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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치우의 투지 '붉은 악마'에 깃들었나

등록 2005-03-20 17:01수정 2005-03-20 17:01

정재석의 동양신화 속으로

치우는 격렬한 싸움 끝에 황제에게 사로잡혀 죽었으나 그의 용맹한 정신은 죽어서도 없어지지 않았다. 치우는 나무 수갑과 나무 족쇄에 채워진 채로 죽음을 당했다. 치우가 죽자 황제는 피 묻은 수갑과 족쇄를 버리도록 했다. 그런데 웬 일인가? 피 묻은 수갑과 족쇄가 홀연 핏빛처럼 붉은 단풍나무 숲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치우의 원통한 넋은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치우가 처형당한 땅은 치우의 몸이 분해된 곳이라고 하여 해현(解縣)이라고 불려졌는데, 이 해현 땅에 있는 호수는 물빛이 항상 붉었다. 해지(解池)라는 이 호수는 치우가 흘린 피로 생겼다고 한다.

치우의 머리와 몸통은 따로 따로 산동성의 두 지역에 묻혔다. 치우의 머리가 묻힌 수장현(壽張縣) 사람들은 해마다 10월이 되면 무덤 앞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런데 이때에도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 즉 붉은 안개 같은 것이 무덤에서 피어올라 하늘까지 치솟아 올랐던 것이다. 그 모습이 마치 깃발이 너울거리는 것 같아 사람들은 그 현상을 두고 ‘치우기’(蚩尤旗)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치우의 굴하지 않는 투지와 씩씩한 기백이 그가 처참하게 죽었음에도 여전히 쇠퇴하지 않고 다른 형태로 살아남아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고대의 영웅들은 치우의 이러한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가령 한나라를 건설했던 고조(高祖) 유방(劉邦)은 치우에게 극진히 제사를 드려 치우의 혼으로부터 도움을 받고자 했다. 이것은 치우가 전쟁의 신으로 숭배되었음을 말해 준다.

치우의 용맹한 정신은 다른 방면에서도 숭배의 대상이 됐다. 은나라 때는 무시무시한 치우의 모습을 청동기에 새겨 넣었다. 이것을 도철이라고도 불렀는데, 사람들은 이러한 치우의 모습으로 요괴나 잡귀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신라 때는 기와에 무서운 치우의 모습을 새긴 귀면와(鬼面瓦)가 있었다. 이것 역시 귀신이나 사악한 기운을 쫓는 데 사용됐다.

치우는 동방 신족의 영웅이었으므로 우리 민족에게 인기가 높았다. 조선 시대에는 궁중이나 양반의 집에서 단옷날에 질병을 물리치는 부적을 만들었는데 치우의 이름을 쓰고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치우가 조선 시대에도 우리 민속에서 살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02년 월드컵 축구 열기가 한창일 무렵 이른바 ‘붉은 악마’ 응원단은 치우의 모습을 그린 깃발을 힘차게 휘둘렀다. 우리 모두 붉은 악마와 한마음이 되어 열렬히 한국팀을 응원했을 때 우리들 하나하나의 마음속에는 그 옛날 황제에 대항해 싸웠던 불굴의 영웅 치우의 투지가 깃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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