간다. 쪼들리다 보니 교육부 지원금이 대학들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당장 내달부터 수시모집 원서접수를 앞두고 이번 평가가 대학들의 신입생 충원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박정원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은 “이런 결과를 보면 고교 진학상담 교사들 판단으로 학생 입시에 영향을 주게 된다. 재학 중인 대학생들한테도 불안감을 심어주는 효과를 낳지 않겠느냐”라며 “개선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원 대상에서 탈락한 대학들도 결과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수도권 주요 사립대로 꼽히는 성신여대, 인하대는 학교 구성원들 쪽에서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성신여대는 정부에 재정지원의 필요성과 대학 평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건의문을 제출했고, 총학생회와 직원노동조합, 교수대의원회 등이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릴레이 시위를 진행했다. 인하대 역시 이의신청서를 제출한 뒤 교내에서 교육부 규탄대회를 열었고, 학생들이 직접 학과 점퍼를 캠퍼스에 진열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교육부는 지난 17∼20일까지 평가 잠정결과에 대한 이의신청을 접수한 뒤 이달 말까지 결과를 확정할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현실적으로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못해도 부실대학 낙인을 지워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김병국 정책실장은 “최종 발표가 나올 때는 (진단에 통과 못 한) 대학들도 부실대학이 아니며 나름대로 문제가 없고 건실하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필요하다”며 “이후에도 대학 평가 설계 차원에서 지원을 하거나 안 하는 방식으로 결정하지 말고 재정을 모든 대학에 최소한으로 지원하되 역량이 있는 대학은 더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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