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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폭 즉시분리 고작 3일…‘끝장 소송’에 피해학생만 교문 밖으로

등록 2023-03-01 06:00수정 2023-03-02 00:39

정순신 아들 학폭사태로 본 현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2017년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1학년 ㄱ양은 이 학교로 전학을 온 직후부터 같은 반 학생들의 괴롭힘에 시달렸다. 가해 학생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ㄱ양 험담을 하고 체육시간에는 일부러 ㄱ양에게 공을 세게 던지기도 했다.

ㄱ양의 학교폭력 신고를 받은 학교 쪽은 가해 학생들에게 사회봉사 등의 처분을 내렸지만 이 결정이 확정되기까지는 3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강제전학 등에 견줘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분이었음에도 가해 학생 부모들은 처분에 불복해 집행정지 신청, 행정소송으로 시간을 끌었다.

3학년 초,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 건 ㄱ양이었다. 학교 복도나 급식실 등에서 반성조차 하지 않는 가해 학생들을 계속 마주치는 상황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ㄱ양이 전학을 간 뒤에야 행정소송 항소심 결과가 나왔는데, 처벌 수위를 결정한 위원 선정 과정에서 학부모 총회를 열지 않은 절차상 하자가 인정돼 사회봉사 처분은 끝내 교내봉사로 낮춰졌다.

아들 학교폭력 징계 처분에 대한 ‘끝장 소송’으로 피해 학생에 대한 ‘2차 가해’를 부른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변호사) 사태를 계기로, 소송이 장기화될 경우 피해 학생을 가해 학생과 분리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행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과 교육부 지침에 따르면 분리 조처는 사안 초기에 집중되어 있고, 가해 학생 쪽에서 학습권 보장을 내세우면서 추가 소송 등에 나설 수도 있어 일선 학교장들이 피해 학생 보호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학폭 가해자 즉시 분리 최대 3일

교육부의 ‘2022년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을 보면, 학교장은 처분 수위를 정하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개최 전이라도 학교장 재량에 따라 가해학생 출석 정지 등 긴급 조처를 내릴 수 있다. 특히 2021년부터는 학교장이 학교폭력을 인지한 경우 피해자의 반대 의사가 없다면 지체 없이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을 분리하는 ‘즉시 분리 제도’도 시행되고 있다.

이에 대해 최민재 전국중등교사노동조합 위원장(서울 동작고)은 28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정순신 아들처럼) 중대한 사안일 경우 통상 출석부터 정지시키지만, 가해 학생의 학습권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장기간은 어렵다”고 말했다. 즉시 분리 제도 역시 사안 초기 최대 3일에 불과하다. 최 위원장은 “학폭위에서 피해학생에 대한 접촉·협박·보복행위를 금지하는 2호 처분을 내려도 정 변호사처럼 강제전학에 불응하는 경우 같은 학교라는 울타리 속에서 반드시 마주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가해 학생 부모들은 처분이 변경·취소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처분 확정을 늦추고 입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단 소송으로 대응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0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가해 학생이 제기한 행정소송 건수는 325건이고, 이 가운데 승소 건수는 57건으로 승소율은 17.5%였다.

정 변호사 역시 대법원까지 행정소송을 끌고 갔지만 모두 패소한 바 있다. 일단 학폭위에서 처분이 내려지면 해당 시점에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남는다. 하지만 소송으로 처분이 변경·취소되면 최초 처분 일자를 유지한 채 기록을 바꿔치기하는 이른바 ‘기록 세탁’도 가능하다. 강 의원은 “가해 학생이 행정심판, 행정소송, 집행정지 신청 등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피해 학생이 보호받지 못하고 ‘2차 가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교육부에 재발 방지책 마련을 촉구했다.

교육부는 장기적인 보호 대책을 강구하겠다면서도 학생 보호의 최종 책임은 학교장에 있다며 책임을 미루는 모양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날 “사안 초기뿐 아니라 이후에도 피해학생을 가해학생과 분리·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전문가들과 다시 한번 검토하겠다”면서도 “학생의 학습환경 개선 노력은 학교장의 권한이자 의무사항”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일선 교사들은 교육부 지침에도 명확하게 나와있지 않은 조처를 학교장 재량으로 적극적으로 내리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상우 실천교육교사모임 전 교권보호팀장(경기 금암초)은 “처분이 확정되지 않았고 (정 변호사처럼)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까지 한 상황에서는 학교장이 추가적인 조처를 내리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싸움이 길어질수록 피해 학생만 계속 괴로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짚었다.

“소송기간 단축 등 피해자 보호 조처를”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부에 학교폭력 근절 종합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가운데, 소송을 원천 차단하기 어렵다면 소송 기간이라도 단축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공직선거법처럼 학교폭력예방법에도 소송 기간을 정해두는 조항을 신설하면 피해 학생이 고통받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직선거법 제270조(선거범의 재판기간에 관한 강행규정)는 ‘선거범과 그 공범에 관한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하여 신속히 하여야 하며, 그 판결의 선고는 제1심에서는 공소가 제기된 날부터 6월 이내에, 제2심 및 제3심에서는 전심의 판결의 선고가 있은 날부터 각각 3월 이내에 반드시 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소송 기간 동안 피해자 목소리를 반영할 창구가 없어 이에 대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학폭위 심의 과정에서는 피해 학생의 심문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지만, 집행정지나 행정소송 단계에서는 학폭위와 가해 학생 쪽의 다툼이 되므로 재판부에서 피해 학생 쪽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학교폭력 사건을 5년 동안 담당해 온 박상수 변호사는 “가해 학생 쪽은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에 (학폭위에 견줘) 더 철저하게 반론을 펼치는 양상을 띈다”며 “성폭력 피해자 변호인은 가해자 재판 과정에서 의견을 진술할 수 있는 것처럼, 학교폭력 역시 피해 학생의 변호사가 의견을 진술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행정소송 5건 가운데 1건가량 승소하고 있는데 해당 제도가 도입된다면 승소율은 더 낮아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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