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말리는 여자들
고대·중세·르네상스 3편
역사에 묻힌 여성58명 발굴
그 드라마틱한 삶에
입이 ‘쩌억’…눈이 ‘반짝’ 다들 유행처럼 여성주의를 입에 담는다. 그러나 정작 제대로 된 ‘허스토리’(her-story)는 드물다. 〈못말리는 여자들〉 시리즈는 ‘여성의 세계사’를 탄탄하게 복원한 어린이 교양서다. 고대편·중세편·르네상스편 등 3권에 모두 58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대부분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어른들조차 일찍이 들어본 일 없는 인물들이다. 유럽·아시아·아프리카를 넘나들며, 방대한 문헌에서 여성 인물을 ‘발굴’하고 ‘재해석’한 결실이다. 성인을 위한 본격 인문교양서로 옮겨도 손색없을 정도다. 전쟁보다 평화로 나라를 다스린 이집트의 여자 파라오 하트셉수트,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중국과 맞선 쯩 자매, 북아프리카의 자유를 위해 싸운 알 카히나, 세계 최초의 소설(겐지 이야기)을 쓴 일본의 무라사키 시키부 …. 끝없이 이어지는 ‘숨겨진 여성’들의 이름 앞에 입이 벌어지고, 그들의 드라마틱한 일생에 감탄하고, 지금까지의 반쪽짜리 역사인식을 탄식하게 된다. 지은이가 신라의 선덕여왕을 높게 평가한 대목에선 한민족의 ‘세계사적 기여’를 새삼 절감한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그런 역사 연구의 성과를 어린이의 입맛에 맞게 오물오물 되씹어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는 데 있다. 우선 모든 글이 ‘입말체’(구어체)다. 미국 사학자가 10여 년을 바친 필생의 학문적 성과는 친절하고 따뜻한 글에서 그저 ‘후광’의 구실을 할 뿐이다. 번역 과정에서 원판에 없던 여러 자료사진과 삽화도 추가했다. 세계사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도 손쉽게 인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다. 각 장 뒤에는 ‘생각해보기’를 덧붙여 역사에 대한 사색을 부추긴다. ‘여성의 역사’를 넘어 ‘여성을 통해 들여다본 인류사’를 지향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국내 독자들이 진정으로 환호할 대목은 각 권의 마지막 부분에 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여성을 중심으로 5~6명의 여성을 더 소개한 것이다. 세계사를 훑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유럽사에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지은이의 ‘한계’를 번역·기획자들이 보충한 셈이다. 또하나의 ‘부록’은 관련 책을 소개하는 대목이다. 국내외 여성 인물의 삶을 더 들여다볼 수 있는 다른 책 목록을 모았다. ‘어린이 책’과 ‘어른을 위한 책’을 함께 실었다. 세상의 모든 딸들이 이 책을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지은이가 말하듯이 이 책으로 인해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여성들이 ‘창조한’ 수많은 유물의 자취를 한데 모아 생명으로 빛나는 그림이 완성”됐다. 그 앞에 어떤 찬사도 과하지 않다. 고학년, 비키 레온 지음, 손명희·박종윤 옮김, 최재호 그림. -꼬마이실/각권 9800원.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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