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들 “숨도 쉬기 힘들어요”
지각 6번하면 전학·머리는 스포츠 형 등등 ‘어깨 가방 및 삼원색 가방 금지, 건전하든 불건전하든 이성교제 금지, 밸런타인·화이트데이 등 각종 기념일에 선물 및 케이크 반입 금지.’ 서울 동대문구 ㅊ고등학교 2학년 ㄱ(17)군은 지난달 초 새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학교에서 나눠 준 가정통신문을 보고 흠칫 놀랐다. 받아들이기 힘든 여러가지 금지 조항들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는 가정통신문에서 “학력 신장과 학교 전통을 바로 세워 학교와 가정생활이 즐겁고 애교심을 고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이런 내용의 생활지도 원칙을 세웠다고 밝혔지만, ㄱ군은 이해할 수 없었다. 가정통신문에는 또 지각 6번이면 학부모 소환 및 전학 조처하고, 머리는 남자는 스포츠형, 여자는 단발머리가 원칙이고 묶을 경우 교복 깃에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조항도 들어 있다. 더구나 다른 학생의 흡연이나 불건전한 이성교제를 신고하는 학생에게는 포상을 하는 제도까지 들어 있었다. 새로 시작된 학교생활은 ㄱ군의 예상대로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 정도로 엄격했다. 머리 검사와 소지품 검사가 시도 때도 없이 계속됐다. 아침 일찍 등교해 동아리 신입생 모집을 논의하던 학생들에게 여학생이 남학생 교실에 들어갔다고 기합을 주는 일마저 생겼다. ㄱ군은 “민주국가에서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배워야 할 학생들이 이런 학교에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어떻게 배우겠냐”며 “언제까지 우리 학생의 인권은 이렇게 한없이 짓밟혀야 하는 거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학교 학생주임인 박아무개 교사는 “주변에 유흥업소가 많아 학생들의 생활이 많이 풀어져 있었는데 엄격한 생활지도로 폭력과 담배연기 없는 학교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최근 일진회 등 학교폭력이 사회문제로 등장한 가운데 이 학교처럼 학생들에게 인권의식과 민주주의 문화를 가르쳐야 할 학교가 오히려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학교가 학생들을 지나치게 통제하는 것은 결국 학생들의 인권의식을 둔감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 ㅇ고는 지난달 중순 교문에서 두발단속을 했다. 그 장면을 한 학생이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게 적발되자 그 학생이 소속된 반 전체 학생들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휴대전화를 모두 압수해서 교사들이 내용을 일일이 확인한 뒤에 되돌려줬다. 이 학교 학생 ㄴ(17)군은 “이것은 명백한 사생활 침해”라고 말했다. 서울 ㅁ고는 학생의 신발까지 엄하게 단속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신발은 정해진 모양의 이른바 ‘캔디구두’나 하얀색이 70% 이상인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 눈썹을 다듬은 것이 적발됐을 때에는 벌점까지 받게 된다. 발목양말을 신는 것도 금지돼 있다. 일부에서는 이런 인권 침해 사례가 잦아진 것이 최근 서울시 교육청의 ‘보수화’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지역 중학교의 한 교사는 “최근 들어 부쩍 머리 규제가 심해지는 등 생활지도가 인권을 침해하는 수준으로까지 엄격해지고 있다”며 “이에 대해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주변 학교들에서도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 이금천 정책실장은 “지난해 8월 취임한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의 학력강화 중시 정책이 자연스럽게 학생지도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인권침해가 결국 학생들이 인권의식에 무뎌지고 폭력을 용인하는 문화에 자연스럽게 젖어들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만중 대변인은 “학교에서 인권을 억압당하고 스스로의 인권을 지키지 못하는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의 인권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참교육학부모회 장은숙 사무처장은 “매일같이 인권을 억압하는 폭력을 행사하는 학교와 사회가 아무리 학생들을 대상으로 폭력 근절 캠페인을 벌인들, 어떻게 학생들 사이에서 도덕적 정당성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