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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눈 나빠져 고등학교 못갈까 걱정이에요

등록 2006-08-24 20:28

전쟁으로 학업중단…5남매 유학까지 시켜
남편 사별 뒤 양원주부학교 문 두드려
고운 한복 차려입고 졸업식 참석 ‘뿌듯’
[이사람] 일흔아홉에 중학교 졸업장 받은 이정희씨

5남매를 키우면서 학교 졸업식장에 수십번 가봤지만 이렇게 설레기는 처음이다. 자식들이나 손주들 졸업을 축하하러 가는 게 아니라 주인공으로 졸업식장에 가기 때문이다.

24일 서울 양원주부학교 중학부를 졸업한 이정희(79)씨가 바로 그이다. 지금은 이북으로 갈린 경기도 개풍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6·25 전쟁이 터져 서울로 내려온 뒤 반세기가 훌쩍 지나 중학교 졸업장을 받은 것이다.

배움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데다 2004년 유난히 다정하게 지내던 남편과 사별한 아픔을 달래려고 지난해 여름 용기를 내 주부학교를 찾았다. 그는 “돌아가시던 해에도 뒷모습은 대학생 같았던 남편은 법대를 졸업한 인텔리였는데 중학 졸업도 못한 게 항상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이씨는 아들·딸이 미국 유명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뒷바라지 하면서 배우지 못한 설움을 대신했다. 그래도 한 평생 주변에 여학교 나온 동년배들이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식들은 “공부 따라가느라 괜한 스트레스 받는 거 아니냐”고 걱정 하면서도 어머니가 학교에 다니는 걸 응원해줬다. 날씨가 궂은 날이면 자녀들이 전화를 걸어 “오늘은 하루 결석하시라”고 당부하지만, 이씨는 수업 진도를 따라가지 못할까 봐 꼬박꼬박 학교에 나갔다. 반에서 ‘왕 언니’ 노릇 하며 학교생활에 푹 빠졌다. “아무래도 영어가 제일 어렵다”고 말하면서 그가 펼쳐보인 공책에는 영어 단어 밑에 한글 발음이 빼곡히 적혀 있다. “한문 시험은 볼 때마다 100점을 받거나 1~2개 정도 틀린다”고 자랑했다. 갖가지 연필과 볼펜이 담긴 알록달록한 필통을 정리하는 모습은 여든을 바라보는 할머니라기보다 차라리 여중생 같다.

이씨는 책을 가까이 하면서 눈이 점점 나빠져 고등부 진학을 망설이고 있다.

“이제 환갑쯤 된 젊은 엄마들이 영어 공부를 많이 도와줬어요. 나도 조금만 더 일찍 공부를 시작했으면 고등학교 아니라 대학까지 갈 수 있을 텐데 ….” 이씨는 졸업식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친아들처럼 살갑게 돌봐준 담임 선생님께 감사하단 말을 몇번이나 되풀이했다.

글·사진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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