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충북 청주시 한국교원대 종합교육연수원 문화관에서 열린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시안 공청회에서 최서현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위원장이 연단에 올라 발언을 하는 도중 보수 단체 회원으로 보이는 남성이 난입해 최 위원장에게 달려들고 있다. 사진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제공
“안녕하세요. 저는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특고노조) 위원장 최서현입니다. 교육과정 총론 시안에서 노동을 삭제한 윤석열 대통령을 규탄합니다.”
지난 8일 오후 충북 청주시 한국교원대 종합교육연수원 문화관에서 ‘2022 개정 교육과정’(2024년부터 순차 적용) 총론 시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공개된 개정 시안을 보면, 총론 연구진은 지난해 총론 주요사항에는 포함됐다가 시안에서 빠진 생태전환교육, 노동교육을 교육목표에 명시해달라는 진보 교육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 위원장이 이를 비판하기 위해 연단에서 발언을 시작하자마자 보수단체 회원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 2명이 잇따라 연단으로 난입해 최 위원장의 마이크를 빼앗으려 달려들었다. 이 과정에서 최 위원장은 입과 어깨를 맞아 입술이 부어오르는 등 다쳤다. 총론 공청회는 최 위원장이 준비한 발언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로 30분 일찍 중단되고 말았다.
교육계에서는 공청회가 ‘교육의 기본 설계도’로 불리는 교육과정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 대신 욕설과 고성, 폭력 사태로 얼룩지게 된 데는 이를 방치한 교육부의 책임이 크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반노동’ ‘반동성애’ 혐오 발언이 공청회에서 아무런 제지 없이 허용되면서 공청회가 혐오 발언을 확대·재생산하는 스피커 역할을 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고노조의 설명을 종합하면, 총론 공청회에는 특고노조 조합원 20여명이 참석했는데 보수 단체 회원들은 이들을 향해 ‘가서 공부나 해라’, ‘취직이나 해’ 같은 조롱 섞인 발언을 했다. 최 위원장이 연단에 오를 때도 청중석에서 ‘왜 노조가 교육에 끼어드냐’는 고성이 나왔다. 최 위원장은 10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노조 혐오 발언이 이어졌지만 교육부 관계자는 ‘조용히 하라’는 말만 할 뿐 혐오 발언자에 대한 퇴장 조처 등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욕설과 고성, 폭력 사태로 난장판이 된 공청회가 이날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일부 보수·기독교 단체는 앞서 진행된 역사·사회·도덕·보건 등 교과별 공청회에도 참석해 ‘나는 동성애자를 변태라고 생각한다’와 같은 ‘반동성애’ 혐오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고, 무대에 난입하는 등 소동을 피웠다. 이들은 총론 공청회에서도 ‘동성애 옹호교육 결사반대’ 등의 손팻말을 든 채 고성을 지르며 공청회 진행을 방해했다. 이에 대해 손지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부위원장은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세력들이 성평등교육 반대, 젠더교육 반대를 외치며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하고, 나이 어린 사람을 조롱하고, 여성 발제자에게 성희롱을 저질렀다”며 “공청회가 민주적 공론장이 맞느냐”고 반문했다. 전교조는 10일 성명서를 내고 “교과별 공청회가 파행을 겪을 때에도 공청회 운영 정상화에 나서야 할 교육부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고 방관했다”며 “총론 공청회에서 혐오 발언, 폭력 사태 등이 벌어질 것은 이미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나 교육부는 무능함을 보여줄 뿐이었다”고 비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에 “총론 공청회에 앞서 경찰에 협조요청을 했고 현장에 경찰이 와 있었다”며 “다만 교육부가 (패널이 아닌) 참석자의 현장 발언까지 사전에 확인하기는 어렵고 공청회 취지를 고려하면 경찰이든 교육부든 단순히 고성을 질렀다고 해서 참석자를 강제로 밖으로 끌어낼 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특고노조는 11일 오전 11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 위원장에 대한 폭력을 방치한 교육부의 사과 및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요구할 예정이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