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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대안학교 공교육 인정이 최종 목표”

등록 2006-11-12 21:24수정 2006-11-13 11:51

[이사람] 일본 ‘대안학교 대모’ 오쿠치 게이코
일반학교 형식에 ‘대안’ 담아 내년 정규학교 개교
학교 부적응 학생 대상…‘따돌림 자살’도 줄어들 것

일본 대안학교의 대명사인 도쿄슈레의 오쿠치 게이코(65) 이사장은 요즘 정규 학교인 ‘도쿄슈레 가쓰시카중학교’의 개교 준비에 한창이다. 학교를 거부하는 ‘부등교생’을 돌보는 대안학교가 일반 학교를 운영한다는 말은 얼핏 모순되게 들린다. 지난 10일 신주쿠에 있는 도쿄슈레에서 오쿠치 이사장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이 구상의 출발점은 4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오쿠치 등은 고교 과정 대안학교 학생들에게 통학요금 할인이 적용되지 않는 차별을 없애는 운동에 주력하고 있었다. 좀처럼 성과가 없던 터에 한 정치인으로부터 학교 설립이 지름길이라는 조언을 들었다. 부등교생을 대상으로 한 정식 학교를 만들면, 졸업자격 불인정은 물론 공적 지원금이나 장학금도 받지 못하는 불이익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규제 완화를 ‘구두선’처럼 외쳐온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부의 특구 활성화 방침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도쿄슈레는 이후 다양한 학교 규제 완화를 문부성에 제안했다. 마침내 교과과정 편성의 지침인 학습지도요령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과 건물을 짓지 않고 빌려 학교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적인 요구들을 관철해냈다. 오쿠치는 “잘 될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빨리 학교 설립의 걸림돌들이 해소됐다”고 말했다.

도쿄슈레 쪽도 유연성을 발휘했다. 도쿄슈레는 애초 하루 4시간 수업을 기준으로, 연간 수업시수 700시간을 제시했다. 일반 중학교의 980시간에 비하면 상당히 적다. 문부성이 난색을 보였다. 그렇다고 하루 5~6교시를 하면 대안교육의 차별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궁리 끝에 4교시째 수업만 조금 길게 해, 전체 수업시간을 770시간으로 늘리는 묘안을 짜냈다.

학교법인을 만들기로 결정한 것도 마찬가지다. 도쿄슈레는 비영리법인이다. 비영리법인이 운영하는 정규 학교는 전례가 없다. 문부성 담당자들은 근거 규정이 없다며, 사립학교 지원용 조성금을 이 학교에 주는 데 대해 매우 소극적이었다. 이 문제도 도쿄슈레가 중학교 운영을 위한 학교법인을 새로 설립함으로써 해결책을 찾았다. 도쿄슈레 안에서는 이견도 적지 않았다. 기존 학교에 대한 거부감으로 대안교육을 하고 있는데, 학교법인이라는 모자를 쓰는 게 영 마뜩치 않다는 것이었다.

도쿄 23개구를 샅샅이 뒤져 폐교돼 사용하지 않는 학교를 찾아내면서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가쓰시카구의 옛 쇼난초등학교다. 학교 일부를 빌려 쓰기로 구청과 합의했다. 그럼에도 120명 규모의 학교를 신설하는 것이어서 필요한 자금이 엄청났다. 곳곳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해 예치금인 1년간 운영비 6천만엔을 마련했고, 학교 시설 임대료·보수비 등을 기부받고 있다. 곧 도쿄도의 공식 승인을 받으면, 이달 말부터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내년 4월 개교 예정이며, 학년마다 40명씩(첫 해인 내년만 전체 80명) 모집한다. 30일 이상 등교하지 않은 학생이 모집 대상이다.


오쿠치는 신설될 학교에 대해 “외형은 일반 학교이지만, 알맹이는 대안학교”라고 정의했다. ‘학생들이 만드는 학생 중심의 학교’라는 대안학교의 취지에 맞게, 20년 이상 도쿄슈레 경험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활용해 운영할 계획이다. 그는 이번 도전에 “대안학교가 공교육으로 인정받는 궁극적 목표를 향해 첫걸음을 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도쿄슈레가 모델을 만들어내면, 전국의 수많은 대안학교들이 같은 시도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통해 대안학교가 보통 사립학교와 동등한 공교육의 한 형태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쿠치는 이를 위해선 “대안교육을 지향하는 사람들과 행정의 긴밀한 협력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안교육 단체들이 행정기관을 설득해 함께 나아가지 않으면, 대안교육이 공교육으로 자리매김되는 길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쿠치는 최근 큰 사회문제로 다시 부각된 ‘이지메(집단괴롭힘) 자살’의 해결책도 “대안학교의 공교육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메 자체를 줄이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애들이 목숨을 끊는 최악의 비극만은 막아야 한다. 기존 학교를 견디지 못하는 학생들이 대안학교라는 다른 선택을 쉽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자살 방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지금은 아이들이 기존 학교가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 곳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자살을 택한다”고 말했다.

이지메 문제는 일본 학교의 고질병이다. 요즘 더욱 심각해진 것은 학력저하 논란으로 이른바 ‘여유있는 교육’을 줄여나가는 데도 큰 원인이 있는 것으로 오쿠치는 진단했다.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운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한층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육당국은 학생들의 학교 복귀를 강요하는 데만 중점을 두고 있다. 그 때문에 일본에서는 등교는 해도 교실에 들어가지 않고, 양호실·도서실·회의실 등에서 머물다 학교를 졸업하는 ‘별실 등교’도 흔하다. 이런 왜곡된 학교 현실을 바로잡으려면 대안교육을 받아들여 공교육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게 오쿠치의 주장이다.

공립학교 교사였던 오쿠치가 대안교육 운동에 본격 뛰어든 것은 1980년대다. 자신의 애가 이지메를 당해 등교를 거부한 게 계기가 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학교 시스템과 부등교 상황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뜻있는 학부모들과 모임도 가졌다. 거기서 나온 해결책이 대안학교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85년 학교를 그만두고 도쿄슈레를 세운 뒤, 지금까지 대안교육의 외길을 걸어왔다.

부등교생을 위한 정규 학교는 오쿠치에게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그동안 해온 일은 능력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돌보는 학생들을 조금씩 늘리는 것이었다. 대안교육이 튼실하게 뿌리내린 학교에 적은 수의 새 학생이 들어오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번에는 다르다. 신설 학교 학생들의 다수는 대안교육의 문화를 접하지 못한 채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폐쇄적인 아이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학생들에게 한꺼번에 대안교육의 ‘세례’를 주는 게 결코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시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첫 정규 학교인 만큼 교육당국도 눈길도 예사롭지 않다. 일반 학교와의 차별성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다가는 학교 운영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할 위험도 없지 않다. 물론 ‘본업’인 대안학교 운영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오쿠치는 대안학교를 세우기 위해 22년의 교사생활을 접었다. 그리고 지금 대안학교 운영 22년만에 새로운 도전을 한다. 우연찮게도 그가 40여년 전 처음 교사 생활을 시작한 바로 그 학교에서다. 폐교되긴 했지만, 그 곳에서 그는 9년 동안이나 아이들을 가르쳤다. 50대인 당시 제자들이 주변에 적잖이 살고 있다. 그의 든든한 후원자다. 오쿠치의 도전이 왠지 잘 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묘한 인연”이다.

도쿄/글·사진 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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