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산소쌤’ 소속 교사들은 서로의 환경수업 경험을 나누며 자신의 환경수업을 설계해나간다. ‘어쩌다, 산소쌤’ 제공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제 우리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야 한다.”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말이다. 툰베리의 말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시작한 교사들이 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국·영·수 등 자신의 교과목에 맞게 생태 수업을 시도하고, 생태 일기를 쓰고, 생태 동화와 환경 교재를 만드는 등 한 달에 5∼6번씩 만남을 가지며 ‘찐환경러’로 살아가는 교사들의 모임이 있다. 6월 환경의 달을 맞아 ‘생태전환교육이 기후위기를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실천하는 ‘어쩌다, 산소쌤’을 소개한다.
지난달 31일 저녁 8시 온라인 줌 회의실에 30여명의 교사들이 눈을 반짝이며 강의를 듣고 있었다. 강의의 주인공은 대구 운암초등학교 박다혜 교사. 박 교사는 ‘탄소중립시범학교’로 선정된 운암초에서 자신이 시도했던 각종 환경 활동과 교육을 1시간 동안 들려줬다.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감축과 관련된 그림 그리기, 글쓰기, 탄소중립 학생 의회 조직, 매달 플로깅 활동, 오래된 물건 자랑 챌린지, 탄소중립 실천 기록표 만들기, 학교 현수막을 가방으로 재활용하기, 페트병이나 휴지심을 재활용해서 학교 꾸미기, 환경 그림 전시회, 재활용 나눔장터 운영…. “어려서부터 아빠가 에어컨만 틀어도 울면서 말릴 정도로 환경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가 지난 1년간 시도한 환경 활동들은 혀를 내두를 수준이었다.
강의를 듣는 교사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끈 활동은 ‘오래된 물건 자랑하기 챌린지’와 ‘나눔장터’였다. “아이디어가 참신하다”는 동료들의 의견에 박 교사는 “헌 물건을 쓰는 게 자랑이 되고 문화가 되는 걸 만들고자 진행했는데 아이들이 부모님이 초등학교 때 쓰던 연필깎이와 사전 등을 자랑하는 등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전교생이 강당에서 자신이 안 쓰는 물건을 가지고 와서 사고팔았던 나눔장터에 대해 교사들은 “아비규환이 될까봐 엄두를 못 내겠다” “우리 학교는 자기 물건이 안 팔린다고 울고, 자기가 사고 싶었던 게 팔렸다면서 울고 해서 정신이 없었는데 성공적 진행의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묻기도 했다. 박 교사는 깨알같은 성공비결들을 나눠줬다.
이들은 지난해 발족한 모임 ‘어쩌다, 산소쌤’ 회원 교사들이다. 이들은 한달에 1∼2회씩 줌으로 만나서 이렇게 자신이 진행했던 환경 수업과 활동 경험을 나누고 질의응답을 받는다. 회원 교사들은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유·초·중·고등학교에서 다양한 과목을 맡고 있는 교사들이다. 원래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어서 오랫동안 혼자서 생태 수업을 실천해왔던 ‘고수’들도 있고, 앞으로 생태교육을 해보고 싶은 새내기 교사들도 있다. 처음 모임을 시작했을 때 참여한 교사는 20여명이었지만 지금은 200여명으로 불어났다. 2022 교육개정과정에 생태전환교육이 포함된 가운데, 생태 수업을 같이 고민하는 모임에 목말랐던 교사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어쩌다, 산소쌤’은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쓴 방송인 타일러 라쉬를 초청해 특강을 들은 뒤 환경후원금을 모아 한국세계자연기금에 기부했다. ‘어쩌다, 산소쌤’ 제공
이 모임을 만든 김묘연 대구과학고 교사는 “‘멸종위기종’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전국에 환경교사는 10여명도 안 되는 상황에서 생태전환교육은 전 교과의 당면 과제가 됐다”며 “환경교육 비전공자들인 교사가 연수와 책 몇 권 읽고 생태전환교육을 설계하는 것은 어려운데다 각 교과별 성취기준과 연계한 자료도 부족해서 교사들이 함께 공부도 하고 자료도 공유하기 위해서 모임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즉 “생태교육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춰서 하나라도, 누구라도 시도해볼수 있는 생태전환교육을 이루기 위함”이란다. 교사들은 수업 경험의 성공과 실패를 서로 나누고 피드백을 받아서 수업을 재설계하고 다시 실천하고 그 경험을 다시 나누는 선순환을 이뤄나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축적된 자료들은 카페(cafe.naver.com/o2ssaem)를 통해 공유한다.
모임은 전문가들을 초빙해 환경 특강을 듣기도 한다. 지금까지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 관장, <착한 소비는 없다> 등을 쓴 최원형 환경 작가,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쓴 타일러 라쉬 등이 연사로 초청됐다. 강연을 들은 교사들은 환경후원금을 모아 한국세계자연기금에 기부하기도 했다.
회원 교사들이 카페에 올리는 ‘생태일기’도 서로에게 큰 힘이 된다. 자신의 솔직한 경험담과 생각을 올리면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등의 고민에 대한 소통 창구가 되어주고 있다.
관심사에 따라 참여할 수 있는 소모임도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환경 도서를 읽어 나가는 ‘환경독서마라톤 모임’, 생태 그림책을 같이 읽는 ‘생태 그림책 모임’, 아이들에게 읽힐 생태동화를 직접 쓰는 ‘생태동화 창작 모임’, 우리 주변의 자연을 관찰하고 그려보는 ‘생태그림 그리기 모임’ 등이 있다. 일부 선생님들은 올해 말 출간을 목표로 생태전환교육을 위한 수업 책을 쓰고 있다. 많은 선생님들이 여러개의 소모임에서 동시에 활동하다 보니 소모임이 겹치지 않게 일요일 아침 6∼7시에 만나기도 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오픈톡방은 가장 실용적인 창구다. 누군가 질문을 올리면 바로 답이 올라오고, 누군가 관련 자료를 요청하면 바로 이곳에서 공유된다.
“교과 지식만 가르치는 교육에 회의를 느끼고 의미있는 가치를 가르치고 싶던 차에 ‘어쩌다, 산소쌤’을 만나게 됐다”는 문은교 광주 문산중학교 교사는 “지난 1년간 여기서 배운 것들을 교과와 비교과 시간에 많이 활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환경’이 나오는 단원에서는 아이들에게 환경 일지를 쓰게 하고, ‘동물’이 나오는 단원에서는 동물권 찬반 토론을 벌이고, 육식과 채식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눴다. 수학여행을 공정여행으로 계획해서 다녀온 뒤 보고서를 발표하게도 하고, 학교 근처에서 플로깅을 하면서 쓰레기 지도를 커뮤니티 매핑으로 만들어보기도 했단다.
이진미 용인 흥덕고등학교 교사는 “고등학교는 입시 위주 교육을 하다보니 색다른 활동을 하고 싶어도 아이디어가 없는데 각급 교사들로부터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쓸 수 있어서 좋다”며 “초등학교 선생님의 시도를 심화·변형시켜서 활용하기도 하고, 다른 영어 선생님에게 학습지를 얻기도 하고, 다른 교과목 선생님에게 아이디어를 얻어 영어 수업에 활용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쓰레기로 플라스틱 바다를 제작한 화성 방교초등학교 수업 장면을 다른 교사들과 공유했다. ‘어쩌다, 산소쌤’ 제공
하지만 이 모임이 회원들에게 주는 가장 큰 의미는 연대감이다. 많은 교사들이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외롭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일회용 물건을 쓰지 않고, 포장이 과한 물건은 사지 않고, 텃밭을 가꾸고, 채식을 하고, 가족이 목욕한 물에 목욕하고…. 이런 삶에 대해 한편에서는 ‘대단하다’고 칭찬하지만 한편에서는 ‘뭘 그렇게까지 하냐’며 불편해한다.
박다혜 교사는 “나의 정체성이 ‘환경’인데 이곳에서는 이상하게 보지 않고 다들 고개를 끄덕여주니까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김묘연 교사는 “교육이라는 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어서 삶의 이야기를 뺄 수가 없는데, 지금 삶의 기반인 기후위기와 환경 이야기를 교과에서 다루는 걸 시도조차 하지 않거나 심지어 “국어과가 그런 거 왜 해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도 있었다”며 “이 모임에서는 지속적인 삶을 위한 인식의 확장과 수업 방법을 고민함으로써 나의 교과 수업을 심도 있고 풍성하게 펼쳐나갈 수 있음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김은지 화성 방교초등학교 교사는 “아이들과 3년간 업사이클 활동을 해왔는데 함께 하는 교사가 없다 보니 적적했는데 여기선 나의 시도에 대해 응원도 받고 숨은 고수들에게 배우기도 하니까 중독성이 있다”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과 서로 좋은 영감을 주고받으며 행복한 공동체를 이루니 참 좋다”고 말했다. 박준일 온양여고 교사는 “혼자서 이런저런 책을 읽으면서 환경 수업을 궁리했을 때는 실패도 많이 했는데 전국에 정말 많은 선생님들이 환경 수업을 진행하고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걸 보니 너무 든든하다”며 “수업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생태적 삶에 대해서도 나누어주시니 내 삶도 점점 변화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