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열린 역사과 교육과정심의회에서 ‘자유민주주의’ 표현이 들어간 2022 개정 역사과 교육과정 행정예고안을 표결에 부친 결과, 14명 가운데 13명이 반대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추가하면서 연구진의 동의는 받지 않았지만 교육과정심의회 심의 기능 등 법적 절차를 따랐다고 강조했던 교육부는 이제는 심의회 역할을 축소하는데 급급한 모양새다.
이날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 오전 10시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으로 열린 역사과 교육과정심의회에 전체 위원 20명 가운데 14명이 참석했다. 대통령령인 ‘교육과정심의회 규정’을 보면, 교육과정 심의 법정기구인 교육과정심의회는 교과별·학교(급)별 소위원회와 참여위원회, 운영위원회로 구성된다. 소위원회와 참여위원회, 운영위원회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써 의결하며 각 소위원회와 운영위원회의 의결은 심의회의 의결로 본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역사과 심위의원 ㄱ씨는 “규정에 따라 ‘자유민주주의’ 표현이 추가된 행정예고안에 대해 찬반을 묻는 표결을 진행했고 14명 가운데 13명이 반대 뜻을 밝혔다”며 “이는 교육부의 행정예고안이 아닌 연구진의 안을 존중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앞서 역사과 연구진 일동은 지난달 9일 행정예고안이 발표되자 “교육부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명기하는 데 집착함으로써, 민주주의와 관련된 다양한 보편적 가치를 담고자 한 연구진의 의도를 왜곡했다”며 “교육부는 연구진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수정한 행정예고안을 철회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 체제에 맞서는 대립 개념으로 차용된 탓에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꿀 경우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 미화에 악용될 수 있고 민주주의 개념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협소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그런데 ㄱ씨 말을 종합하면, 이날 회의에 참석한 교육부 관계자들은 위원들에게 “심의회는 의결할 수 있는 기구가 아니며 (교육과정에 대한) 최종 결정은 교육부 장관이 한다”며 “표결 결과는 구속력 있는 결정이 아니”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고 한다. 이러한 발언은 행정예고안을 발표하며 교육부가 보인 태도와 사뭇 다르다. 당시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역사과 연구진에 자체 수정·보완을 여러 차례 요청하였으나 해소되지 않은 쟁점이 남아있어 교육과정심의회 등 개정 관련 협의체 논의를 거쳐 관련 표현(자유민주주의)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연구진 동의는 받지 않았지만 여러 협의체의 논의를 거쳤기 때문에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됐음을 강조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후 협의체 회의록을 열람한 국회의원들이 협의체 의견을 반영해 개정 교육과정 내용을 수정·보완했다고 발표한 교육부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비판하는 등 절차적 하자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1일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교사 1191명은 실명선언문을 내고 “교육부는 역사과 교육과정에 대한 일방적 수정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한편, 2022 개정 교육과정 행정예고는 지난달 29일로 끝났다. 교육부는 조만간 교육과정심의회 운영위원회를 열어 국가교육위원회로 넘길 교육과정 최종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국가교육위원회의 심의·의결이 끝나면 교육부 장관이 올해 안에 확정·고시할 예정이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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