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10일 오전 6·10 민주항쟁 기념식이 열린 서울광장 옆에서 인권친화적학교너머운동본부 회원들이 학생인권법 제정을 촉구하며 피케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넌 불가촉천민(인도 최하층 신분으로, 거주·직업·결혼 등 사회적 삶에서 주류 인구와 분리 및 격리되는 집단)이야”, “3점짜리도 못 푸는 너희들은 멍청한 새끼들”, “이제부터 대답 못 하는 자식들은 깡통 대가리다”, “한 번만 더 말대꾸하면 죽여버린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 그깟 딴따라 뒤졌다고 왜 너네가 XX이야”
2021년 대한민국 교실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했다는 말들이다. 3일 학생의날 92돌을 맞아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이 ‘학교 내 나이 차별적 언어문화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학교 현장에는 교사들이 학생을 ‘아랫사람’으로 대하며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은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조사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협조를 받아 지난달 15일부터 29일까지 전국 중·고등학생 697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우선 학생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교사는 많지 않았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7명은 ‘평소 수업시간에 하대(반말)를 들을 적이 있다’고 답했다. 수업시간뿐 아니라 개인적인 대화에서 일방적으로 반말을 들었다는 경험도 65.3%에 달했다. 하대하는 호칭이나 비속어로 불린 직·간접적 경험(중복 응답 가능)을 묻자 ‘야’(71.2%), ‘인마’(52%), ‘새끼’(43.3%), ‘자식’(39.2%), ‘녀석’(33.9%)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교사로부터 무시하거나 모욕적인 말을 들어봤냐는 질문에는 모두 256명이 주관식으로 답했다. ‘네 생각은 (종이를 찢는 흉내를 내면서)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해’, ‘너 같은 애들이 사회 나가서 문제를 일으키는 거야’ 등과 같이 비하하는 말, “10년 전이었으면 넌 나한테 맞았다’ 등 위협하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말, ‘동성애는 정신병이야’ 등 차별적이고 편견을 담은 말, ‘술집 여자 같다’ 등 외모 평가 또는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말에 대한 제보가 잇따랐다.
이렇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사의 언어폭력 등이 여전한 실태가 확인된 가운데, 이날 국회에서는 인권침해를 금지하고 인권침해 구제 창구를 마련하는 ‘학생인권법’이 발의됐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학생인권 침해행위를 △학생에게 모욕을 주거나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 △학생의 두발·복장을 검사하는 등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 △가정환경, (학업) 성적, 외모, 성별, 국적, 종교, 장애, 사상·신념, 성적 지향,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임신 또는 출산, 징계 등 일체의 이유에 의한 차별 행위 등으로 명시해 금지하고, 인권침해 조사와 구제를 위한 학생인권옹호관을 설치하는 내용 등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학생인권법 발의는 2006년 17대 국회, 2008년 18대 국회에 이어 3번째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이날 학생인권법 발의 환영 논평을 내고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은 6개 지역뿐이고 있다고 해도 조례의 규범력이 약해 학생인권 침해를 고집하는 학교를 변화시키기에도 쉽지 않다”며 “학생인권법이 인권 친화적인 학교 조성과 학교 민주주의 강화의 든든한 주춧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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