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 사상사에서 재미있는 경향은 ‘후대로 갈수록 더욱 고대의 인물에 가탁한다’는 점이다. 공자는 주공(周公)을 받들었는데, 맹자는 그보다 훨씬 이전의 요순(堯舜)을 자주 언급했으며, 전국 말에 가면 사람들은 신화적인 삼황(三皇)이나 오제(五帝)를 거론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특히 ‘황제(黃帝)’에 가탁한 저술들이 많았고, 노자를 황제와 연관시켜 말하는 ‘황노학’이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책 이름이 기록에 남아 있지만, 한의학의 <황제내경(黃帝內經)> 외에는 지금까지 전해지는 게 없었다.
그런데 1973년말 마왕퇴 한묘 발굴에서 네 편의 글이 발견되었다. 오랜 연구 결과 전문가들은 이것이 <한서(漢書)>에 언급돼 있는 <황제사경(黃帝四經)>이라고 믿게 됐다. 새로 발굴된<황제사경>에는 이후 동양적 세계관의 밑그림이 되는 사상이 제시돼 있는데 여기서 주요한 몇 가지를 지적해 본다. 1) 이 책은 노자의 ‘도’ 관념을 구체적으로 발전시켜 자연을 일정한 도수와 법칙들로 이해하고자 한다. 우주나 사회는 객관적인 법칙이나 규칙이 지배한다고 본다. 2)이 책에 의하면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으며, 따라서 천지인(天地人) 세 가지가 하나의 시스템을 이룬다고 본다. 3)나아가 이 책은 우주와 우리의 몸, 그리고 국가에는 동일한 이치가 내재한다고 본다. 따라서 우주의 도리로서 우리 몸을 다스리고(治身), 국가를 다스릴(治國) 수 있다. 4) 이 책에서는 ‘음양’ 관념을 매우 빈번히 사용하지만 아직 ‘오행’ 관념이 없다. 우주와 인간의 상호작용을 말하지만 아직 기일원론(氣一元論)이 확립돼 있지는 않다.
사실 <한서>나 <사기>에는 ‘황노(黃老)’에 대한 언급이 많이 있지만 그것을 담고 있던 책들이 대부분 없어져서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황제사경>의 발굴은 동양적 세계관의 초기 틀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가령 왜 우리 몸을 다루는 한의학 책이 <황제내경>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이제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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