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월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교육부 새해 업무보고 사후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교육부 제공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미국 ‘차터스쿨’(정부 예산을 받아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공립학교)을 본 뜬 한국판 차터스쿨인 ‘협약형 공립고’(가칭)를 내년부터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시범운영한다고 16일 밝혔다. 지역 ‘명문고’를 양산해 지역 정주 여건을 개선한다는 취지인데, 교육계에서는 이들 학교가 되레 수도권 명문대로 학생을 내보내는 주요 통로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명박(MB) 정부에서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미국식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했다가 고교 서열화와 스펙 쌓기 폐해를 낳았던 이 부총리가 또다시 성급하게 ‘외국 모델’을 도입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 부총리는 이날 <중앙일보>에 공개된 인터뷰에서 “좋은 학교를 많이 만들어 공교육 전반을 끌어올리겠다. 대표적인 게 협약형 공립고”라며 “혁신도시에 대규모 투자를 했지만 교육 때문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많다. 기업과 연계해 민간의 자율성을 부여하면 (지역에) 명문고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협약형 공립고’의 모델은 미국 ‘차터스쿨’과 이와 유사한 영국 ‘아카데미’다.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지만 기업·비영리단체 등 민간에 의해 운영되며 교육과정, 교원 선발 등에서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교육부 관계자는 “(시범운영 뒤) 혁신도시뿐만 아니라 원도심이나 농산어촌 등 교육소외지역 등에 100여곳 정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공립고에 교육과정 자율권을 부여하기 위해선 초·중등교육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판 차터스쿨도 미국처럼 학비가 없고, 현재로선 학생선발권을 부여하지 않고 지원자가 많을 경우 추첨제를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교육계에서는 ‘유사’ 자사고가 100개 더 만들어지는 것에 불과하다는 평이 나온다. 이로 인해 일반고 위기와 고교 서열화가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이 부총리가 말하는 ‘좋은 학교’는 수도권 명문대를 많이 보내는 학교”라며 “한국판 차터스쿨에 교육과정의 자율권을 부여하면 기존 자사고처럼 국·영·수 입시 위주 수업에 몰두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 위원은 “이들 학교들은 학생을 지역에 머물게하는 게 아니라 지역을 떠나게 만드는 학교로 지역 정주 여건 개선이라는 도입 취지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부총리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었던 엠비 정부 당시 입학사정관제 도입을 떠올리는 전문가도 많다. 인천의 한 고교 교사 정아무개씨는 “당시 이 부총리가 외국에서 성공한 사례라고 성급하게 밀어붙였지만 ‘부모찬스’를 막기에는 준비가 부족했다”며 “차터스쿨도 미국과 우리 교육 상황이 어떻게 다른지, 부작용은 없을지 충분히 고려한 뒤에 시범운영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이 부총리는 차터스쿨과 관련해 교원단체나 시·도교육청과 협의도 없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앞으로 어떤 형태로 가는 것이 좋을지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2024년 시범운영하는 ‘교육자유특구’도 벌써부터 지역 간 교육 불평등 우려가 크다. 교육자유특구로 지정된 지자체의 초·중·고교는 학교 설립과 교육과정 운영, 교원 채용 등에서 자율성을 보장받게 될 전망이다. 전경원 경기도 교육정책자문관은 “특구로 지정된 지자체와 그렇지 못한 지자체 간 교육 격차가 더 커지면서 지역 사회의 반발이 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교육단체협의회는 지난 10일 입장문에서 “교육자유특구에서 다양한 고교를 설립하겠다는데 이는 유치 경쟁에 따른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지자체에 부과하고 과거 고교 다양화라는 이름으로 자사고·특목고를 늘려 학교의 계층·계급화를 열었던 엠비-이주호표 교육개악보다 더 심각한 교육불평등을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유진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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