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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또 ‘좌편향’ 교과서 운운…‘자유’민주주의, ‘남침’ 빠졌다고?

등록 2022-09-01 06:00수정 2022-09-01 11:00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 공개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기술했던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국정 교과서’ 현장 검토본.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기술했던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국정 교과서’ 현장 검토본.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025년부터 고등학생이 배우게 될 ‘2022 개정 한국사 교육과정’ 시안이 30일 공개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국사, 특히 현대사 서술을 두고 논쟁이 되풀이돼 왔는데, 이번에도 보수 진영에서 문재인 정부 때 뽑은 연구진이 개발한 시안의 일부 표현을 문제삼으며 이념 공세를 퍼붓는 모양새다.

<조선일보>는 시안 공개 다음날인 31일치 1면 기사에서 “새 교육과정 시안에는 1948년 8월15일이 대한민국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쓰여있고 자유민주주의, 남침이라는 표현이 빠져있다”는 이유 등을 들어 “학계에서는 이대로 교육과정이 확정되면 학생들이 좌편향된 교과서로 공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썼다.

이 신문은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해 12월 꾸려진 연구진이 이번 시안을 만들었고, 검토 과정에서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은 교육부 산하 ‘교육과정심의회’ 위원들 역시 문재인 정부에서 위촉됐다는 점을 들어 ‘교과서 알박기’라고까지 표현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2022 개정 교육과정 개발은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을 위해 시작됐고 연구진이 꾸려진 시기도 이에 따라 미리 정해진 일정에 따른 것”이라며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연구진이나 심의회 위원들을 교체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알박기 논란’에 선을 그었다.

‘정부’ 뺀 ‘대한민국 수립’은 임시정부 의미 퇴색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냐’ ‘대한민국 수립이냐’는 역사 교과서가 개정될 때마다 가장 쟁점이 되어 온 부분이다. 2009 개정 교육과정까지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기술해왔다.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은 이미 1919년 3·1 운동 뒤 공포됐고 이후 백범 김구 등 독립운동가들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박근혜 정부 ‘국정 역사 교과서’의 뼈대가 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이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뀌었다.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은 1948년 이전의 임시정부와 항일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비판이 크지만, 뉴라이트 등 보수 진영에서는 ‘1948년 건국론’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독립운동과 건국의 역사를 분리하려는 의도다. 친일·독재 미화 비판을 받은 ‘국정 역사 교과서’가 문재인 정부 들어 폐기되고 발행체제가 다시 검정제로 환원되면서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은 2018년 7월 한차례 개정됐고,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돌아갔다. 새 교육과정 시안은 2018년 개정 내용을 그대로 계승한 셈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 자유’ 강조 ‘독재 미화’ 우려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를 두고서도 정권이 바뀌고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엎치락뒤치락이 계속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8월 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수정한 바 있다. 당시 역사 교사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 체제에 맞서는 대립 개념으로 차용된 탓에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꿀 경우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 미화에 악용될 수 있고 민주주의 개념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협소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교육과학기술부는 “자유민주주의가 대한민국 건국 이념”이라는 이유를 들어 표현을 고쳤다.

표현을 고치는 과정에서 뉴라이트 성향인 한국현대사학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 강화를 위해 (표현을) 수정해달라”고 여러 차례 의견서를 보낸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최근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 물망에 올랐다고 알려진 이배용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도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자문기구인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민주주의’ 표현을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이 전 원장은 박근혜 정부 ‘국정 역사교과서’ 발행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2015 개정 교육과정까지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쓰였고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소주제가 있었지만 해당 소주제는 2018년 개정때 ‘4·19 혁명과 민주화를 위한 노력’, ‘6월 민주 항쟁과 민주주의의 발전’ 등으로 바뀌었다. 대신 성취기준 해설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추가됐는데, 2022 개정교육과정 시안에는 이 표현이 빠졌다.

‘6·25 남침’은 6·25전쟁 발발의 전제

2018년 개정 때까지 남아있던 ‘6·25 남침’ 표현도 이번에는 빠졌다. ‘대한민국의 발전’이라는 대주제 해설에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의 전개 과정과 피해 상황 등을 살펴본다’고 적혀 있는데 새 교육과정에서는 모든 과목에서 대주제 해설이 빠지는 탓에 사라졌고, 성취기준이나 성취기준 해설에도 6·25전쟁이라고만 되어 있다. 이를 두고 ‘좌편향’ 주장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 박래훈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남침이라는 표현이 없더라도 맥락을 보면 6·25전쟁이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고, 학교 현장에서도 현대사 수업을 하면서 남침은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과도한 트집잡기”라고 말했다.

교육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남침 반영하도록 연구진에 요청할 것”

교육부는 이날 오후 설명자료를 내고 “시안은 지난해 12월부터 1·2차에 걸쳐 진행해온 정책연구 초안으로 확정안이 아니며 국민의 눈높이에서 여러 의견을 수렴하고자 이전 (교육과정 개정 과정과) 달리 국민들께 소통 채널을 통해 공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장홍재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관은 이날 급하게 마련된 출입기자 상대 브리핑에서 “교육과정 연구는 기본적으로 (공모로 선정된) 연구진의 연구 자유성에 기초해 협의가 이뤄지지만 올해 처음 개통된 국민 소통 채널을 통해 다양한 국민 의견을 수렴해 반영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오승걸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냐 대한민국 수립이냐’, ‘민주주의냐 자유민주주의냐’에 대한 교육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이전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이 부분에서 첨예하게 (입장이) 대립되어 왔다. 교육부는 어떠한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국민 소통채널·학계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의견들이 헌법 정신에 입각해 결정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오 실장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남침’ 등 2018년 개정까지 담겨져 있던 표현은 전자의 경우 헌법 전문에도 나와 있고, 후자의 경우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이번에 굳이 빼면서 소모적 논란을 반복할 이유가 없다. 연구진에게 해당 표현을 반영하도록 요청하겠다”고 밝혀 교육부가 보수 진영의 이념 공세에 밀린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향후 교육부의 추가적인 입장 변화에 따라 역사·교육학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의견 수렴, 국교위 심의·의결 거쳐 올해 말 확정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시안에 대한 국민 의견 수렴 과정과 교육과정개정추진위에서의 논의, 곧 출범하는 국가교육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올해 말 교육부 장관이 최종 확정·고시할 예정이다. 이어 새 교육과정을 반영한 교과서 집필기준까지 내년 초에 확정되면 출판사들이 교과서 개발에 나서게 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2024년부터 초 1~2학년에, 2025년부터는 초 3~4학년 및 중 1·고1에, 2026년부터는 초 5~6학년 및 중2·고2에, 2027년부터는 중3·고3에 연차적으로 적용된다.

이유진 장현은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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