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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배움의 열정, 어른도 청소년 못잖은데…

등록 2006-10-19 20:06

야학 학생서 교장으로 변신한 ‘상록학교’ 정태하씨
‘청소년보다 어른이 많다’ 재정 중단 위기에 막막
“배움에 대한 갈증으로 야학을 찾아갔는데, 교장까지 맡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경북 구미 상록야학 교장 정태하(50·사진)씨는 한때 이 학교 학생이었다. 고향 김천에서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신문배달, 구두닦이, 술집 종업원, 생선장수 등 온갖 직업을 전전했다.

갖은 고생 끝에 전파사를 차려 어느 정도 돈을 모은 그는 양복을 입고 중형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사교모임에도 가입해봤지만 대학 졸업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주눅 들곤했다. 초등학교 다니던 아들이 가정환경조사라도 하게 되면 학력을 중졸이나 고졸로 속일 때도 없지 않았다.

가슴 속 텅 빈 공간을 채우지 못했던 그는 89년 서른 즈음에 상록학교 전신 구미향토학교(1987년 개교) 야학 문을 두드렸다. 곱셈, 나눗셈도 서툰 그였지만 금방 공부에 재미가 붙어 낮에는 과외를 받아가며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입학한 지 3개월만에 야학이 운영난을 겪으면서 문을 닫아야 할 형편에 놓였다. 안타까움에 견디다 못한 그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동사무소 회의실, 병원 사무실 등을 옮겨다니며 향학열을 이어갔다.

1995년 구미시로부터 무상으로 배움터를 빌려 현재의 송정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앞서 1993년 정씨는 심훈의 농촌계몽운동 소재 소설 〈상록수〉에서 이름을 따 교명을 상록학교로 바꾸고 교장으로 취임해 본격 운영에 나섰다. 정 교장도 그 사이 고입,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해 1998년 김천대 전자통신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부터 지금까지 상록학교를 거쳐간 졸업생은 1260명. 이 가운데 825명이 각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 학교는 한글반을 비롯해 초·중·고등부, 컴퓨터·외국어 등 다양한 과정에 15살 청소년부터 여든 할머니까지 160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교사들은 학원강사나 정년 퇴직교사·대학교수·현직교사 등 56명이 자원봉사하고 있다.

그는 사재를 털어 매달 운영비 300여만원을 대고 국비 보조를 받아가며 상록야학을 어렵게 꾸려가고 있다. 그는 “요즘 밤잠을 못 이룬다”고 했다. 내년부터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야학 학생 가운데 청소년보다 어른이 많다며 재정 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서다.

전국의 야학 160여곳은 그동안 청소년위원회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연간 700만~2천만원씩 지원받아 근근이 운영해왔다. 정 교장은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면 80%가 넘는 야학이 문 닫을 수 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구미/구대선 기자 sunny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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