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성적 발표일인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서 수험생이 성적표를 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문·이과 통합으로 두번째 치러진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수학영역과 국어 최상위권에서 ‘이과 쏠림’ 현상이 심화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11일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가 서울 시내 고등학교 87곳의 수험생 2만6천여명의 수능 실채점 결과를 분석한 결과, 올해 수학 1등급을 받은 학생 가운데 선택과목으로 ‘미적분’을 본 학생이 88.72%, ‘기하’를 본 학생은 4.73%였다.
‘확률과통계’를 본 학생은 6.55%에 불과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도입에 따라 고교에서는 문·이과 구분을 하지 않지만 통상 수학 영역 선택과목으로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하면 이과생, ‘확률과통계’를 선택하면 문과생으로 분류된다. 수학 1등급 가운데 93%가 이과생인 셈인데, 지난해 분석 결과에서도 94.2%를 기록한 바 있다.
국어 영역의 경우 수학에 견줘 쏠림 현상이 더 심해졌다. 연구회 분석 결과, 올해 국어 1등급을 받은 학생 가운데 선택과목으로 ‘언어와매체’를 본 학생은 85.58%로, 지난해 70.88%에 견줘 15%포인트 가까이 증가했다. 반면 ‘화법과작문’ 비율은 29.12%에서 14.42%까지 떨어졌다.
입시학원의 분석도 비슷하다. 종로학원이 2023학년도 수능에 응시한 수험생 4968명의 성적을 분석한 결과, 수학 1등급에서 이과생(미적분이나 기하 선택) 비율은 88.9%로 지난해 추정치인 85.3%보다 높게 나타났다. 국어 1등급에서 ‘언어와매체’를 본 학생 비율은 72.1%로 지난해 추정치인 65%보다 증가했다. 특히 종로학원은 과학탐구를 응시한 학생 가운데 ‘언어와매체’를 선택한 비율이 지난해 35.8%보다 올해 44.4%로 8.6%포인트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국어 영역에서도 이과생들의 상위권 독점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올해도 평가원이 국어와 수학 영역의 선택과목별 표준점수 분포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종로학원은 국어의 경우 ‘언어와매체’를 선택했을 때 표준점수 최고점(만점)은 134점, ‘화법과작문’을 선택했을 때는 130점으로 4점 차이가 난다고 추정했다. 수학은 ‘미적분’과 ‘기하’를 선택했을 경우 145점, ‘확률과통계’는 142점으로 3점 낮다고 추정했다.
이처럼 똑같이 전체 문항을 다 맞히더라도 표준점수에서 앞서나가는 이과생들이 인문계열로 교차지원하려는 의사도 지난해보다 더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종로학원이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8일까지 수험생 490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국어·수학·탐구영역 백분위 합계가 270점대 이상인
상위권 학생 가운데 교차지원 의사가 있는 학생 비율은 27.5%로 지난해 같은 기간 조사했을 때(19%)보다 8.5%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수학에 이어 국어에서조차 이과생이 유리한 구도이기 때문에 수시 결과 발표가 진행되면서 (교차지원 비율) 증가 추세는 본격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교육계에서는 ‘과목 쏠림’ 현상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 소속 장지환 교사(서울 배재고)는 “통합형 수능의 점수 산출 구조가 수험생들의 과목 선택을 비정상적으로 왜곡시키고 있다”며 “자신의 진로와 적성이 아닌 점수 유불리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면 학교 교육 현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장 교사는 “적성에도 맞지 않는 학과로 이른바 ‘교차지원’해 진학하는 것은 사회적인 손실”이라고 덧붙였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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