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과서를 한 장씩 모두 구겼다 펴서 푹신하게 불어나 있는 모습.(맨 왼쪽) 그 옆에는 제목을 국어에서 불어로, 도덕에서 똥떡으로 바꾼 교과서들이 놓여 있다.
묵어, 굼벵이, 잠수함, 불사조…. 모두 교과서 표지의 제목이다. ‘묵어’와 ‘굼벵이’란 학생들이 국어 교과서의 표지 제목을 바꾼 것이고, ‘잠수함’, ’불사조’ 등도 각각 수학과 국사 교과서의 표지 제목을 멋대로 바꾼 것이다. 학생들이 깨끗이 아껴 써야 할 교과서를 이렇게 마구 훼손한 이유는 도대체 뭘까? 서울 ㅅ중 3학년 정아무개군은 “교과서의 제목을 내 맘대로 바꾸면 남들의 교과서와 우선 표지부터 다르니까 왠지 재미도 있고 개성도 있는 것 같다”며 “우리 반 아이들 사이에는 교과서 제목을 누가 더 기발하게 바꾸는지 경쟁 같은 것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3학년 최아무개양은 “가끔 수업 시간에 교과서의 삽화 같은 것에 추가로 낙서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양은 “사진이든 그림이든 삽화 한구석에 뭔가를 더 그려 넣어 보거나 머리카락을 그리기도 하는데 이렇게 낙서를 하다 보면 수업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몇몇 학생들은 표지에 검정색 펜으로 글자를 써 넣거나 지우개로 쓱쓱 지워 여러 가지 단어를 만들어 낸다. 아예 지우개로 표지 전체를 문질러 지워 백지처럼 만들기도 한다. 서울 ㅇ중 2학년 박아무개양은 “주변 친구들이 이렇게 낙서를 하거나 교과서를 변형한 것을 보면 참 재미있다”고 말했다. 어떤 학생들은 낙서를 넘어 아예 교과서 전체를 훼손하기도 한다. 교과서를 한 장씩 모두 꼬깃꼬깃 접으면 나중엔 교과서가 세 배가량 불어나는데 그렇게 푹신해진 교과서를 베고 잠을 청하는 학생도 있다. 서울 ㄱ중 3학년 전아무개양은 “우리 반에도 그렇게 교과서를 마구 접어 놓았다가 나중에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도 혼나고 구겨진 교과서에 필기도 제대로 하지 못한 아이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전양은 “교과서를 훼손하는 이유는 단지 재미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정 하고 싶다면 보지 않는 잡지 같은 걸로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과서에 낙서를 하는 때는 주로 수업 시간이라고 한다.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낙서를 하다 보면 수업에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하게 되는 등 공부에 많은 지장을 준다. 서울 ㄱ중 2학년 이아무개양은 “수업 시간에 교과서 여기저기에 낙서를 해 놓다 보면 나중에 교과서로 시험공부를 할 때에도 현란한 낙서들 때문에 복습이 잘 되지 않는다”며 “또 낙서를 하다 보면 선생님 말씀도 그냥 흘려 듣게 돼 그날 배운 내용이 거의 생각나지 않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교과서를 깨끗이 사용하는 학생들이 더 많지만 함부로 훼손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물론 약간 변형시키면 남들보다 재미있고 독특한 교과서를 갖게 돼 좋을지도 모르지만, 교과서는 문제집과 참고서 등과는 별개의 책이다. 수업의 기본이 되는 책인 만큼 아끼고 깨끗하게 사용하는 게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글·사진 최지혜/1318리포터, 서울 강현중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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