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서의 동양신화 속으로
치우는 절대자에게 반항하는 영웅의 대표였다. 그러나 동양신화에는 또 다른 영웅의 모습이 있다. 그것은 백성에게 봉사하고 희생하는 영웅이다. 이러한 영웅의 대표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예’이다. 예는 동이계 종족의 신이라는 설도 있고 군장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그도 치우와 더불어 동방 민족 출신의 영웅이었다.
이야기는 태평성대를 이룩했다고 전해지는 요(堯) 임금 시대로부터 비롯한다. 훌륭한 요 임금 때에 웬일인지 큰 가뭄이 들었다. 그런데 그 가뭄은 보통 가뭄이 아니었다. 원래 태양은 천제의 아들 열 명이었다. 이들이 동쪽 바다 끝에 있는 부상(扶桑)이라고 하는 거대한 뽕나무에서 교대로 하나씩 떠올라 지상을 비추게 되어 있었다. 하염없는 세월 동안 계속해 오던 이 규칙을 무시하고 어느 날 열 개의 태양이 동시에 떠올랐다. 아마 태양의 아들들은 똑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하다가 지루한 나머지 한번 장난을 쳐 볼 생각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그들이 동시에 떠오르자 지상은 난리가 났다. 곡식과 초목이 타죽고 강물이 말라붙는 등 그야말로 대재난이 닥친 것이다. 요 임금은 무당을 시켜 기우제를 지내보았지만 열 개의 태양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침내 요 임금은 태양들의 아버지인 천제께 호소했고 천제는 크게 노해 활 잘 쏘는 천신 예를 하계에 내려 보내 아들들을 혼내 주도록 했다. 예는 천제로부터 신비한 붉은 활과 흰 화살을 하사 받고 예쁜 아내인 항아(嫦娥)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왔다.
환영하는 요 임금과 백성들 앞에서 예는 이글거리는 열 개의 태양 중 하나를 향해 활을 겨누었다. 화살은 시위를 떠났고 곧 한 개의 태양이 적중되어 떨어졌다. 그런데 떨어진 태양의 몸을 보니 그것은 한 마리의 까마귀였다. 이어서 예는 계속 시위를 당겨 모두 아홉 개의 태양을 격추시켰다. 이렇게 해서 태양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고 겨우 하늘의 소동은 진정되었다. 하지만 지상의 재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뭄이 닥쳤을 때 온갖 괴물들이 덩달아 날뛰어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예는 이들을 퇴치해 달라는 요 임금의 부탁을 받아들여 모험의 여행길에 올랐다. 그리하여 그는 사방에서 날뛰던 여섯 종류의 괴물들을 모두 그의 신통한 활 솜씨로 제거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제거한 괴물은 봉희라는 거대한 멧돼지였는데 그는 이것을 사로잡아 천제께 제사를 지냈다. 지금까지 지상에서 한 일들에 대해 보고를 올리고 다시 천상으로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천제는 예가 바친 제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천제는 예가 활 솜씨를 뽐내 자신의 아들을 아홉 명이나 죽인 것에 노했던 것이다. 예는 하계의 백성들을 위해 큰 일을 했으나 천제로부터 노여움을 사 결국 천상에 다시 올라가지 못하게 된다. 영웅 예의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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