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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밥풀 하나에도 배부른 우리 설화

등록 2006-02-19 15:50수정 2006-02-2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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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오늘 무슨 각시 이야기 해주세요. 예? 예?”

공부방에 들어서자마자 소영이(초2·여)가 달려오면서 인삿말을 합니다.

“무슨 각시?”

“손 없는 각시나 아무개 각시나 뭐 그런 각시요.”

소영이는 각시가 나오는 옛날이야기를 늘 듣고 싶어합니다.

‘손 없는 각시’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소영이는 흥분해서 어쩔 줄 몰라 했으니까요.

소영이는 손 없는 각시의 손이 ‘딱’ 붙을 때 각시가 착한지 금방 알았대요. ‘아무개 각시’의 꽉 쥐어진 오른손이 쫘악 펴졌을 때도 소영이는 초조해하고 반갑고 즐거운 얼굴을 감출 줄 몰랐어요.

“어, 신랑하고 만나서 손이 펴졌나? 그 사람을 만날라고 그랬나?”


소영이는 제 오른쪽 손을 폈다 쥐었다 하면서 한참을 들여다봤어요.

“오, 여기 여기 좀 봐봐. 소영이 손바닥 안에도 뭐라고 써져 있네.”

“어디요, 어디요?”

방금 전에 또렷하게 써져 있던 글씨가 없어져 버렸다면서 안타까워하는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소영이가 갑자기 진지해져 버렸어요. 자기는 누구 각시가 될지도 궁금하고 또 그 생각을 해 보면은 재밌기도 하대요. 심각한 얼굴로 그걸 누가 정해주는 건지도 물어봤어요.

오늘 들은 ‘밥 안 먹는 각시’ 이야기도 소영이는 신기하기만 했대요.

욕심 많은 사내가 일은 잘하는데 밥은 조금만 먹는 각시하고 결혼을 하고 싶었대요. 그런데 밥 많이 먹는 각시를 만나서 살게 되었어요. 이러다가 집안을 다 거덜내겠다 하고는 내쫓고, 어디 어디 밥 안 먹는 여자 없나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어디 어디에 밥 안 먹는 여자 산다기에 찾아가보니 입이 요만 하드래요. 겨우 밥풀떼기 한 개가 들어갈까 말까. 그래 욕심 많은 사내가 ‘옳다구나’ 하고 데려와 살면서 겪어내는 이야기거든요. 소영이는 이야기 듣는 내내 무서워서 놀라기도 하고 내 팔을 잡기도 하고 떨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소영이는 숨도 쉬지 않고 이야기에서 받은 감동을 줄줄 줄줄 털어내는 거예요.

“아, 신기하다. 신랑이 전에 밥 많이 먹는 각시랑 같이 살 걸 했겠네. 밥 잘 먹고 그러면은 튼튼한 거 아니에요? 왜 내쫓았는지 이해가 안 가요. 신랑이 밥 많이 주면 아내가 좋아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아내가 신랑한테 뭔가를 더 많이 해 줄 거 아니에요. 나라면 내쫓지 않고 오히려 농사 잘해서 쌀도 주고 그랬을 거 같아요. 그런데요 이야기 처음에 밥 많이 먹는 각시 생각하니까 되게 재밌어요.”

아이들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가 경험한 것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지요. 그래서 소영이는 밥 잘 먹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아요. 밥을 잘 먹어야지만 튼튼해지고 이거도 저거도 다 잘해 낼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소영이는 밥 잘 먹는 각시 내쫓지 않고 오히려 농사 잘해 쌀을 더 많이 주고 싶겠지요. 소영이가 옛날이야기 속에서 각시들을 왜 자꾸 만나고 싶은지 아시겠지요? 임석재 글, -평민사/1만2천원

이숙양/공부방활동가 animato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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