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의 한 고등학교 교사 ㄱ씨는 지난 2일 교무실에서 교원능력개발평가 결과를 확인한 뒤 큰 충격을 받았다. 익명으로 쓰인 서술형 답변에 여성의 신체를 비하하고 성적 불쾌감을 유발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해당 학교에서 ㄱ씨를 포함해 6명의 교사가 같은 피해를 입었다. ㄱ씨는 8일 <한겨레>에 “성희롱을 한 학생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학생들을 마주쳐야 하니 두려운 마음이 크다”며 “교사로서 학생을 의심하고 마주하는 걸 기피하게 되는 상황 자체가 정신적으로 큰 타격”이라고 털어놨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과 교원단체의 성명을 통해 해당 사건이 공론화된 뒤, 교사들이 성희롱과 모욕적인 발언에 무방비로 노출되지 않도록 교원평가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사들은 교원평가지에 성희롱이나 욕설이 담기는 일이 잦다고 말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이날 공개한 ‘교원평가 자유서술식 문항 피해사례 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 유·초·중·고 및 특수학교 교사 6507명 중 30.8%가 ‘성희롱, 욕설, 외모비하 등 피해를 직접 경험한 적 있다’고 답했다. ‘동료 교사의 사례를 본 적 있다’는 응답은 38.6%였다. 교육부는 금칙어가 포함된 답변 전체를 교사에게 전달하지 않는 필터링 체계를 운영 중이지만 의도적으로 오타를 내면 이를 피하는 게 가능하다. ㄱ씨와 같은 피해를 입은 교사 ㄴ씨는 “스스로 보호하려고 결과를 확인하지 않는 교사들도 많다”며 “관리자급 교사가 평가 결과로 괴로워하는 신입 교사에게 ‘왜 확인을 했냐’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동안 교사들은 대체로 참고 넘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교원평가를 통해 성희롱, 외모비하, 욕설, 인격모독 피해를 경험했을 때 어떤 조치를 취했냐’는 물음에 98.7%가 ‘참고 넘어갔다’고, 1%가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를 요구했다’고 답했다. 0.3%만이 ‘고소·고발 등을 진행했다’고 답했다.
피해 교사들은 가해 학생들에게 자수할 기회를 주고, 스스로 반성하도록 학교와 교육당국이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ㄱ씨는 “학교와 교육청에서 특별휴가나 공무상 병가, 교권보호위원회 같은 조치 방안을 안내했지만 발언을 남긴 학생이 누구인지 모르니, 가해자와 피해자 간 분리 조치도 안 되고 결국 반쪽짜리 대책”이라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교원평가를 개선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지만 그 방식을 두고는 입장이 갈린다. 교원단체는 교사 전문성 신장이라는 취지가 퇴색되고 ‘악플의 창구’가 되었다며 폐지를 주장한다. 하지만 없애기보단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영희 단국대 교육대학원 교수(교육학)는 “교원평가는 현장에 관한 학생과 학부모의 공식적인 의견을 듣는 유일한 창구”라며 “다만 현재 학생들이 교원평가를 장난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으므로 교원평가의 의미를 충분히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필터링 시스템은 보완이 가능한 영역”이라며 “개별 교사에게 내용을 전달하기 전에 학교나 교육청의 담당자가 욕설이나 모욕적인 발언이 포함된 답변을 한차례 더 걸러내는 방법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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