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나와 내 친구일 수 있었다”…또래 잃은 20대, 국가에 분노하다

등록 2022-11-04 16:36수정 2022-11-05 01:59

용산 대통령실 앞 대학생 기자회견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소속 대학생들이 4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이태원 참사 피해자는 “주로 20,30대로 어쩌면 내가 될 수도 있었던 이야기”라며 “정부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상자와 유가족, 국민에게 사죄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소속 대학생들이 4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이태원 참사 피해자는 “주로 20,30대로 어쩌면 내가 될 수도 있었던 이야기”라며 “정부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상자와 유가족, 국민에게 사죄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한국외대 신입생 박시영(21)씨는 핼러윈을 앞둔 지난달 29일 이태원을 찾을 계획이었다. 경북 의성에서 상경한 그에겐 서울에 살게 되면 이태원에서 꼭 한번 핼러윈 파티를 해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 하필 아르바이트가 늦게 끝나는 바람에 이태원 행을 포기한 그는 이튿날 새벽, 부모님과 친척들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이태원에서 백여명의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4일 오후 1시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전대넷)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씨는 <한겨레>에 말했다. “만약 그날 제가 핼러윈 파티에 갔다면 희생자가 됐을 수도 있었어요. 서울 한복판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나도 언제 어디서 이런 참사의 희생자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겁이 나요. 경찰도 바로 오지 않았는데 앞으로 우리는 누굴 믿고 의지해야 하나요?”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은 156명 중 20대 희생자가 104명으로 유독 많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또래를 떠나보낸 20대 대학생들도 참담한 심경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서는 ‘더 이상 안전한 곳은 없다’는 불안감과 위험에 처한 국민을 구하지 못한 국가를 향한 분노가 쏟아졌다.

이들은 이번 참사의 희생자가 자기 자신이나 함께 수업을 듣던 동기, 친구가 될 수 있었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대넷 의장을 맡고 있는 이민지 한국외대 총학생회장은 “그날 용산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던 터라 이태원에서 뒤풀이를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가,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생각했다”며 “황망함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온몸으로 배웠다”고 말했다. 서울여대 재학생 백휘선(24)씨는 “이제 막 학교 시험이 끝나고 몰려오던 과제를 한차례 마친 많은 대학생들이 자신에게 줄 보상으로 재미있는 주말을 생각하고 이태원으로 향했을 것”이라며 “내 친구도 그날 이태원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식을 접하자마자 친구 걱정부터 했다”고 말했다. 이어 “친구는 무사했지만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던 서울이 두렵고 불안한 공간으로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지금의 20대들은 8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10대였다. 두 차례의 대형 참사로 또래를 잃은 이들은 세월호 참사 당시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국가 안전관리 체계에 대한 분노가 컸다. 백씨는 “세월호 참사 때도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 책임을 회피해놓고, 이번에 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모습에 더 화가 난다. 국가는 또 다시 재난으로 누군가를 잃지 않도록 재발 방지책을 세우고 국민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세월호, 그리고 이태원에서 너무도 허망하게 외면 속에서 죽어간 또래의 숫자를 가만히 지켜보게 된다”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용산구청장, 경찰과 소방을 배치해도 예방할 수 없었을 것이라 말하던 행정안전부 장관, 외신 브리핑을 하며 농담을 하던 총리, 침묵뿐인 애도를 요구하는 여당과 사과하지 않는 대통령을 마주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놀다가, 일하다가, 공부하다가, 걷다가 죽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안전 사회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다는 반응도 나왔다. 박시영씨는 “경찰이 충분히 투입될 수 있던 상황이었고 예방 가능한 일이었는데 그러질 못했다”며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누굴 부르고 믿고 의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백휘선씨는 “최근에 에스피씨(SPC) 산재 사망 사고도 그렇고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도 그렇고 계속 또래가 죽었다”며 “여성으로서, 노동을 하게 될 사람으로서 안전하지 않을 수 있겠단 생각은 했는데 놀기 위해 모인 공간에서도 목숨을 잃을줄은 몰랐다. 과연 이곳이 안전한가 고민이 든다”고 전했다.

한편, 세월호 참사에 이어 이태원 참사까지 직·간접적으로 겪은 20대들의 트라우마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대학들의 심리 상담 지원도 본격화하고 있다. 경희대 심리상담연구소는 지난달 31일 누리집에 공지글을 올려 직·간접적으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대상으로 심리 상담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화여대도 같은날 누리집에 김은미 총장 명의의 게시글을 올리고, 사고 정보를 구체적으로 접한 학생들이 입은 정신적 충격에 대해 지원할 예정이라며 의료적 지원이 필요한 경우 이화의료원과 연계해 도움을 주겠다고 밝혔다. 외국인 유학생 2명이 희생된 서강대의 학생생활상담연구소도 이번 참사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응급상담을 제공한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내일 낮부터 기온 뚝…9월 마지막날까지만 ‘최고 30도’ 1.

내일 낮부터 기온 뚝…9월 마지막날까지만 ‘최고 30도’

플라스틱 재활용 고작 16.4%…분리배출은 뭐하러 했나 2.

플라스틱 재활용 고작 16.4%…분리배출은 뭐하러 했나

“윤 정부, 해도 너무한다”…숭례문 도로 메운 시민들 ‘퇴진’ 외쳐 3.

“윤 정부, 해도 너무한다”…숭례문 도로 메운 시민들 ‘퇴진’ 외쳐

중학교 시험 지문에 ‘봉하마을, 뒷산 절벽서’…파문 4.

중학교 시험 지문에 ‘봉하마을, 뒷산 절벽서’…파문

영국 잡지가 꼽은 “서울의 브루클린”…‘세계 가장 멋진 동네’ 4위 어디? 5.

영국 잡지가 꼽은 “서울의 브루클린”…‘세계 가장 멋진 동네’ 4위 어디?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