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어지럽고 머리가 아파서 몹시 괴로웠다. 등받이 의자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감고 아픔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보았다. 그것도 잠깐, 선생님 한 분이 학부모에게 보낼 편지를 봐 달라고 가지고 오셨다. 둥근 탁자 앞으로 옮겨 앉아, 읽을 사람 생각해서 몇 군데를 고쳤다. 학교에 있으면서 일을 놓고 있을 수가 없다. 교무실에 가서 약을 먹고 버티어 보기로 하였다.
넷째 시간에 또 누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이번에는 1학년 아이가 왔다. 이 아이는 입학하고부터 거의 날마다 집에 갈 때면 나한테 와서 “교장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인사를 한다. 귀엽고 기특해서 준비해 둔 사탕을 한 알 주면, 어떤 날은 받아가고, 또 어떤 날은 “안 주셔도 됩니다” 한다. “사탕 많이 있으니까 하나 받아” 하면 “괜찮습니다. 다음에 받겠습니다. 교장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 하면서 꾸벅 절을 하고 나간다. 그런데, 이날은 “교장 선생님이 신문에 난 것 보았습니다” 하고 묻지도 않은 말을 하였다. 어느 신문에서 보았느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는 “지금 제 가방에 있습니다. 보여 드리겠습니다” 하면서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더니 학교신문 <샛별 교육>을 꺼내서 보여 주었다.
아침부터 어질어질하였던 게 지난 밤에 이 <샛별 교육> 편집 일에 너무 오래 매달려서 그런 것 같다. 담당 선생님이 잠 제대로 못 자면서 이 일에 매달렸으나 고쳐야 할 데가 있어서, 내가 좀 거들어서 해 본다는 것이 내 몸에 무리였던 모양이다.
아침에 인쇄소에 맡긴 <샛별 교육>을 세 시간 수업만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1학년 아이들에게 벌써 나누어 주었구나, 참 빠르기도 하다. 나는 1학년 아이들 이름이 실린 데를 펴 보여 주며 “여기에 네 이름도 났을 테니 찾아보아라” 하니 금방 찾아 내고는 활짝 웃었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속이 메스꺼웠다. 밥도 보통 날에 비해 반쯤만 받고 반찬도 조금 받았다. 토할 것 같은데도 쉬어 가며 억지로 참고 먹었다. 몸이 아프니 오늘따라 밥 먹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그래도 밥 그릇은 깨끗하게 비웠다.
올해 우리 학교 식구들이 마음 모아 해 보았으면 하는 중심 과제 가운데 하나로, 밥 바르게 먹기, 책 바르게 읽기, 청소 바르게 하기, 일기 바르게 쓰기를 실천하여 사람답게 살아 가는 밑바탕을 다지자는 것이 있다. 그런데 내가 이것을 글로 써서 학교 신문에 소개해 놓고, 신문이 나오는 첫날에 어긴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속이 메스꺼운 걸 참고 밥 그릇 비우느라 진땀을 뺐다.
남긴 음식 비우는 곳에 서서 아이들 식판을 잠깐 살펴보았다. 깨끗이 비운 아이들이 눈에 띄게 많다. 그 가운데 한 아이가 밥을 반이나 먹었을까 밥과 반찬을 많이 남긴 채 들고 나온다. 나를 쳐다보더니, “교장 선생님, 아파서 밥을 못 먹겠어요” 하였다. “몸이 아프면 밥을 먹기 어렵지. 아파서 남긴 건 괜찮아.” 나도 겨우 먹고 나왔으니, 이 아이 사정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 내가 아프니 남 아픈 사정도 안다. 거창 샛별초등학교 교장 gildongmu@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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