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의 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ㄱ교사는 지난해 12월 교원능력개발평가(교원평가) 결과를 확인한 뒤부터 학생들을 마주치는 게 두려워졌다. 익명으로 이뤄진 교원평가의 서술형 답변에는 여성의 신체 부위를 언급하며 성적 불쾌감을 유발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성희롱성 글을 남긴 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학생들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 ㄱ교사를 괴롭게 했다. 이 학교에서만 ㄱ교사를 포함해 6명의 교사가 이런 피해를 보았다. 경찰 수사 끝에 작성자가 특정됐고 학교는 지난 1월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작성자인 ㄴ군을 퇴학 처분했다.
지난해 세종시 고교 교사들이 교원평가에서 성희롱 피해를 본 사실이 공론화되며 교원평가 개선 요구가 커지자 교육부가 12일 개선책을 내놨다. 온라인 교원평가 플랫폼에 ‘부적절한 답변을 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경고 문구를 게재하고 금칙어 여과 기능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교육부는 이날 ‘2023년 교원능력개발평가 시행방안’을 발표했다. 교원평가는 해마다 유·초·중·고와 특수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학생과 학부모가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진행하는 평가로, 교사의 학습·생활지도 역량에 대한 만족도 평가(5단계 척도)와 서술형 답변을 남기고 교사가 열람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올해 교원평가는 오는 9∼11월 한다.
먼저 교원평가의 서술형 문항 앞에 “교육활동과 관련이 없는 부적절한 답변(인신공격, 모욕, 성희롱 등)을 제출하는 경우 관련 법에 따라 처벌될 수 있고, 교육활동 침해행위에 따른 조치를 받을 수 있다”는 경고 문구를 게시한다. 기존에는 “선생님께 적절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교육활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에 삼가달라”는 안내에 그쳤다.
교육부는 또 서술형 답변 때 금칙어 여과 기능을 강화한다. 현재 금칙어가 포함된 답변 전체를 교사에게 전달하지 않는 체계가 운영 중이나, 금칙어 사이에 특수기호를 추가해 의도적으로 오타를 내면 이를 피하는 게 가능하다. 올해부터는 특수기호를 섞어 작성한 금칙어도 걸러지도록 시스템을 개선했고, 금칙어 목록도 추가하기로 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재 876개의 금칙어 목록이 있다”며 “계속 늘어나는 것을 따라잡는 것은 어려워 장기적으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필터링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피해가 발생하면 학교와 교육지원청이 수사 의뢰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하고, 가해자가 특정되면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학생에게는 교내·사회봉사, 특별교육·심리치료, 출석 정지, 학급 교체, 전학, 퇴학 등 징계 조처를, 피해 교원에게는 심리상담, 특별휴가 등 보호조처를 한다.
교사들은 금칙어 필터링 강화 같은 방안은 미봉책이라며 ‘악성댓글의 창구’로 변질한 교원평가의 서술형 문항 자체를 없앨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혜영 서울교사노조 대변인은 “표현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금칙어 필터링 기능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교원들의 피해를 막기에 한계가 있다”며 “피해 교원에 대한 심리상담이나 특별휴가 등의 조치는 이미 이뤄지고 있다. 추가로 보호할 방안이 무엇인지 교육부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날 “지금도 부적절한 표현 때문에 서술형 답변을 아예 보지 않는다는 교사들이 많다”며 “인상평가, 인기평가로 전락한 교원평가제의 전면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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