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반도체학과 등 첨단 분야 인력 양성을 위해 20여년 만에 수도권 대학 정원을 순증하기로 한 가운데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대원칙이 산업 논리에 밀린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기존 공대 교육으로 인력 양성이 가능한 상황에서 별도로 개설되는 첨단분야 학과가 ‘보여주기식’에 그칠 것이라는 냉정한 평가도 나온다.
교육부는 27일 2024학년도 일반 4년제 대학의 첨단분야 정원 조정 결과를 공개하면서 “수도권은 신청 대비 14.2%(817명), 지방은 신청 대비 77.4%(1012명)가 증원됐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단기간 대규모 증원에 따른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증원 규모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결과적으로 수도권 대학과 지방의 학생 모집 양극화를 부추길 것이라고 본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수도권 대학 순증으로 지방대의 학생모집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그동안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수도권 대학 정원 증원을 피하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는데 이를 어긴 것이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실제 비수도권 대학의 경우 반도체 학과 등 첨단분야 학과에서도 ‘정원 미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해 10월 수도권 대학·지역대학의 반도체학과 충원율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대학 22곳(지방대 16곳) 가운데 7곳이 정원 모집에 실패했는데 실패한 대학 모두 지방대였다. 이 가운데 충원율이 76.7%(30명 정원, 23명 입학)에 그친 원광대는 결국 반도체 학과 폐지를 결정했다. 반면 고려대·국민대·동국대·서울과기대·성균관대·연세대·가천대 등 수도권 대학 반도체학과는 모두 100% 충원율을 기록했다. 박맹수 원광대 전 총장은 지난해 7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반도체·디스플레이학부 폐과와 관련해 “피눈물이 난다”며 “정부가 반도체 인재 양성을 위해 수도권 대학의 정원 규제를 풀어주면 지방 대학의 몰락을 촉진할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첨단분야 학과를 별도로 운영하는 것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있다. 남중웅 한국교통대 교수(이학박사)는 “반도체 학과를 만든다고 반도체 인재 양성이 될지 의문”이라며 “반도체를 만들려면 화학공학, 물리학, 기계공학 등 융·복합적인 학문이 필요하다. 학부에서는 기존 학과에서 공대 교육을 이수하도록 하고, 반도체 학과는 석·박사 과정 중심으로 연구 인력을 양성하는 게 실효성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지역의 한 공대 교수는 “기존 학과에서 하고 있는 교육도 반도체 등 첨단분야와 상당 부분 연관돼 있기 때문에 충분히 반도체 인재를 키울 수 있다”며 “특정 산업의 이름을 딴 학과를 부랴부랴 신설했다가 그 분야가 갑자기 쇠퇴하면 그 학과의 학생들은 어떻게 될지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에 반도체 부문에서만 4조5800억원의 적자를 냈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에서 분기 적자를 기록한 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이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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