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상으로 다시 올라가지 못하고 죽어야 할 인간의 신세가 된 예는 우울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이곳저곳 방랑을 하던 예는 어느 날 낙수(洛水)의 강가에서 아름다운 미인을 만났다. 그녀는 황하의 신 하백의 아내로 낙수의 여신인 복비(宓妃)였다. 둘은 곧 친해졌고 연인이 됐다. 그러나 이 소문은 하백의 귀에 들어갔고 한바탕 싸움 끝에 예와 복비의 연애도 끝이 났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내 항아의 차디찬 경멸뿐이었다. 예는 새롭게 정신을 가다듬었다. 예는 먼 서쪽 곤륜산의 서왕모가 불사약을 갖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리하여 서왕모를 찾아가기로 했다. 곤륜산은 이글거리는 불꽃과 깊은 강물로 에워싸인 험한 산이었다. 예는 이 모든 난관을 이겨 내고 마침내 서왕모 앞에 이르렀다. 서왕모는 예가 인류를 위해서 했던 일들을 높이 평가해 그에게 불사약을 하사했다.
예는 항아와 함께 먹을 불사약을 갖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평소 남편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았던 항아는 예가 잠깐 집을 비운 사이 불사약을 훔쳐 혼자 몽땅 먹어 버렸다. 그러자 항아의 몸이 점점 떠오르더니 갑자기 두꺼비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꼴을 하고 어떻게 천상에 간담.” 수치심을 못이긴 그녀는 달로 숨어들었다. 달 속의 검은 그림자는 두꺼비가 된 항아의 모습이라고 한다.
항아에 비해 예의 최후는 더욱 비극적이다. 아내가 떠난 뒤 홀로 된 예는 제자들에게 활쏘기를 가르치는 일로 마음을 달랬다. 제자 중에서 봉몽(逢蒙)은 특히 재주가 뛰어나 예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봉몽은 흉악한 마음을 품었다. 스승만 없다면 자기가 일인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어느 날 예가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목에서 봉몽은 복숭아 몽둥이로 스승 예를 때려죽이고야 말았다.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당하고 만 예에 대해 백성들은 깊이 동정하고 슬퍼했다. 예는 죽은 뒤에 종포신(宗布神)이라는, 귀신의 우두머리 신이 되어 백성들의 숭배를 받았다.
예는 동이계 종족의 대표적 영웅으로서 그가 활쏘기의 명수였다는 점은 고구려의 시조 주몽을 생각나게 한다. 오늘날까지 제사상에는 복숭아를 놓지 않는데 그것은 귀신의 우두머리인 예가 복숭아 몽둥이에 맞아 죽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편을 배반한 죄로 두꺼비가 되었다는 항아의 이야기는 당시의 남녀차별적인 사회 관념을 반영한다. 사실 아내를 먼저 배반했던 것은 예가 아니었던가?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예가 쏘아서 떨어뜨린 세발 달린 까마귀, 즉 삼족오가 그려져 있는 해와 항아의 몸이 변한 두꺼비가 그려져 있는 달의 그림이 있어 예 신화가 같은 동이계 종족의 나라인 고구려에서도 잘 알려져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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