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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책에서 튀어오르는 얼룩말!…팝업북 만들기, 이렇게 쉬웠어?

등록 2023-12-25 16:43수정 2023-12-26 02:35

버려진 그림책으로 팝업북 만들기

한 해에 버려지는 책 1000만권…
환경 업사이클링 중요해지면서 인기
오리기·붙이기만 하면 누구나 ‘뚝딱’
“그림책 오래 볼 수 있는 활동 되길”
지난 16일 장위청소년문화누림센터에서 진행된 업사이클링 팝업북 만들기 수업에서 한 초등학생이 자신이 만든 팝업북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16일 장위청소년문화누림센터에서 진행된 업사이클링 팝업북 만들기 수업에서 한 초등학생이 자신이 만든 팝업북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16일 장위청소년문화누림센터 2층 교실에 초등학생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안선화 강사는 카트에 싣고 온 수십권의 그림책을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렸다. 이날은 3회에 걸친 ‘업사이클링 팝업북 만들기’ 수업의 마지막 시간.

“이 책들도 모두 선생님에게 버려진 책들이에요. 지금까지 배운 대로 오리고 붙여서 나만의 팝업북을 만들어 봐요!”

아이들은 한명씩 강사에게 가서 마음에 드는 그림책을 하나씩 받아왔다. 그림책은 내지와 표지가 분리돼 있었다. 아이들은 능숙하게 내지의 그림들을 오리기 시작했다. 주인공도 오리고 조연들도 오리고 배경들도 오렸다. 아이들은 “너무 예쁘다” “너무 귀엽다”를 연발하며 10∼20가지씩 대상들을 오렸다. 표지를 펼친 뒤 부착돼 있는 종이 상자 위에 이 오린 것들을 풀로 뚝딱뚝딱 붙이기 시작했다. 교실은 점점 조용해지고 아이들의 표정은 점점 진지해졌다. 40분 정도 지나자 각각 다른 페이지에서 잘라 낸 그림 조각들이 모여 풍성하고 입체적인 팝업북이 완성되었다.

각자 팝업북을 완성한 뒤 서로의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작품을 보고 놀라고 감탄하고 만져보기도 했다. 팝업북은 기존 그림책 내용에 충실하게 만들어지기도 하고, 원래 그림책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내용으로 꾸며지기도 했다. 몇명은 앞에 나와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1시간30분이 후딱 지나갔다. 아이들은 “너무 재미있었다” “또 하고 싶다” “신기한 아이디어들이 샘솟았다” “나도 정크 아트스트가 되고 싶다” 등의 수업 소감을 밝혔다. 안선화 강사는 “여러분들이 그림책을 오래 보는 친구들이 되면 좋겠다”며 “이번 활동이 씨앗이 되어 여러분이 정크 아트에 관심을 갖게 되고 나중에 아티스트로 만날 수 있길 바란다”고 수업을 마무리했다.

안선화 강사는 전국을 다니며 업사이클링 팝업북 만들기를 강의한다. 안선화씨 제공
안선화 강사는 전국을 다니며 업사이클링 팝업북 만들기를 강의한다. 안선화씨 제공

‘쓰레기 재활용’하는 정크 아트

안선화씨는 공장 또는 예술가의 손에서나 탄생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팝업북을 어린이들도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정크 아티스트다. 정크 아티스트란 버려지는 재료를 활용해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예술가다. 이날 팝업북으로 재탄생한 재료도 버려진 그림책들이다.

그가 버려진 그림책으로 팝업북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여년 전이다.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장에 쌓여 있는 그림책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림책들은 대개 코팅처리가 되어 있어 재활용이 어려워 불에 태워진다. 그때 팝업북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워낙 팝업북을 좋아했고 특히 오래된 명작이나 옛날 이야기들을 좋아했거든요.” 미대 출신으로 20대 때부터 서점에서 그림책과 팝업북을 읽고 사 모으던 사람이었기에 그에게 버려진 그림책들은 보물과도 같았다.

혼자 팝업북을 만들어서 자녀들에게 보여주거나 자신이 미술을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보여주다가 어느 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작품 사진을 올렸더니 주변에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가르쳐달라는 사람도 생기고 강의를 해달라는 곳도 생기고 국내외 책 축제에 초청을 받기도 했다. 제주에서 강원도까지 전국 어디든 부르면 달려갔고, 특히 지역의 작은 학교들을 마다않고 찾아갔더니 지난해에는 1년간 무려 330여차례 강의를 하기도 했다. 특히 환경문제가 전지구적 이슈가 되면서 그를 찾는 곳이 많아졌다.

그러자 버려지는 그림책들이 그에게 모이기 시작했다. 도서관들은 주기적으로 오래되거나 낡은 책들을 버려야 한다. 최근에는 울산대가 장서 45만권을 폐기하기로 해 뉴스가 되기도 했다. 저출산·인구감소로 문을 닫는 학교들도 학내 도서관 책들을 처분해야 한다. 출판사들도 인쇄 사고로 인해 버리는 책들이 있다. 통계에 따르면 한해에 버려지는 책만 1000만권이다. 이런 상황이니 그림책을 버려야 하는 곳은 그를 많이 찾게 됐다. 올해는 서울시자원봉사센터와 함께 버려지는 그림책 1000권을 모아 팝업북 만들기 키트를 제작해 지역아동센터에 기부하는 활동도 진행했다.

버려진 그림책을 오리고 붙이면서 자기만의 색깔로 팝업북을 만들 수 있다.
버려진 그림책을 오리고 붙이면서 자기만의 색깔로 팝업북을 만들 수 있다.

예쁘게 만들기보다 ‘재활용’ 강조

그가 업사이클링 팝업북 강의를 진행할 때 처음에는 예쁘게 만드는 것에 방점을 뒀는데, 지금은 예쁘고 화려하게 만드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친다. “예쁘게 만들기에 방점을 맞추면, 책을 뜯고 오려서 팝업북을 만드는구나로 끝나더라구요.” 팝업북 만들기의 본질 중 하나는 버려지는 그림책을 다르게 ‘재활용’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강의 초반에 이 작업은 결국 지구와 나무를 위하는 것임을 거듭 강조한다.

또 팝업북 만들기는 편식 없이 다양한 그림책을 접하는 방식이다. “돈을 주고 책을 사면 내가 좋아하는 책만 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집에 쌓이는 그림책들이 다 비슷한 그림체의 비슷한 종류의 그림책이기 쉬워요. 그런데 버려진 그림책들로 작업하면 평소 내가 접하지 않은 다양한 스타일의 그림책을 많이 접하게 되죠. 그래서 팝업북 만들기는 재미없는 책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팝업북을 만드는 과정은 나를 느끼고 나의 이야기를 담는 과정이다. 똑같은 그림책으로 팝업북을 만들어도 모두가 제각각으로 다르게 만든다. 그 안에서 자기가 투사되는 것들을 골라서 오리고 붙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똑같은 에이비시(ABC)를 가르쳐주는 그림책을 주고 팝업북을 만들라고 하면, 그 안에서 알파벳만 오려서 팝업북을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그 안의 동물 그림만 오려서 동물원 팝업북을 만들기도 한다. 이이 따라 팝업북 만들기는 무한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과정이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의 내용에 제한당하지 말고 스토리텔링에 얽매이지 말고, ‘이렇게 해도 되나요?’ ‘저렇게 해도 되나요?’라는 질문도 가급적 하지 말고, 이 시간 만큼은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라고 해요.” 그것이 이 강의의 인기 비결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질문 없이 자유롭게 만들게 하기 위해서 최대한 쉽게 설명하고 누구나 쉽게 만들기의 동력을 느끼도록 했다. 강의를 요청하는 대상은 유치원생부터 80대 어르신까지, 학생부터 교사와 학부모까지 다양하다. 환경 업사이클링이 인기를 얻으면서 학교의 정규 교과시간에 초청받을 때도 많고, 요즘은 마을학교에서도 많이 배운다. 가장 반응이 좋은 집단은 의외로 사춘기 청소년들이란다. 청소년들은 ‘그림책을 오린다’는 말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신나게 참여하며, 진짜 자기 이야기를 가지고 재미나게 풀어낸단다.

그가 최근에 펴낸 책 ‘버려진 그림책으로 팝업북을 만듭니다’(학교도서관저널) 역시 누구나 쉽게 팝업북을 만들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 책에는 초급편과 고급편으로 나눠 총 12가지의 팝업북 만드는 법을 소개한다. 혼자 책을 보고 만들어도 좋고, 어린이들과 미술교육, 독후활동, 책놀이 등을 하고 싶은 교사나 학부모들에게 도움이 되는 다양한 팁과 노하우를 담았다.

다양한 모습의 팝업북으로 재탄생된 그림책들.
다양한 모습의 팝업북으로 재탄생된 그림책들.

지시나 잔소리 대신 무한 상상력으로

엄마들이 이걸 배워서 아이들과 만들 때 주의점이 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만들어봐라 저렇게 만들어봐라 등으로 지시하는 것은 금물이다. “엄마의 마음은 엄마의 작품에 담으면 됩니다. 아이의 작품은 아이의 마음을 담아야죠. 아이가 오리기를 잘못 하든 귀퉁이를 잘라먹든, 아이의 시선에서 자유롭게 작품활동을 펼치도록 시간을 주면 아이는 더 오랫동안 그림책을 가까이 하며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엄마들의 잔소리가 없어도 업사이클링 팝업북은 웬만하면 예쁘게 만들어진다. “이미 그림책은 그림책 작가와 출판사 디자이너가 합세해서 아름답게 완성한 작품이다. 이걸 어떻게 오려서 붙이든 안 예쁠 수가 없고 이야기가 안 만들어질 수가 없다”며 “이른바 ‘금손’이든 아니든 모두 자기만의 멋진 팝업북을 만들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이 작업이 아이들이 그림책을 오래도록 곁에 두고 볼 수 있는 활동이길 바랐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나 중·고교에 입학한 뒤 그림책을 더 이상 보지 않으니까 부모님들이 그림책을 버리는 거잖아요. 강의 한번 듣고 팝업북 한번 만들어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이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서점에 문제집을 사러 갔다가도 옆에 그림책이 있으면 한번 넘겨보는 시간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에 이 강의를 합니다. 그림책을 보면서 인생이나 진로에 대해 생각도 해볼 수 있고 위로도 받고 마음이 따뜻해지잖아요. 80살까지 오래동안 그림책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인생을 응원합니다.”

글·사진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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