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5일 교육부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반도체 산업 생태계와 인재수요’를 주제로 토론회를 진행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반도체 인재 양성 후속 조치로 일반학과에도 산업체 맞춤형 인력 교육을 위한 ‘계약정원제’를 도입하고, 기업과 대학이 협약을 맺어 운영하는 계약학과 규제도 대폭 완화한다. 그러나 규제 완화로 첨단 분야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느냐는 지적과 더불어 수도권 주요 대학 쏠림 현상만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교육부는 23일 산학협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올해 6월부터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차세대 반도체 등 21개 첨단 분야의 경우 대학이 계약학과를 신설하지 않더라도 일반학과에 정원의 20% 이내인 ‘계약정원’을 추가해 운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원 100명의 전자공학과가 반도체 계약정원을 운영한다면 최대 20명까지 정원을 늘릴 수 있다. 첨단 분야 채용조건형 계약학과의 정원외 선발도 입학 정원의 20% 이내에서 50% 이내로 확대된다. 계약학과는 졸업 뒤 취업을 보장하는 채용조건형과 산업체 재직자를 위탁 교육하는 재교육형으로 나뉜다.
계약학과 운영을 위한 기업의 재정 부담도 줄였다.
계약학과의 경우 기업이 운영 경비의 절반 이상을 부담하도록 했지만, 지방대학과 협약을 맺어 첨단 분야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를 설치할 경우엔 운영 경비의 50% 미만을 부담하게 된다. 재교육형 계약학과 설치 대학은 산업체와 같은 시·도에 있거나 직선거리로 50㎞ 안에 있어야 한다는 규제가 적용돼왔으나, 첨단 분야의 경우 이런 규제도 없앴다.
교육 전문가들은 계약학과의 규제 완화로 반도체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정책에 물음표를 던졌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는 “교수 확충 없이 학부생을 더 뽑겠다는 건 실효성이 없다”며 “이미 있는 학과도 교수와 설비가 부족한데 학생만 뽑아 놓으면 교육의 질이 올라가겠느냐”고 짚었다. 그는 “첨단분야에서 요구하는 인력은 학부생이 아니라 석·박사급”이라며 “첨단분야의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선 긴 호흡을 갖고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규제 완화로 수도권 주요 대학 쏠림 현상이 심화해 지방대의 위기가 더 확산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대기업은 수도권 주요 대학 중심으로 계약을 체결하려 하기 때문에 이번 조처가 수도권 주요 대학 쏠림 현상 심화, 나아가 지방대 위기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지역거점대 총장도 “산업체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는 점만 해도 지방대가 불리한데,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도 같이 풀어버리면 지방대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대학알리미 정보공시 자료를 보면, 지역별 계약학과 충원율은 지난해 기준 서울 105.5%, 경기 101.7%로 수도권 대학은 정원을 채웠지만 부산(73.1%), 경남(73.7%), 광주(78.3%), 대구(80.3%) 등 비수도권 대학은 미달 사태를 겪었다. 앞서 지난해 7월 교육부가 첨단학과 신·증설을 쉽게 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풀겠다고 하자, ‘7개 권역 지역대학 총장협의회 연합’(총장연합)은 기자회견을 열어 “첨단학과 정원 규제 완화는 지방대 위기를 가속화 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총장연합은 성명에서 “지방대도 살리고 반도체 인력도 양성하기 위한 고민 없이 대학 정원 증원이라는 손쉬운 방식으로 인력을 양성한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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