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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아뵤~’ 이소룡에게서 배우는 공부

등록 2007-05-19 14:04

“이소룡이 유연성으로 이룬 스타일을 흉내내면서 우리는 우리의 스타일이 만들어지길 소망했다. 쿵푸처럼 공부도 그런 것이다. 칼이든 펜이든 진실을 유연하고 실제적으로 파고들면 자신의 스타일이 생겨나는 것이다”

무술가 리샤오룽(이소룡, 1940~1973)은 어떤 ‘스타일’일 수밖에 없었다. 나태하거나 보수적인 치들은 종종 스타일에 반감을 지니지만, 스타일은 주류의 각질을 뚫는 아웃사이더의 징후로 일정한 혐오감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헤겔과 마르크스의 분쟁에서 보듯이, 스타일이 없이는 진정으로 스승과 결별할 수조차 없다.

미완의 〈사망유희〉를 유작으로 남긴 채 이소룡이 세상을 뜨자 수많은 잡룡들을 내세워 모작들이 제작되었지만, 그의 스타일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다는 사실만 날로 분명해졌다. 그러나 양식(Typus)은 스타일이 아니다. 요컨대 스타일은 흉내와 더불어 죽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양식은 오히려 흉내내기의 네트워크를 통해 공고해질 뿐이다. 그래서, 스타일에는 매순간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치열한 실존의 열정 속에서 승화시키는 아이러니의 빛이 있다. 키르케고르처럼 말하자면 스타일 속에는 일반자적 양식 속으로 환원될 수 없는 단독자적 체취가 생생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양식은 부끄러움을 없애는 문화적 법식이다. 가령, 게오르크 지멜이 설명하는 양식이란 꼭 그런 것이다. 나아가, 비코나 융이 말하는 양식은 지멜의 것보다 한층 더 깊어 보이고, 제법 형이상학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소룡의 쿵푸(工夫) 스타일에는 형이상학적인 게 없다. 철학도이기도 했던 그는 더러 노자류의 잠언을 흘리면서 ‘물처럼 되라!’는 주문을 하기도 하지만, 그의 테크닉은 간결하게 정곡을 찌를 뿐 실없이 용장스러운 데가 없다. 그는 스크린의 스타가 됨으로써 스펙터클화한 영자(英姿)를 탁이(卓異)하게 뽐내면서, 군부독재와 개발지상주의의 아버지 체제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그 모든 불량스러운 10대의 우상이 되었다. 우리는 교실에서 책상을 마구 뛰어넘고 헛되게 쌍절곤을 돌리다가 형광등을 부수곤 했다. 그의 스타일은 응당 양식으로 굳어지면서 스타의 비용을 치르게 되었지만, 우리는 그 양식 속에서 우리의 스타일이 부활하기를 소망했다.

그는 자신의 무술을 설명하는 중에 형(type)이라는 말을 싫어하고 늘 ‘자기표현’이라고 했다. 그것은, ‘디-자인(de-sign)이 그 자체로 하나의 강력한 사인(sign)이고, 탈(脫)코드는 그 자체로 가장 매력적인 코드’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대중적 이미지, 그 시절인연(時節因緣)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들은 15살의 과도기를 깜냥껏 지나면서 이소룡의 스타일을 향한 불가능한 욕망을 반복강박적으로 양식화했다. 과거, 제자가 스승을 배우는 방식은 반복되는 흉내 속에서 양식을 얻고 마침내 그 양식마저 뚫어내며 자신의 스타일에 이르는 길이었다. 즉, 동화(同化)-이화(異化)의 변증법을 금강산을 스쳐가는 계절처럼 무심히 반복하는 것! 그리고, 이른바 염화시중의 길은 그 깨침의 극점에서 비밀처럼 보여주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비경인 것이다.

그러나 이소룡의 이미지가 재현하는 한편 우스꽝스러운 양식은 스타가 된 아웃사이더들의 세속적 운명이다. 그들은 스타일을 양식 속에 죽이면서 세속의 명성을 얻는다. 〈사망유희〉에서 노란 체육복을 입은 채 예의 괴상한 새울음을 토하며 상대의 쌍단봉을 대적하여 회초리처럼 길게 깎은 대나무 무기를 사용하는 장면은 몹시 흥미로운 파격이다. 그 복색과 무기의 취지는 그가 늘 한결같이 그의 제자들에게 강조하던 유연성(pliability), 즉 주류의 엄숙주의를 가로지르는 바로 그 유연성의 이단과 다를 바 없다. 뛰어난 춤꾼이기도 했던 그는 그 이단적 유연성으로써 그만의 무술 스타일을 얻었으나, 그 스타일을 대중의 환호 속에서 양식의 제물로 희생함으로써 대중적 스타의 권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유연성은 오직 실전 무술의 실용성을 위한 것이었다. 〈징비록〉(1647)에서 유성룡은 신립의 호령이 번거롭고 요란스러워 반드시 싸움에서 패할 것이라고 했고, 인재 등용의 귀재였던 세종대왕은 말수를 줄이고 듣기에 기민했다고 했지만, 쿵푸도 공부 곧 그런 것이다. 주먹이든 말이든, 칼이든 펜이든, 그것은 사태의 진실을 향해 유연하고 실제적으로 파고드는 방식에 주력해야 한다. 연암 박지원도 학문과 문장을 논하면서 억지로 기이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할 일이 아니라고 경계한다; 요점은, 자신의 스타일로 사실에 충실한 글을 쓰면 그것이 곧 기이하고 새롭게 된다는 것이다. 언거번거한 말은 외려 어눌한 것보다 못하고, 형(型)만 요란스러운 동작은 실없기 때문이다. 이소룡의 추억! 그것은 그대로 어떤 공부의 환상이다.

김영민/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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