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교사의 인문사회 비타민
■ 교과서 훑어보기
쾌락주의란, 인간의 행복을 위해 감각적 쾌락이나 만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입장을 의미한다. 쾌락은 인간의 삶에서 필요한 것이지만, 최고선으로 간주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 하면, 우리가 쾌락을 최고선으로 추구하게 되면, 개인의 보람된 삶과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요청되는 많은 선(善)들이 피해를 입거나 희생당하기 때문이다. ―<도덕>(교육인적자원부) 21쪽
자신의 욕구만 충족시키면 그만이라는 식의 소비 자세로는 합리적 소비와 바람직한 소비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즉, 이웃, 지역 사회, 국가, 나아가 지구 환경 전체를 염두에 둔 소비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자유롭게 선택을 하되 선택의 결과에 책임지려는 자세, 즉 소비자로서 자신의 선택 결과가 사회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서 재화와 용역을 구입하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경제>(두산) 118쪽
■ 논제 찾아 생각하기
확실히 자본주의 사회는 그 이전의 사회와는 크게 달라. 자본주의 사회는 고대 사회, 봉건 사회와는 달리 결코 욕망을 부정하거나 누르려 하지 않거든. 오히려 대중의 욕망을 긍정함으로써 자본주의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거의 공기나 물과 같다고 해야 할 상품 광고라는 새로운 문화 형태를 만들어 우리를 어딘가로 끌고 가고 있어.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모든 욕망을 부추기고 긍정하는 것은 아니야. 자본주의는 오로지 돈이 되는 욕망만을 긍정하지.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대중의 욕망을 식민화해 우리의 돈을 우려 짜내는 거야. 그리하여 천박한 욕망의 파도가 우리의 삶을 뒤덮고 말았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욕망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돼.
욕망에 대한 전통적인 입장은 한마디로 부정적이야. 우리가 흔히 쓰는 ‘욕망’이라는 말이 애초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면서 사용되는 것은 이런 까닭이지. 욕망은 천박한 것, 없어져야 할 대상이야. 그래서 유교는 “욕망을 줄이라!” 하며 욕망의 제어를 가르치고, 불교는 “욕망을 끊어라!” 하며 욕망의 제거를 가르쳐. 일찍이 맹자는 마음 기르는 데는 욕망이 적은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말했고, 석가모니 또한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털어 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평화와 정신의 자유인이 된다고 하였어. 그러나 문제는 단순하지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욕망을 인위적으로 억압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한다고 욕망이 사라질까. 아니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차원으로 물러날 뿐이야. 이렇게 무의식으로 추방당한 욕망은 의식으로 떠오를 수 있는 길을 차단당한 채 점차 정신적 상처로 자리잡는데, 이것이 바로 심리적 콤플렉스야. 이 콤플렉스는 정신이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하지 못하고 낮은 단계로 되돌아가는 퇴행(退行)의 일종으로서, 신경증이나 정신분열과 같은 증세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해. 이처럼 욕망의 억압은 불행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어.
인간은 욕망이라는 동력에 힘입어 행동하기 때문에 욕망을 무조건 억압하기만 해서는 안 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무작정 달리는 삶이 고통과 번뇌로 가득 차 있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단순히 이 욕망을 없애거나 줄이는 방법으로 행복이 보장될 수는 없어. 인간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살아가게 하는 근본적인 힘은, 꿈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기 때문이지. 따라서 우리는 욕망을 억제할 것이 아니라 욕망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이를 인정하고 발산시켜야 해. 욕망을 제어하거나 제거하라는 고전적인 가르침만으로 현대 사회의 모순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우리에게는 ‘돈! 돈! 돈!’ 하는 자본주의의 욕망에 맞서는 ‘저항하는 욕망’이 필요하다는 새로운 결론에 이르게 돼. 현대 사상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런 입장에서 ‘욕망의 철학’을 전개했어.
현대인의 불행은, 근본적으로 공생과 협동의 논리를 받아들여 삶의 잣대로 삼을 수 있는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는 데 있어. 현대인의 사회적 인간관계를 지배하는 원리는 이기심으로, 욕망의 내용이나 욕망 충족의 전형적인 방식은 ‘오로지 나만 생각하는’ 배타적인 개인의 이익 추구야. 그에 따라 물질적인 부만을 배타적으로 욕망하면서 삶 전체를 그 욕망의 충족에 맡긴다면 비록 물질적인 풍요는 이룰 수 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인간다운 삶은 말할 것도 없고 건강한 삶의 토대마저 잃어버리고 내면의 황폐함만 남게 될 거야.
그동안 현대인은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경쟁 논리에 길들여져 왔어.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지 몰라.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허위 욕망으로 채워진 왜곡된 욕망의 구조를 변혁하는 일이야. 탐욕을 끝없이 부추기면서 인간 심성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의 불건강한 기초를 단호하게 반대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를 새로운 욕망의 체계 위에 다시 세워야 해. 그것은 남보다 많이 소유함으로써 남보다 앞서고자 하는 욕망의 구조를 청산하는 일에서 시작돼.
우리는 더 많이 욕망하기보다 좀더 ‘다르게’ 욕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해. 진정한 행복을 되찾고 싶다면, 이기심과 경쟁의 논리에 기초한 왜곡된 욕망을 멈추어야 해. 그리고 그 대신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는 데 필요한 건강한 삶의 토대를 적극적으로 욕망해야 해. 그것은 더 많은 물질적 부를 소유하려는 욕망을 품기보다는 공동체 의식을 기반으로 한 상호 협력과 나눔 등을 지향하면서, 자유·관용·정의 등의 초월적 가치를 욕망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 또 그러한 욕망이 깊이 뿌리내리기 위한 조건으로서, 우리의 전체적인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혁해야 할 거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는 길이거든.
<교과서와 함께 구술 논술 뛰어넘기>저자, 여수여고 교사
박용성/여수여고 교사, 〈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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