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5일제 수업이 처음 실시된 지난달 26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신목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자원봉사교육을 받기 위해 지원한 초등학생들이 부모와 함께 수화를 배우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교육과정 개편 없어…학생·교사 부담 가중 전국의 초·중·고교가 ‘월 1회 주5일 수업’을 처음 시행한 지난달 26일 초·중학생들은 집을 지키고 고교생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등교하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물론 부모와 함께 놀이공원이나 박물관, 미술관 등을 찾기도 하고 여행을 다녀온 아이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별 다른 계획 없이 하루를 보냈다는 평가다. 한만중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주5일 수업의 전제 조건은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며 “교육부가 교육 과정을 개편하지 않고 주5일 수업을 시행하는 한 학생들과 교사들의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대변인은 “학생은 수업 부담이 줄고 교사는 근무 환경이 개선되는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하며, 부작용을 줄여 주5일 수업이 하루 빨리 정착되게 하려면 학부모들이 참고할 수 있는 지침서를 만들어 제공하는 등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도록 돕는 일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장은숙 참교육학부모회 사무처장은 “사회적으로 주5일 근무가 어느 정도 정착된 이후로 시행 시기를 늦춰야 했다”며 “사회적 합의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급하게 실시하다 보니 저소득층 자녀들의 소외 문제, 학교 대신 학원을 가는 아이들의 문제 등이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전교조가 조사해 보니, 현재 대부분의 학교들은 토요일 하루를 쉬기 위해 주중에 미리 수업 시간을 늘려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에 토요일 하루씩을 쉬면 연간 8일 정도에 해당하는 수업시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학교 행사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현실적으로 수업시수를 맞추기가 힘들다는 것이 학교 운영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특히 ‘쉬는 토요일’ 때문에 평일 수업 시간이 늘어나면서 교사와 학생 모두 평일은 되레 수업 부담이 늘어나게 됐다. 또 주5일 수업이 완전 시행될 경우 매주 4시간의 추가 수업이 불가피하므로 교육 과정을 재점검하여 주5일 수업에 맞는 절대 학습량을 다시 정하는 것이 과제다. 토요일 하루 쉬기 위해 주중 수업시간 늘려
운영 사회적 합의·준비없이 시행…‘나홀로 학생’ 방치 등 문제
소외계층 농어촌 자녀 위한 정부 지역사회 대책도 시급 실제로 입시 부담이 많은 고교생들은 쉬는 토요일에도 대부분 학교에 나가 자율 학습을 하거나 학원 등에서 종일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상당수 고교 교사들은 “대학 입시가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나라 고교 현실에서 주5일 수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자율 학습을 내세워 강제로 등교 시켜도 제재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전교조 경기지부는 수원의 고교 가운데 토요 휴업을 실시한 학교는 3개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대부분 오후 5시까지 자율 학습을 실시한데다 참여율이 80∼90%에 이르렀으며, 부천과 안양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수원의 한 고교 교사는 “입시 교육의 틀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주5일 수업이 정착되기 힘들다”며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도 학교 대신 학원을 보내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토요일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 힘든 아이들은 특히 문제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내 초등학생 73만여 명 가운데 13%가량인 10만여 명이 토요일에 돌봐 줄 사람이 없는 ‘나 홀로 학생’이라고 밝혔다. 학부모회 장 사무처장은 “중산층 이상 자녀들이 다양한 문화 혜택을 누리는 데 비해 소외 계층이나 농어촌의 자녀들은 학교 교육 이외의 문화적 혜택을 거의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토요 휴업이 이런 현상을 확대 시켜 교육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역사회가 이들을 적절히 보호하고 지원할 수 있는 체계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교조 한 대변인도 “청소년수련관이나 청소년문화센터들조차 청소년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운영되지 않고 있을 정도로 학교 밖의 교육 시설과 문화 시설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교육부가 학교에서의 토요 프로그램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문화관광부나 여성부 등 관련 기관과 함께 사회 시설의 교육적 기능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에서 ‘좋은아버지모임’을 운영하는 ‘희망세상’은 현재 이 지역 운봉초등학교와 함께 이달 넷째주 토요일을 위해 ‘체험 교실’을 준비하고 있다. 희망세상 김형도 회장은 “평소 주말에 시간을 낼 수 없는 아버지들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뜻을 밝히고 있다”며 사회단체들의 적극적인 프로그램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교육부가 지난해 주5일 수업 선도학교로 지정된 서울 정목초등학교의 학부모 202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해 보니, ‘자녀의 휴식 시간이 늘어 마음이 편했으며’(41.3%), ‘가족과 더 가까이 지낼 수 있었다’(29.7%)는 긍정적 반응이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나 토요 휴업의 시행 취지를 제대로 살려 나갈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한 형편이다. 곽용환 기자 yh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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