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앞에서 한 추모객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 학교 교사에 대한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여당이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계기로 학생인권조례를 교권 붕괴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재정비하겠다고 나서 논란이 예상된다. ‘교사의 권리와 학생인권은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라며 균형 있는 접근을 주문해온 교사·교육단체들의 기존 입장과 어긋나는 데다, 다양한 교권침해의 원인을 학생인권조례로만 축소시켜 되레 교권보호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 정부·여당 속내는 ‘진보 교육감 탓’?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1일 서울 서초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회관에서 열린 ‘교권 확립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서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사들의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교실 현장은 붕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시도교육감들과 협의해 학생인권조례를 재정비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부총리는 과거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시절 곽노현 당시 서울시교육감이 서울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하자 자신의 재심사(재의) 요구를 거부했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청구, 대법원에는 조례무효확인소송을 냈다가 전부 패소한 바 있다.
여당에서도 비슷한 발언이 나왔다.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학생인권조례를 중시하는 진보 교육감들이 교권을 위해서는 무슨 노력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교권이 무너진 교실에서 학교가 바로 설 수는 없다. 진보 교육감들의 왜곡된 인권 의식으로 인해 학교 현장에서 교권이 붕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앞에서 숨진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줄을 서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학생인권조례 제정 뒤 교권침해도 감소세
체벌과 소지품 검사, 두발 규제 등을 금지하고 학생들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서울(2012), 광주(2012), 전북(2013), 충남(2020), 제주(2021) 등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6곳에서 시행 중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실시한 학생인권 실태조사를 보면, 2015년 22.7%에 달했던 학생들의 체벌·언어폭력 경험은 2019년 6.3%로 급감했다.
이 부총리나 여당에서는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교권침해가 심해졌다’고 주장하지만,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기 시작한 2010년대 이후 교권침해 추이를 보면 되레 감소세를 보였다. 한국교육개발원과 교육부에 따르면, 2014년 4009건이던 교권침해 건수는 2015년 3458건, 2016년 2616건, 2017년 2566건, 2018년 2454건까지 감소했다. 이후 2019년 2662건으로 소폭 증가했다가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2020년 1197건, 2021년 2269건으로 다시 감소했다. 2022년 3035건으로 증가하긴 했지만 2014년·2015년에 견줘 여전히 낮다.
이같은 흐름에 대해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학생인권조례는 전국 모든 지역에서 시행되지 않고 있고, ‘체벌 금지’ 전국 적용은 2011년 3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 덕분”이라며 “전국적인 체벌 금지에도 교권침해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감소세를 보인 것에 대해서는 왜 그런지 추가 파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송 위원은 “교권침해는 악성 민원, 법과 제도의 미비, 학생인권 악용, 코로나19 영향 등 원인이 다양할 수 있다”며 “종합적으로 접근하면서 각각의 원인에 대한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관계자들이 지난 3월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학생 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에 반대하며 청소년 인권 확장을 요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학생인권-교권 상호보완적 개념”
교사·교육단체들은 교권과 학생인권을 대립하는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윤미숙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 정책실장은 이날 오전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저희는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자는 입장은 아니다”며 “대신 교권을 조금 더 강화하고 교사의 인권을 보호하고 교육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해 달라는 데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와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도 이날 공동성명서를 내고 “학생인권과 교권이라고 하는 두 개념은 상충하는 것이 아니다. 교권은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행사되는 권리로 (두 개념은) 상호보완적인 관계”라며 “교권 신장이 학생인권 신장으로 이어지고, 학생인권 신장이 교권 신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역시 지난 4월 “학생 인권만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학교폭력을 막고 제어해야 하는 교원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한덕수 국무총리의 발언을 두고 “국민 권리가 신장한다고 해서 국가와 정부 권한이 침해받는다는 해석을 내리지는 않는다. 교육부와 정부 당국은 학생인권과 교권을 대립시켜 학교의 갈등을 조장하는 일을 당장 멈추기를 바란다”고 규탄한 바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학생인권조례에 화살을 돌리는 이 부총리와 여당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날 트위터에는 “학생인권조례 어디에도 학부모 갑질을 용인하는 내용은 없다” “지금 필요한 건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서 교사 인권을 보호하도록 하는 건데 왜 학생인권까지 같이 끌어내리려고 하느냐”, “(학생인권조례 폐지 주장은) 학생을 때리면 말을 듣는다는 이야기 아니냐. 교권을 세우는데 폭력이 필수인가” 등의 의견이 올라왔다.
✅ 아동학대처벌법 남용은 제어 방안 마련해야
오히려 교육계에서는 학생인권조례보다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 손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동학대처벌법 탓에 교사의 교육활동을 보호하는 교권보호위원회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대진 서울교사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이날 오전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아동학대처벌법 때문에 대다수의 선생님이 교권보호위원회 신청을 꺼려한다”고 주장했다. 교사의 교육활동을 침해한 학생에게는 학교와 시·도교육청이 여는 교권보호위원회에서 △학교봉사 △사회봉사 특별교육 △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 △퇴학 등 7가지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장 수석부위원장은 “교사가 교권보호위원회 신청을 할 경우 학부모가 약간 감정적으로 ‘나도 선생님을 아동학대로 신고할래’ 할 수 있다”며 “그런데 아동학대처벌법 상에는 무고죄가 없기 때문에 (아동학대 신고를) 남발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더 안타까운 사실은 아동학대처벌법 상에 따르면 ‘전건 송치’라고 해서 무조건 검찰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경찰 단계에서 검찰까지 조사하는 그 기나긴 시간 동안 선생님들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아무 혐의 없음으로 나와도 그냥 허탈한 것”이라며 “(그래서) 아예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지 않는 방향으로 소극적으로 대응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올해 교총으로 접수된 교권침해 관련 소송과 행정절차 87건 가운데 51%인 44건이 아동학대를 이유로 제기된 것이었다.
이와 관련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지난 5월 ‘아동학대처벌법 등의 개정 요구 입장문’을 내고 “아동학대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교실 내 아동학대 의심 신고만으로도 관련 교사를 즉시 분리하도록 되어 있는 현행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와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도 이날 성명에서 “아동학대로 신고 당한 교사는 실제 범죄 여부와 관계 없이 대부분 수업에서 배제되거나 직위가 해제되지만 실제 판결에서 교사가 유죄로 선고받는 경우는 드물어 과도한 조처가 아니냐는 지적이 일각에서 제기돼 왔다”며 아동학대처벌법 보완을 주장했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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