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임반 시험감독 금지’등 성적비리 대책 교육단체 “근본처방 못된다“ 서울시교육청이 17일 서울 ㅂ고, ㅁ고 등 사립 고등학교에서 잇따라 발생한 교사들의 학생 성적조작 사건과 관련해 대책을 내놓았으나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들이 교사와 학생·학부모 개인 차원의 문제를 넘어 일선 학교들의 부실한 성적관리 시스템과 사학 재단들의 폐쇄적인 운영에서 비롯된 만큼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교사의 담임반 시험감독을 금지하고, 교사들이 시험감독 시간을 바꿀 때 반드시 학교장 결재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지침을 마련해 일선학교에 시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교육청은 또 성적 관련 비리가 적발되면 해당 교사를 무조건 고발하기로 했다. 시교육청은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근무하는 ‘부모교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학급 담임이나 교과목 배정 때 자녀의 학년을 피해 배정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규정 있으나 안지켜져…재단쪽 감시기구 필요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대책들이 대부분 이미 일선 학교에서 자체 규정으로 마련해 놓았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게 문제였다는 점에서 큰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시·도 교육청별로 마련된 ‘고교 학업성적 관리시행 지침’을 보면, 학교들은 교장과 교감을 위원장과 부위원장으로 하고, 교사와 직원 3~7명을 위원으로 하는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구성한 뒤 자체 학업성적 관리규정을 만들도록 하고 있다. 또 교직원 연수를 벌여 모든 교직원에게 규정 내용을 ‘숙지’하도록 한 뒤 학업성적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당국의 관리·감독·제재를 덜받고, 재단에 의해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사립학교의 경우 관련 규정을 만들어 놓고도 규정대로 학업성적을 관리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ㅂ고 역시 같은 이유로 교사에 의한 성적 조작을 막지 못했다. 이 학교 규정을 보면, 시험감독 교사는 학교장의 결재를 얻은 감독 배치표에 따라 감독반을 배정받게 돼 있다. 하지만 ㅂ고는 2004학년도 네 차례 정기고사에서만 97명의 교사가 무려 322차례에 걸쳐 임의로 시험 감독을 교체해 들어갔다. 또 주관식 답안지를 채점한 뒤에는 반드시 채점교사가 확인란에 서명을 하게 돼 있지만 ㅂ고에서는 지난 1년 동안 채점교사의 서명조차 없는 답안지 14건이 아무 제재 없이 정상 처리됐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규정이 있어도 교사들이 정확히 모를 뿐더러, 성적관리위원회 역시 교장·교감·교무부장 등 친재단 쪽 교직원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성적 관리에 구멍이 뚫려도 굳이 귀찮게 문제삼지 않는다”며 “심지어 사건이 불거졌을 때는 내부자 고발로 언론에 보도가 난 뒤에야 어쩔 수 없이 시교육청에 보고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서울 ㅁ고도 2001~2002년 4차례 정기고사에서 당시 교무부장이었던 김아무개씨 등 교사 3명이 9차례에 걸쳐 학생 5명의 성적을 조작하거나 시험문제지와 정답지를 유출했다가 시교육청 감사에서 적발됐다. 하지만 재단 쪽과 친분이 두터웠던 김 교무부장은 3~5년 동안 교원자격이 정지되는 해임이나 면직 등 중징계를 받는 대신 학교 쪽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나중에 경기도 평택의 사립 ㅅ여중으로 옮겨 다시 교사에 임용되기도 했다. 최낙성 전교조 사립위원장은 “교육청 종합감사가 한 학교당 4~5년에 한번꼴로 이뤄지고, 부정행위가 적발돼도 해당 교사에 대한 제재를 재단 이사회가 하게 돼 있다”며 “현실적으로 교육당국의 관리·감독만으로는 사립고 성적관리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만큼 현재 사립학교법 개정의 쟁점이 되고 있는 학교운영위원회 심의기구화와 교사회·학생회·학부모회·직원회의 법제화를 통해 교사·학생·학부모가 학교 운영 전반에 참여하고 이를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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